칼을 품고 슬퍼하다…사명대사의 활인검 이야기 [신간]

양형모 기자 2023. 10. 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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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을 품고 슬퍼하다 (이상훈 저 | 여백)

전쟁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었던 나라 조선. 안일한 자기 위안에 빠진 관리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이 전쟁에 휘말린다. 악귀 같은 왜군들에 짓밟히는 죄 없는 민초들의 처참한 죽음을 그저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사명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분의 귀천을 떠나 인간의 존엄을 아는 승려였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불살생의 교리를 가장 앞세우는 불교의 승려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명은 고뇌에 빠진다. 살생을 일삼는 무리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다. 죽은 백성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며 칼을 들었다. 오직 백성들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명은 이렇듯 처절하게 임진왜란의 전면에 등장한다.

● 작가 이상훈, 사명대사를 소환하다

이상훈 작가의 소설은 사명의 어린 시절, 천재 소년으로 불리던 응규의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사랑 아랑과의 가슴 뛰는 사랑도 잠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랑과 어릴 때 잃은 형제, 그리고 부모의 죽음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사명은 승려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을 짝사랑하던 미옥을 끝내 뒤로한 채.

조선은 이미 유학을 숭상하는 나라였다. 그런 조선에서 승려의 길로 들어선 사명은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불교의 과거시험이라 할 수 있는 승과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다. 그러나 승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아본 사대부들과 시문을 나누고 우정을 나눌 뿐.

그러던 중 임진왜란의 거친 물살이 조선을 덮친다.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으로 눈을 돌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은 잔인하게 미쳐 날뛰었다. 값으로 매겨져 왜군의 수익이 될, 코가 잘린 백성의 시신이 산을 이루고, 노예상들에게 팔기 위해 끌고 간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곡식은 물론이거니와 서책들마저도 훑어갈 정도로 조선의 산하는 왜군들에 의해 피폐해져 갔다. 사명은 조국의 현실에 더 이상 눈 감고 있을 수 없었다. 승군 대장으로 떨쳐 일어나 왜군과 맞섰다.

불살생마저 거역하게 한 참혹한 전쟁, 오직 백성을 위해 일어선 사명.

승장(僧將)으로서의 사명은 유학을 신봉하는 조선 사관들이 기록해 놓은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전쟁 영웅이었다.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목을 움츠러들게 한 “그대 목이 조선의 보배”라는 일갈처럼 사명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 어떤 전투의 그 어떤 승리보다 참으로 값진 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사명의 측은지심이었다.

오직 자신의 권세만을 누리려는 조선의 권력자들이 외면해 온 조선인 포로들을 위해 사명은 거침없이 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일본의 많은 적들이 사명에게 글 한 줄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사명의 가르침을 받으려 머리를 조아렸다. 사명은 무도한 일본의 적들에게 결국 문(文)이야말로 무(武)를 이기는 진리임을 설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리고 끝내 일천오백 명에 달하는 조선 백성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작가의 결론은 이렇다. 사명대사는 살아 있는 부처에 다름 아니었다. 임진왜란에는 이순신만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영웅도 존재했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겐 사명이 곧 살아 있는 부처님이었던 것이다.

이상훈 작가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마산고와 성균관대를 거쳐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KBS 공채 피디로 방송에 입문하였으며, SBS 개국에 참여해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채널A 제작본부장으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종편 채널 개국을 진두지휘했다.

그 후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글을 발표했다. 첫 에세이 시집 ‘고향생각’이 2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현재 글로벌 OTT에서 드라마 준비 중이며, 국내 대형 뮤지컬 제작사 EMK에서 뮤지컬로 제작 중이다.

두 번째 소설 ‘제명공주’도 드라마 계약을 마쳤으며, 세 번째 소설 ‘김의 나라’는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네 번째 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드라마와 뮤지컬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도 에세이집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 살고 싶다’, ‘유머로 시작하라’,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등 스무 권에 가까운 책을 출간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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