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로 시동 건 코오롱의 4세 경영 [권상집의 논전(論戰)]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국내 재벌기업 중 4세 경영의 포문을 연 기업은 많지 않다. 4세까지 경영이 이어지려면 창업자의 기업가정신 외에 전문경영인과 기업의 탄탄한 조직 역량도 뒷받침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오롱의 이규호 사장은 직접 모빌리티그룹을 신설, 그 어려운 4세 경영의 문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인 변화와 안정 중 변화를 선택했다. 모빌리티 사업에 방점을 둔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4세 이규호 사장, 강도 높은 경영수업 받아
코오롱은 1954년 창립, 올해 69주년을 맞이한 기업이다. 현재 재계 서열은 39위에 머물러 있지만 1980~90년대 코오롱은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한때 금융 및 이동통신 사업까지 추진하며 기업가정신을 발휘한 혁신기업이었다. 지금의 20대 취업준비생에게 코오롱은 낯설지만 30년 전, 20대에게 코오롱은 선망의 대상으로 평가받았다.
이원만 창업주, 이동찬 회장에 이어 이웅열 회장(현재 명예회장)이 3세 경영을 선언한 해는 1996년이다. 이웅열 회장은 취임 후 코오롱의 이념인 'One & Only'를 내세우며 코오롱만의 차별화된 혁신을 강조했지만 외부 환경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1997년 벌어진 외환위기는 코오롱에 구조조정을 주문했고 그룹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2018년 11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공개 선언하면서 4세 경영은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언론의 관심은 이웅열 회장의 장남 이규호 사장이 언제, 무엇을 통해 시험대에 오를지에 집중됐다. 조용히 경영수업을 받아온 이 사장이 모습을 드러낸 건 2020년 이후부터다.
코오롱은 오너가의 경영수업이 강도 높게 진행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웅열 회장이 현역으로 군에 입대해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선례를 따라 이규호 사장도 군 복무를 마쳤다. 미국 시민권이 있음에도 군대를 다녀온 그는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 차장으로 입사했다. 보통의 재벌과는 다른 코스(?)를 밟은 셈이다.
지난해 11월 단행된 코오롱그룹의 임원인사는 조용한 행보를 보인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 부사장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등극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코오롱글로벌에서 인적분할돼 설립된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이규호 사장의 능력 검증은 모빌리티에서 결정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BMW, 아우디, 롤스로이스 등을 유통하는 수입차 사업(유통) 기업이다. 이규호 사장이 맡은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재상장 첫날 상한가를 달성했다. 시장이 코오롱의 4세 경영에 기대를 걸었다는 얘기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이미 수입차로 넘어가고 있는데, 이는 코오롱과 이규호 사장에게 플러스 요인이다.
이규호 사장은 수입차 매출에서 2025년 1위에 올라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BMW, 미니, 롤스로이스 이외에 아우디, 볼보 등 수입차 포트폴리오를 넓힌 점도 긍정적이다. 은퇴한 이웅열 명예회장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주식을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이규호 사장은 모빌리티를 통해 이제 기업가정신을 입증해야 한다.
실제로 이웅열 회장이 고교 시절부터 코오롱의 지분을 넘겨받은 것과 달리 이규호 사장이 갖고 있는 지분은 현재 0%다. 이웅열 명예회장이 코오롱의 대권을 이어받은 시기와 이규호 사장이 물려받은 시기는 외부 환경, 세상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준 등 모든 것이 다르고 한층 더 엄격해졌다. 이규호 사장에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똑같이 적용된다. 코오롱의 재계 순위 상향을 넘어 20대를 중심으로 한 취업준비생에게 코오롱의 가치와 문화를 다시 각인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다. 과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점이나 제조업 기반의 사업은 젊은 구직자에겐 분명 비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이 사장은 모빌리티로 시동을 걸었지만 그 이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코오롱의 미래, 모빌리티 그 이상을 넘어야
코오롱은 산업자재, 화학, 필름, 패션, 건설, 수입차 유통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참고로, 이규호 사장은 경영능력을 평가받는 시험대에서 이미 저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다. 2018년 리베토 CEO, 201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던 시기, 사업 성과는 아쉽게도 기대치를 밑돌았다. 모빌리티 사업 이외에 그룹의 주력사업을 혁신해야 할 이규호 사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다른 대기업이 전문임원에게 최고전략책임자(CSO·Chief Strategy Officer)를 맡기는 것과 달리 그는 직접 코오롱의 CSO를 겸직하고 있다. 모빌리티를 넘어 그 이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이규호 사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모빌리티 사업을 총괄하면서 동시에 그는 그룹의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나섰다. 지난해 코오롱그룹은 향후 5년간 첨단소재, 친환경에너지, 바이오, 모빌리티에 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목할 부분은 모빌리티 사업 투자액이 1000억원으로 가장 적다는 점이다. 반면 첨단소재는 1조7000억원, 친환경에너지는 9000억원이 투자된다. 표면은 모빌리티지만 코오롱의 내면은 첨단소재와 친환경에너지란 뜻이다.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차전지 부문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규호 사장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인 수소 사업 총책도 맡고 있다. 코오롱의 신사업과 4세 경영은 친환경, 사회적 책무, 0% 지분을 놓고 볼 때 ESG의 실천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만, 코오롱의 주가는 올 초 대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은 코오롱의 변화보다 안정이 여전히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고 외치는 상황이다. 모빌리티, 첨단소재, 친환경에너지, 수소 사업을 일관된 스토리와 방향성으로 제시해야 하는데 선명한 청사진을 아직 그리지 못한 느낌이다. 이규호 사장은 1984년생으로 올해 39세의 젊은 경영자다. 이규호 사장은 젊고 역동적이지만 정작 코오롱은 아직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코오롱의 4세 경영, 이규호 사장의 기업가적 능력은 코오롱의 조직 역량이 역동성을 발휘할 때 비로소 판가름 날 것이다. 코오롱은 좀 더 기민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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