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사히 "`김대중-오부치 선언` 퇴색하지 않아…한일 교류확대 필요"

김미경 2023. 10. 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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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과거사 반성·사죄 반복에 부정적" 진단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총리가 1998년 10월8일 일본 도쿄도 구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한일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악수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갈무리

일본 아사히신문은 9일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은 절대 퇴색하지 않았다"며 "한일 간 다층적 교류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998년 10월8일 맺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하 공동선언), 일명 '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이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해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최근 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일 교류 축제에 참석 차 도쿄에 모였다"면서 한일 간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사히신문은 "20년 전 '겨울연가'로 한국 드라마와 사랑에 빠진 팬들부터 K팝과 한국 화장품에 매료된 젊은이들까지, '한류'는 세대와 분야를 넘어 일본에 뿌리를 내렸다"면서 "한국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히트를 쳤고, (한국 문화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완전히 침투했다"고 진단했다.

아사히신문은 이같은 한일 양국의 문화적·인적 교류의 토대는 25년 전에 맺은 한일 공동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공동선언을 체결할) 당시 오부치 전 총리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해 '깊은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를 표명했다. 한국의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높이 평가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상호 노력을 촉구했다. '문화적 침략'을 경계한 그는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에도 관심을 돌렸다"고 환기했다.

다만, 한일 정상 간의 중대한 결단에서 한일관계가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아사히신문의 평가다. 신문은 "공동선언이 극복하고자 했던 역사적 쟁점들을 둘러싼 갈등이 거듭됐다"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정부간 합의는 차기 한국 정부에 의해 폐기됐고, 강제동원(징용) 문제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사실상 보복조치를 취하면서 대립은 더욱 난관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행하지 못한 정치의 책임은 무겁다. (한일 관계의) 붕괴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 차원의 교류 덕분이었지만,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올 봄, 한국 측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으나, 공동선언이 지향하는 '진정한 상호이해'는 절반에 불과하고 관계가 다시 악화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역사에 대한 공유된 이해를 목표로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측면을 넘어 다층적인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유럽 연합 (EU) 회원국들 사이에서 대학 학점을 인정하는 '에라스무스 (erasmus)'라는 시스템을 한일 간에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만 하다"고 제안했다.

아사히신문은 "공동선언의 정신은 결코 시들지 않았으나 일본과 한국을 둘러싼 상황도 크게 바뀌었다. 경제와 생활 수준면에서 거의 동등한 일본과 한국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했다. 북한의 위협,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화되고 저출산과 고령화가 점점 겹치고 있다"며 "서로 경쟁하고, 배우고,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위한 관계 구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사히신문이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는 있으나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한국은 새로운 공동선언 체결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윤덕민 주일본 한국대사는 지난달 27일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 참석해 "양국 간 관계 개선의 기운을 살려 나갈 필요가 있다"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를 잇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 새로운 공동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한국에 반복적으로 사과를 하거나 반성의 뜻을 표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과거 공동선언에 포함된 반성이나 사죄 같은 문구를 반복하는 데 대해 일본 집권 자민당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강하다"고 보도했다. 오부치 전 총리가 공동선언 당시 일본의 식민 지배로 한국에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인정하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사과가 불충분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관계 개선 과정에서도 기시다 총리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면서 오부치 전 총리의 발언을 간접적으로 재확인하는 데 그쳤고, 또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며 반성이나 사죄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개인적인 유감만 표명했다. 한국 여론은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의 필수요건으로 일본의 사과와 성의를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가 이를 수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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