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미 기자 2023. 10. 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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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잘못되고 있었다. 붙임성과 사회성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큰애에 비해 둘째는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둘째가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둘째 딸이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bipolar spectrum disorder)를 진단받은 것은 햇수로 7년 전 일이었다. 그 7년 동안 아이는 보호병동에 16번 입원했다.”(김현아 ‘딸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에서)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는 '조울증’이라고 알려진 정신질환의 한 유형이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김현아 교수의 둘째 딸 안나는 자해를 했다. 아이의 하얀 팔소매에 가로로 그어진 무수한 칼자국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해는 급격한 충동 끝에 일어났다.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어도 번쩍이는 날붙이를 보면 충동이 일어났다. 때로는 그 충동이 1분도 안 되어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재수를 했지만 대학 생활도 원만했고 성적도 좋았던 딸이었다. 중학교 때는 물리 영재로 꼽히기도 했다. 서클로 가입한 밴드부에서도 열성적으로 활동하며 무대 위를 휘젓고 다니는 딸을 보면서 '우리 아이에게 저런 끼가 있었나’ 싶기도 했다. 가끔 아이의 얼굴에 드러나는 어두운 안색에도 "요즘 세상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 하며 가볍게 생각했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가 무너져 내렸다. 아니 이미 오랫동안 홀로 우울과 싸우고 있었다.

"우울이 이제는 날 집어삼키려 해"

"오래전부터 난 속에서 뭔가가 잘못되었어. 내 마음속에 항상 살고 있던 우울이 이제는 날 집어삼키려 해. 난 내가 너무 미워. 왜 힘든지 묻지는 마. 우리 집 같은 환경에서 뭐가 우울하냐고 할 거잖아.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못해. 그냥 힘들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 정천기 교수, 어머니는 관절염 분야 명의로 꼽히는 교수. 하지만 자해를 해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보호병동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아이에게 의사 부모라고 해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있을 수 있을까" 하며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시그널이 있긴 했다.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 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면담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우울증 검사 결과에서 아이의 우울 척도와 자살 척도가 너무 높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면담은 누가 봐도 싹싹하고 예쁜 아이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 '믿지 못할 검사’로 싱겁게 끝났다.

그로부터 2년 뒤 수학능력시험을 며칠 앞두고 아이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결석한 것이 첫 번째 경고음이었다. 하지만 수능을 앞두고 불안감 때문에 생긴 급성 우울증이라 여겼다. 한참 후에서야 그날 아이가 약을 먹고 생애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는 걸 알았다.

그해 수능은 망쳤지만 원래 공부를 잘하던 아이였기에 고3의 방황이겠거니 생각하고 재수학원에 등록했고 이듬해 대학에 들어갔고 2학년 때는 자취를 하겠다며 집을 나갔다. 그사이 아이는 힘든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에 자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아이를 처음 보호병동에 입원시킨 날의 기억을 김현아 교수는 이렇게 썼다.

"안나는 보호병동의 굳게 닫힌 문 안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주저앉아 울지 않았다. 두 사람 몫의 삶을 살아내야 하기에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주저앉기는커녕 엄마는 그때부터 맹렬하게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전문 서적과 해외 논문들을 찾아보았고, 양극성 장애의 우울증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무엇이 다른지, 양극성 장애에서도 1형, 2형, 스펙트럼은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처음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처럼 공부했다.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남편이 과외 교사로 나섰다. 병을 이해하는 것은 곧 딸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양극성 장애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도 확인했다. 미국 보고에 따르면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양극성 장애로 진료받는 성인의 숫자는 인구 10만 명당 905명에서 1679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고, 젊은 연령층에서는 무려 40배가 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30세 미만 젊은 연령층에서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었다.

우리 애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가족이 좀 특별하긴 해요. 처음 둘째 딸이 양성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숨길 게 뭐 있냐고 했어요. 남편은 정신질환이라는 말 자체를 그리 인정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이런 문제가 다 있는데, 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한 사람이 있고 심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여기부터는 병이고 여기까지는 병이 아니다 말하기도 어렵다’는 거예요. 죄도 아니고 벌도 아니고 엄연히 뇌질환이고 신체질환인데 왜 감춰야 하느냐는 거죠. 옛말에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는데 지금까지 정신질환자들이 자랑은커녕 숨어서 고통받았다면 이제 바꿔보자고 했어요."

‘나와 남편, 모두 의사로 일하는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처럼 전문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김 교수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프기 시작한 지 4년 차 즈음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거의 한 달 만에 다 썼어요. 정작 책을 내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데 2년여가 걸렸죠. 이런 책은 가족 중에 누구라도 반대하면 낼 수가 없어요. 아이에게 원고를 보여주니까 처음엔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때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그럼에도 아이는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았을 자신의 고통을 공개하는 데 동의해주었어요."

폭풍 치는 밤바다를 건너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창비)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세상이 무너지다’로 시작된 책은 지난 7년을 시간순으로 구성했다. 첫째 해는 '부인과 낙관’, 둘째 해는 '먹구름’, 셋째 해는 '삶의 증발’, 넷째 해는 '폭풍 치는 밤바다’, 다섯째 해는 '있는 힘껏 병을 끌어안아보기’, 여섯째 해는 '다시 삶으로’. 각 장의 제목은 정신질환자 가족이 겪는 시간의 감정 곡선과 일치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며 부인하는 단계를 지나 "나이 먹으면 좋아진다"는 말에 희망을 걸어보았던 첫해, 다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환자들의 '과장된 쾌활함’임을 깨닫고 다시 먹구름이 끼던 둘째 해, 한 해의 절반을 보호병동에서 지낸 아이를 보며 '이게 도대체 가망 있는 병인가?’ 하고 심리적 나락으로 떨어지던 셋째 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아이의 팔과 다리는 자해 상처로 성한 곳이 없었고 부모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미궁에 빠져버린 채 옛사람들이 왜 굿을 했는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갔던 넷째 해, 전기충격요법을 시도했던 다섯째 해, 그리고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된 여섯째 해. 어느새 7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김 교수와 가족도 서서히 바뀌었다.

"정신병원 폐쇄병동(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보호병동이라고 한다)은 공포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잖아요. 저도 협진을 위해 종종 보호병동에 가야 할 때가 있지만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굳게 닫힌 문, 누군가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은 감옥을 연상케 하죠. 정신질환 환자에 대해서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누구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위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즉 자살 충동이나 자해 충동 같은 것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온 '여린’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자기의 삶에 브레이크를 못 잡으니까 여기 와서 잠깐 쉬어야겠다고 입원한 거죠. 그래서 보호병동은 사회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환자들을 격리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위해를 당한 영혼들을 보호하는 곳이라고 하죠."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지 4년째 되던 해 성탄절을 앞두고 안나와 연락이 두절됐다. 치료제로 받은 약을 상용량의 10배나 먹고 정신을 잃은 것. 약물 과용으로 사람이 죽을 때는 반드시 그 약물 때문만이 아니라 의식 저하 상태에서 구토를 하다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경우가 있다. 1970년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사인도 '토사물의 기도 흡입에 의한 질식사’였다. 다음 날 정신이 든 아이에게 약을 먹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래야 살아 있을 수 있으니까…."

김현아 교수는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에서 의미 있는 논문들을 다수 발표하는 한편 현대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2020)’,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2023)에 이어 최근작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약을 때려먹어서라도 의식을 죽이지 않으면 살아 있기 힘들 정도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살기 위해 죽으려 한다는 '자해’의 아이러니를 타인은 납득할 수 있을까. 의사 엄마는 이제 '죽음’과 함께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양극성 장애는 정신질환 중에서도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환자의 25~60%는 생애에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하고, 치료받지 않은 환자의 20%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는 일반인의 자살률보다 10~30배 높은 것이다. 또한 양극성 장애 환자의 자살 시도는 일반인에 비해 성공률이 높다. 결과적으로 양극성 장애 환자의 수명은 인구 집단 평균보다 9~7년 짧아진다.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은 안나를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약을 잘 복용하는지 살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에서 새 커터 칼을 다 없앴다. 만약 커터 칼로 자해를 시도할 거라면 인대나 동맥 부근을 지나지 않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소리 없는 자해와의 전쟁이었다.

어느덧 담당 의사로부터 "아이가 자살하는 결과가 오더라도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김 교수는 "정신질환에서 최악은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보다는 부모가 아이를 죽이는 것이겠지요"라고 담담하게 대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요즘 '묻지마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니까 어느 전문가가 방송에 나와서 정신질환자들이 약만 잘 먹으면 그런 일은 안 생긴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약의 효과는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약으로 안 되는 부분들은 정서적으로 옆에서 지지해줘야 하는데, 결국 가족의 몫이죠. 모든 게 정신질환자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환경 요인이 큰데 모든 책임을 가족한테 떠넘기고 정작 사회는 바뀌지 않잖아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몸이 아픈 것일 뿐

김 교수는 지금 정신질환자 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 인내, 회복탄력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올 작은 실천 중 하나로 언어 바꾸기를 제안했다.

"‘미친 사람’과 '아픈 사람’은 달라요. 살면서 진짜 미친 악인들치고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은 없잖아요. 자기가 얼마나 주변에 해를 끼치고 있는지 의식하지도 않죠. 함부로 '미쳤다’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하고 '아프다’로 바꿔야 해요. 나아가 '정신질환’ 대신 '뇌질환’으로 바꿔보자는 제안도 하고 싶어요. 뇌도 엄연히 신체인데 다른 신체질환과 달리 정신질환은 의지나 성격의 문제라는 편견을 갖게 하거든요. '성격 장애’라는 말도 마찬가지인데, '성격’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아프다’는 사라지고 '결격 인간’이라는 낙인만 깊어집니다."

김 교수는 아이가 자신의 고통을 공개하는 데 동의해준 이유 중 하나가 장애인 진단에서 2번이나 반려된 사연과 정신질환을 장애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10번이 넘는 입원과, 그에 따라 안정적인 취업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도 장애를 인정받기에 부족하다니, 부당하다!"는 안나의 목소리를 엄마가 대변한 것이다. 성인이 된 정신질환 환자에게 생활 자립은 중요한 치료 목표이기도 하다. 그들은 살고 싶고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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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출처 방송대 유튜브 캡처

김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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