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노동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 “5년간 1400만 개 일자리 감소”
● AI 보급으로 해고되는 사람들
● 비행기 조종하는 ‘휴머노이드’
● 자율주행 허용, 인간 운전 금지?
● AI의 비교 대상 기술은 핵무기
이와 같은 직업이 일찌감치 소멸한 것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이미 식당에서는 접시 나르고 주방에서 치킨 튀기는 로봇, 주문받고 결제하는 키오스크가 우리 생활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인간의 일자리라고 생각하는 분야에도 기계 노동이 인간 노동을 대체해 가는 범위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것이다.
당초에는 단순 반복 업무가 먼저 대체되고 인간 고유의 창의적 직무는 대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현실에서는 신흥국보다 선진국, 단순노동 직군보다 고임금 사무직이 기술 발전의 영향을 먼저 받기 시작했다. AI(인공지능)로 인한 일자리 감소 위협에 영향을 가장 늦게 받을 것이라던, 즉 높은 창의성이 요구되는 직종도 이와 같은 영향권 안으로 들어왔다.
미국에서는 작가조합과 배우·방송인 노동조합 등이 파업에 돌입해 할리우드가 멈춰 섰다. AI가 쓰는 대본으로 작품 제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실존 배우의 얼굴과 음성을 디지털화하지 말라는 요구를 하면서다. 국내에서도 작가들이 그린 기존 웹툰으로 AI를 학습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며 네이버 웹툰 작가들의 단체행동이 시작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6년 '미래의 일자리 보고서'는 2020년까지 5년간 전 세계 고용의 65%를 차지하는 주요 15개국에서 새로운 일자리 200만 개가 늘고 기존 일자리 710만 개가 줄어 합계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전망했다. 2023년 발간된 같은 제목의 보고서는 2027년까지 5년간 세계적으로 6900만 개 일자리가 늘고 8300만 개 일자리가 줄어 총 140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전 세계 일자리의 2%에 해당한다.
인공지능 전문가, 정보보안 분석가, 재생에너지 엔지니어 등의 일자리는 늘어나는데 비서, 은행출납직원, 우편집배원, 티켓 판매원 등의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 거라고 한다. 특히 은행 창구 직원은 향후 5년간 세계적으로 4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표적 고연봉 직종인 금융산업에서도 모바일 금융의 급속한 확산으로 창구 업무가 급감하자 점포 수를 대폭 줄였다. 지점 및 출장소가 400개 정도 폐쇄됐다. 은행, 증권 등 금융 업종별로 수천 명 이상 희망퇴직을 하는 상황이 수년간 반복되고 있다.
올해 5월 미국에서 발표된 챌린저 감원 보고서에 따르면 해고된 사람 약 8만 명 중 4000명 정도의 해고 사유가 AI 보급 때문이라고 한다. CNBC 조사에서 미국 근로자 4분의 1은 AI로 인해 자신의 직업이 쓸모없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세계적으로 약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일자리 감소가 과연 이 정도에서 그칠까. 인간의 노동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근로소득의 원천인 인간노동이 줄거나 사라지면 이 거대한 경제사회 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야 사회가 조화롭게 유지될까.
휴머노이드 시대가 온다
빅테크 기업 중 상대적으로 침체돼 있던 것으로 보이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일찌감치 오픈AI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승부수는 적중했다. 오픈AI가 개발한 챗GPT는 서비스 가입자 수가 공개 5일 만에 100만 명, 두 달 만에 1억 명을 돌파해 앞선 모든 IT 플랫폼의 기록을 넘어섰다. 텍스트를 통한 입출력만 가능한 기능을 넘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생태계가 확장을 거듭하면서 활용 잠재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IT 생산성 도구에서 사실상 표준인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에 챗GPT가 결합하면서 전세가 일거에 뒤집힐 기세다. 간단한 문장 형태의 명령으로도 문서 작업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덕에 인간이 투입하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MS오피스에 탑재된 챗GPT를 활용한 새 기능의 이름이 '코파일럿(co-pilot·부조종사)으로 정해졌는데, 조만간 아예 인간을 밀어내고 조종사가 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개도 나왔다.
재미있게도 최근 AI를 활용한 로봇 파일럿, 즉 휴머노이드 조종사가 등장했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개발해 7월에 공개한 '파이봇'은 키 165㎝, 몸무게 65㎏의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챗GPT로 항공기 조종 매뉴얼을 학습한 뒤 비행기를 조종하며, 비상 상황 대처 절차도 물론 숙지한다. 로봇이 인간 대신 조종석에 탑승해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례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휴머노이드'란 몸통에 머리와 팔다리가 달려 기본 형태가 사람과 비슷하게 제작된 로봇을 말한다.
휴머노이드가 보급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간의 인지와 동작을 학습하고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되면 창고 정리, 제품 조립, 노인 돌봄 등 여러 유형의 작업 현장에 인간 대신 투입할 수 있다. 대규모 초기 투자 없이 기존 환경에서 그대로 인간 작업자의 역할을 휴머노이드가 대신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에서 만들어 2만 달러에 출시하겠다고 하는 '옵티머스'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의 스타트업 앱트로닉은 키 173㎝, 몸무게 73㎏에 가반 하중 25㎏의 '아폴로'를 공개했고 내년부터 본격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KAIST의 '휴보(HUBO)'가 우승했던 2015년 'DARPA 로보틱스 챌린지(DRC)'에서 있었던 일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상황을 가정하고 방사능 피폭 문제로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구역 안으로 진입해 인간이 해야 할 작업을 대신 수행하는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세계 최고의 팀들이 출전시킨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과업 수행은커녕 걷거나 서 있지도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그럼에도 AI는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익히기 때문에 학습의 양과 속도는 지수함수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챗GPT를 필두로 인간이 사무실에서 맞이할 생성형 AI라는 소프트웨어에 더해, 다양한 작업 환경에서 접할 휴머노이드라는 하드웨어가 결합하면 인간의 일자리는 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줄어들까.
그런 날 오지 않는다고 낙관해서야…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한 기대가 몇 년 전만 해도 뜨거웠으나 최근에는 많이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지수함수적 특성을 대입해 보면, 자율주행차는 당장은 느린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쌓으며 학습하고 있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알파벳(구글의 모회사)의 '웨이모'는 1월에만 공공 도로에서 운전자 없이 100만 마일(약 160만㎞)을 주행했다. 과거 10년간 주행한 수천만 마일의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얻은 수십조 마일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다. GM의 '크루즈'는 사고 건수가 웨이모보다 적으나 주행거리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걸로 나온다.‘테슬라'는 자율주행 기능이 비활성화된 상태에서도 하드웨어를 활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로 기계학습 시스템을 향상하며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다고 한다. 최신 자료가 확보되지 않아 아쉽지만 렉스 프리드먼 교수 홈페이지에 게시된 테슬라 주행 기록 분석 데이터에 따르면 자율주행 기능을 활성화한 상태에서의 주행거리 누계는 2021년 1월 기준 51억 마일(약 182억km)로 추정된다. 최신 하드웨어 모델은 4세대인데, 특히 하드웨어 모델이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갈 때 데이터 처리량이 40배 늘었다고 한다. 자율주행 품질의 가파른 향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인간 운전자에게 운전을 허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율주행만 허용되고 인간 운전은 금지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자율주행차 전면 보급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가령 올해 대법원 판결로 법적 분쟁이 마무리된 '타다' 사태를 복기하면 암담한 생각이 든다. 사태에 임한 국내 산업계와 행정부, 정치권에 미래 예측이나 문제 해결 능력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택시업계와 고객이 맞이할 상황을 내다보고 갈등 조율에 나서야 했지만, 외려 이에 실패하면서 세계적 모빌리티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던 스타트업이 망가졌다. 고객은 택시 대란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비싸서 택시를 타지 않는다. 택시업계는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통계청의 2021년 자료를 보면 국내 택배·화물차 등 도로 화물 종사자는 57만여 명이고 버스·택시 등 육상여객 종사자는 39만여 명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 육상운수 종사자 수는 6000만 명 이상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5년 후, 10년 후에 얼마나 성숙할지에 따라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거나 내가 일하는 동안은 오지 않으리라는 나태한 낙관은 금물이다. 정책 입안자도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비해야 한다.
인공일반지능이 현실화하면
생성AI, 휴머노이드, 자율주행차 등 몇 가지만 살펴봐도 과제가 수북하다. 여기다 현재의 AI 수준을 넘어 인공일반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현실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되면 일자리 소멸 정도가 아니라 인류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 즉 인류가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 앞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하는 과학자가 적지 않다.AI를 만들고 발전시킨 인물들이 내놓는 의견에 공통점이 보인다. 하나는 '무섭다'는 감정을 비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I의 비교 대상 기술이 주로 '핵무기'라는 것이다. 신중한 일부는 AI가 보유한 잠재적 파괴력 탓에 기술개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다. 적극적인 일부는 어차피 누군가는 개발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쁜 사람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다는 식의 입장을 보인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감이 대중에게 어느 정도 전달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올 초 챗GPT 출시 이후엔 사람들 사이에서도 AI를 '내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기류가 생기는 것 같다. 이젠 새로운 문명에 어떻게 적응할지 함께 고민을 시작할 때다.
김세연
●1972년 출생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제18·19·20대 국회의원
●여의도연구원 원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저서 : '리셋 대한민국'(공저)
김세연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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