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아 표지화로 돌아보는 1970~80년대
‘여성동아’ 표지화를 통해 한국 근현대의 서양화, 서양화가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본 칼럼의 이번 주제는 1970~80년대의 표지화들이다. 김숙진, 김태, 김형근, 장완, 이숙자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진 이 시기의 표지화들이 그려낸 여자 주인공들을 보노라면 낯선 느낌을 받는다. 모두 1930년대를 전후해 태어나 1970년대 들어 원숙한 전성기를 보낸 작가들이라는 공통점 그리고 일본 등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 없이도 한국에서 성공한 첫 세대라는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그런 분석 이전에 화가들이 활동했던 시간이 벌써 50여 년 전이라는 게 새삼스럽다. 표지화 속 인물들의 독특한 패션과 살아 있는 색감에서 현재와 거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흑백사진 속의 기록일 것만 같은 그 시기의 일상은 '여성동아’ 표지에서 화려하게 살아 있다. 사실 1970~80년대는 독재와 군부 쿠데타의 어두운 압박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이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날이 서 있던 치열한 시간이었다. 그 대결의 국면에서도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전하는 예술의 서사가 이어졌다는 게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럽다. 그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 시대에 대한 정립과 이해가 부족해서 일지도 모른다. 마치 19세기가 비어 있단 느낌을 받는 프랑스처럼.
이숙자와 김숙진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숙자의 그림은 푸른 보리밭을 기점으로 색채에 관한 깊은 연구, 추상과 구상을 크게 나누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구성된 풍경의 색다른 표현이 눈에 띈다. 이는 곧 스승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음을 뜻한다. 사실 천경자 같은 큰 스승에게서 벗어나는 건 모든 제자들의 숙제였을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이숙자 화가의 표지화는 어쩌면 천경자 작가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귀한 예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화가 김숙진의 표지화는 어땠을까. 김 화백은 이숙자 화백과 활동 시기가 비슷하고 둘 다 국내파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은 당시 한국에서 널리 퍼졌던 추상예술 대신 구상예술을 고집했다는 점도 닮았다.
1931년에 태어나 1956년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국전을 통해 등단한 후, 꾸준한 작품 활동은 물론 국전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던 김숙진 화백은 본인의 구상미술에 관한 주장이 확고했다. 김숙진 화백은 자연을 묘사할 때 '사실과 사실이 아닌 관념적인 것’으로 그 방향을 구분했다. 그는 미술 표현에 있어서 사실이라는 것은 자연 형태를 그대로 긍정하며 재현하는 것이고, 추상이라는 것은 대상의 순수한 본질을 찾아 기하학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은 다시 2가지로 갈라진다고 주장하는데, 문자 그대로의 사실과 작가의 안목이 들어가는 구상으로 나뉜다. 둘 다 자연의 외형을 아름다움 그대로 전달하는 태도겠지만 구상은 거기서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숙진 화백의 이런 구분은 그 자신의 예술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7080을 기억하기 위해
장완과 김형근은 특색 있는 주인공들을 '여성동아’의 표지화로 그렸다.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은 아니지만 신여성, 변화한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힘 있는 주인공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경제발전에 따라 1970년대 말부터 '미대생’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어난 학생들은 훌륭한 프로 작가로 성장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일제강점기 때 숱한 억압과 어려움 속에서도 창의성을 발현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인 선대 작가들과 다르게 이 시대의 미술가들에게서는 그런 후광이 느껴지지 않는다.
1978년 동아일보는 점차 확대되어가는 미술의 열망을 수용하기 위해 동아미술제를 만들어 국전에 대응하는 민전의 시대를 이끌어간다. '여성동아’의 표지화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예술로서 대중과 더 많이 소통하려 했다. 어둠의 시절, 예술에 대한 열망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계단을 묵묵히 걸어 올라간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안현배는
파리 제1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정치사를 공부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과학고등연구소에서 '예술과 정치의 사회학’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사학자로서 예술을 사회와 역사의 관계 속에서 살핀다. 저서로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안현배의 예술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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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중식 기자 뉴시스 동아DB
안현배 예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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