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큰 입 벌린듯, 범꼬리 빼닮은 꽃범의꼬리[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10. 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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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산지,‘피소스테기아(physostegia)’ 이름도
꽃잎 호랑이가 크게 입 벌린 듯, 꽃대는 긴 범꼬리 형상
빛에 반사되는 되비침성 물질… 꽃말은 청춘, 젊은날의 회상
피부질환 치료제, 해열제, 진정작용에도 효과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꽃범의 꼬리 꽃잎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면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9월 14일 서대문구 돈의문박물관마을

<연분홍빛 고운 입술/꽃잎에 모아/꽃범의 꼬리 가을꽃/서늘해진 바람사이로/푸른하늘에 읊조린다//풀잎속에 숨어 우는/풀벌레들의 합창/울어예는 매미의/여름 이별가를 들으며//꽃범의 꼬리 가을꽃/가을이 오는 소리 엿듣고/익어가는 가을곁으로/살며시 찾아오는 먼 손님/마중나갈 채비를 한다//꽃범의 꼬리 가을꽃/고운 연분홍 입술열고/온 마음 정성껏/하늘에 읍소한다//이 가을이 풍성하기를/이 가을에 눈물이 없기를/기도하는 심정으로/가을꽃 핀다>

비에 젖은 꽃범의 꼬리 꽃. 9월26일 서울 마포구 한강변

나상기 시인은 시 ‘꽃범의꼬리’에서처럼 꽃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차례로 피기에 개화 기간이 여름에서 가을까지 상당히 긴 편이다. 꽃범의꼬리 개화 시기는 보통 7∼9월로 흔히 여름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10월에도 꽃이 필 정도로 오래 간다. 꽃범의꼬리는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핀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인근 도심 화단 초가을에 피어있는 꽃범의꼬리 꽃. 10월8일 촬영

‘꽃범의꼬리’ 이름에서 보듯 호랑이 이름을 가진 범상치 않은 꽃이다. 화사한 연분홍색 ‘꽃범의꼬리’는 캐나다 퀘벡 서부 및 남부, 미국 중남부 및 멕시코 북부 등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속명(屬名) 대로 피소스테기아(physostegia)라고도 한다.

우선 꽃의 모습 자체가 특이하고 흥미롭다. 활짝 핀 꽃잎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랑이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더구나 뾰족하게 생긴 긴 꽃대에서 꽃이 피어나는 꽃대(꽃차례) 모습이 호랑이 긴 꼬리처럼 보여 꽃범의꼬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서운 호랑이 입과 꼬리를 인용했지만 아름다운 꽃인지라 ‘꽃’ 자를 붙여 ‘꽃범의꼬리’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꽃범의꼬리 꽃. 9월14일 서울 서대문구 돈의문박물관마을

중국 사람들은 꽃이 핀 모습을 용의 머리로 보았는지 거짓용머리꽃을 의미하는 ‘가용두화(假龍頭花)’라 부른다. 입을 ‘쩍’ 벌린 모양새가 어떻게 보면 메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꽃을 손으로 살짝 밀어보면 미는 쪽으로 고정돼 돌아오지 않는다. 꽃범의꼬리 영어 이름이 ‘순종적인 식물(obedient plant)’로 불리는 이유다.

사실 범의 꼬리를 닮은 식물은 ‘범꼬리’ 라 불리는 자생 식물이 있다.범꼬리는 마디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꽃범의꼬리와는 다르다. 범꼬리는 깊은 산 정상 부근에서 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와 굵기의 꽃차례를 가진 꽃이다. 자세히 보면 이 꽃대에 아주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피어 있다. 작은 꽃들은 길이 3㎜ 정도록 작고 꽃차례는 4∼8㎝ 정도로 수백의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아주 작은 새끼호랑이 꼬리’인 셈이다.

꽃범의꼬리는 번식력이 뛰어난 여러해살이 풀로 도심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두 송이를 심어두면 이듬해 군락을 이룬다.

꿀풀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꽃범의꼬리는 높이 60∼120cm 정도까지 자라며 연분홍, 홍색, 보라색, 오렌지색, 흰색 꽃을 피운다.

꽃범의꼬리가 눈부시게 화려한 이유는 선명하고 독특한 색상 덕분이라고 한다. 이 꼬리는 빛을 받으면 더욱 빛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빛에 반사되는 특수한 되비침성 물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되비침성 물질은 꽃범의꼬리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비밀의 열쇠다.

꽃범의꼬리는 모양 또한 다양하다. 긴 줄기 혹은 날개와 같은 확장된 모양의 꼬리, 동전 모양, 알몸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이 특징적이다. 이는 꽃범의꼬리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인근 서울 도심 화단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범의꼬리. 10월 8일

꽃범의꼬리는 섹시한 느낌을 갖게 하는 효과마저 갖고 있다. 꽃범의꼬리를 흔들거나 펄럭이는 등의 동작을 통해 그 꼬리를 더욱 눈에 띄게 보여준다. 이러한 동작들은 꽃범의꼬리가 상대와의 교감을 통해 번식 등에 활용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설도 있다. 꽃범의꼬리는 그 흔들림이나 움켜잡음, 움켜잡힘 등의 동작이 매우 우아하고 매혹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요인이 된다.

꽃범의 꼬리는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에서 잘 자라며 여름 장마철에 약해진다. 뿌리줄기가 옆으로 벋으면서 줄기가 무더기로 나온다. 잎은 마주나고 바소꼴에서 줄 모양 바소꼴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키우는 것이 좋다. 건조하거나 과습하면 잎이 누렇게 변하면서 떨어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번식은 포기나누기로 하거나 씨앗으로 하는데 봄 또는 가을에 파종한다.

꽃범의꼬리는 피부질환 치료제 또는 해열제로 쓰인다. 꽃잎은 말려서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뿌리는 위궤양, 소화불량, 생리불순 및 황달 치료 등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또 진정작용이 있어서 불안증, 신경쇠약, 불면증 등 정신질환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름철 뜨거운 태양 아래 정열적으로 피어나는 꽃범의꼬리 꽃말은 청춘, 젊은 날의 회상이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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