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못 배운 서러움 털어내려고" 77세 까막눈 할머니의 한글 공부

정다움 2023. 10. 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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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돌 한글날을 앞둔 지난 6일 오전 광주 동구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늦깎이 학생 최순자(77) 할머니는 주름 쥔 손으로 잡은 몽땅 연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76년 동안 까막눈으로 살다가 지난 3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한글 기초반에 등록한 그는 이른 아침부터 수업이 시작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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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빛고을복지관 늦깎이 할머니 학생 최순자씨 "이름 쓰는 게 소원"
77세 늦깎이 한글 공부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지난 6일 오전 광주 동구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한글 기초반 수업에서 한 할머니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23.10.9 daum@yna.co.kr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이름 석 자, 내 손으로 쓰는 게 한평생 소원이었제. 못 배운 서러움은 말도 못 해"

577돌 한글날을 앞둔 지난 6일 오전 광주 동구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늦깎이 학생 최순자(77) 할머니는 주름 쥔 손으로 잡은 몽땅 연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76년 동안 까막눈으로 살다가 지난 3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한글 기초반에 등록한 그는 이른 아침부터 수업이 시작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전날 밤에도 홀로 공부했다는 최씨는 '가지', '바나나' 같은 받침이 없는 단어가 빼곡하게 적힌 노트를 가리키며 콧노래를 불렀다.

한글을 배운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아 'ㄱ,ㄴ,ㄷ' 자음과 'ㅏ,ㅑ,ㅓ' 모음을 그림 그리듯 쓰는 수준이지만, 가슴 한구석에 맺힌 서러움을 풀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먹고살기 바쁜 데다가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조차 가지 못했다"며 "나이 들어서는 애들 뒷바라지하다 보니 이 나이가 됐다"고 전했다.

이중모음이 들어간 탓에 본인의 이름은 아직 쓰지 못한다는 최씨는 대신 노트에 자녀의 이름을 써 보였다.

또 수업 올 때 가지고 온 가방에 '최순자'라는 이름을 바느질했다며 자랑했다.

학구열 불타는 한글 기초분 수업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지난 6일 오전 광주 동구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한글 기초반 수업에서 할머니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23.10.9 daum@yna.co.kr

수업이 한창인 교실에서는 평균 연령이 80대인 할머니 학생들의 학구열이 불탔다.

네모난 종이에 한글 단어를 눌러쓴 학생들은 획순이 틀리거나 'ㄷ'을 'ㅌ'으로 적으면 지우개로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한글 기초반에 등록한 이들은 글을 배우는 이유로 "답답함 때문이었다"며 "배우는 글자 하나에 미소도 하나씩 늘어난다"고 입을 모았다.

정모(71) 씨는 "버스, 간판 모두 다 한글이 적혀있는데 글을 몰랐을 때는 어두운 세상에 갇혀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며 "뒤늦게나마 글을 배우고 깨우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한글 수업을 받는 할머니 학생들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한글을 대하는 현 풍토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배용태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거동이 불편하신 와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에 오시는 걸 보면 존경을 넘어 감탄까지 나온다"며 "'한글에는 우리 민족의 얼이 있다'는 한 할머니의 말에 힘입어 수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 관장은 "요즘에는 한글보다는 영어를 중요시하며, 영어 조기 교육을 하는 현세대의 모습은 한글날을 앞두고 아쉽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da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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