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상 노후 댐 615개 중 63%…‘물폭탄’ 안고 산다

박수혁 2023. 10.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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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댐 피해지역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박기영)와 강원연구원이 지난 8월 강원연구원에서 ‘소양강댐 주변지역 지원 대책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포럼을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강원연구원 제공

댐 건설이 가져오는 편익과 손실 가운데 어느 게 더 클까? 소양강댐 건설 50돌을 맞아 던지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지난해 강원연구원이 소양강댐 건설로 주변지역이 입은 피해 규모를 조사했더니, 6조8300억~10조1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몰지·이주민 발생에 따른 지방세 수입원 감소와 농림업소득 기회비용 상실액이 연간 813억~1133억원, 댐 건설에 따른 안개 증가로 농업소득 감소와 호흡기 등 주민 건강 피해, 차가운 댐 물 사용에 따른 난방비 증가 등 저온수 피해로 연간 553억~897억원, 댐의 흙탕물 방류에 따른 수질·정수처리 비용 추가 등을 더한 금액이다.

뒤늦게 시작된 댐

주변지역 지원제도 소양강댐 건설이 가져온 편익도 무시할 수 없다. 용수 공급과 전력 생산에 따른 직접 수익 외에 홍수 피해 저감 같은 간접 편익도 어마어마하다. 서울의 확장과 강남 개발, 한강 유역의 수도권 발전도 댐 건설을 통한 치수 능력 확대 없이는 불가능했다. 문제의 핵심은 댐 건설로 이익을 얻는 쪽과 피해를 보는 쪽이 공간적으로 분절돼 있다는 사실이다. 한강 유역의 댐 건설 역사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서 댐 주변지역 지원사업은 소양강댐이 준공된 지 16년 뒤인 1989년 ‘발전소 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나서야 시작됐다.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하자 뒤늦게 지원사업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원 규모는 피해액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소양강댐 주변지역에 지원된 사업비만 봐도, 지난 30여년 동안 1120억원으로 한해당 34억원 수준에 그친다.

배명순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뒤늦게 댐 주변지역 지원제도가 시행됐지만 강원도와 충북, 경북 등의 주민들이 입은 댐 건설에 따른 피해에 견줘 3.0~3.8%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원금 산정 기준도 비합리적이고 근거가 없는데다, 중장기 집행 계획도 없어 일시적인 민원 해결용에 그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러니, 피해 지역에선 제대로 된 보상을 위해 댐에서 얻어지는 초과 수익을 피해 지역 주민을 위해 사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소양강댐을 예를 들어 보면, 건설 당시 비용은 288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한국수자원공사가 부담한 비용은 233억7100만원이었다. 하지만 2018년 국회예산정책처 보고를 보면,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소양강댐의 발전 부문 추정 이익만 5001억원에 이른다. 여기서 공사비 부담금과 시설유지관리비 합계액 1898억원을 빼면 3103억원이 남는다. 댐 사용권을 얻은 수자원공사가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발전 부문에서만 163.5%를 회수한 셈이다.

5대강유역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진장철 강원대 명예교수는 “피해 지역과 수혜 지역이 다른 불평등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핵폭탄이 무섭다고 하지만 춘천 시민들은 평생을 물폭탄을 지고 산다는 불안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김영환 충북지사와 김진태 강원지사 등이 지난해 11월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를 상대로 ‘불합리한 댐 주변지역 지원제도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충북도 제공

댐에서 나온 물은 누구 것?

오랜 기간 억눌려온 댐 주변지역의 불만은 수리권(물 사용권)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상류 지역은 풍부한 수자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권한이나 이익은 없고 규제 등 피해만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춘천의 ‘물값 논쟁’이 있다. 춘천 시민들은 1995년부터 소양강댐 하류에 소양취수장을 짓고 물을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수자원공사 쪽이 물값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춘천시는 취수 지역이 소양강댐 안이 아닌 하류 지역이고, 댐 건설 이전부터 흐르던 소양강에서 취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값 납부 대상이 아니라고 맞섰다.

이후 한국수자원공사는 소송까지 제기했고, 시민들은 ‘부당 물값 청구 저지 및 수리권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여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다 정부가 춘천시의 하천점용허가 연장 신청을 반려하는 등 압박에 나서자 춘천시는 2014년 소양강댐 위쪽으로 취수장을 옮기는 대신 미납 물값 가운데 5년치만 내는 선에서 갈등을 봉합했다.

강원도뿐 아니라 충북 등 댐 건설로 각종 규제 피해를 보고 있는 광역자치단체들의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김영환 충북지사와 김진태 강원지사 등은 지난해 11월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를 상대로 ‘불합리한 댐 주변지역 지원제도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충북과 강원도는 전국 1, 2위인 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충북과 강원 도민의 희생을 담보로 만든 댐의 사용과 수익은 정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해결 방안으로 댐 운영·관리에 유역 자치단체의 참여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갑)도 지난 8월 춘천 등 댐 상류 지역의 피해를 치유하기 위해 ‘물관리기본법 개정안’ 등이 포함된 ‘물값 제대로 받기 4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수자원 사용량에 비례해 취수부담금을 부과하고, 지자체 주도로 물 관리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뼈대다.

정선 주민들이 20여년 동안 발전 방류가 중단된 채 사실상 방치되면서 오히려 지역에 피해를 주고 있는 평창의 도암댐을 해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선군 제공

“댐 만능시대 졸업하자”

댐으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고 지역 갈등이 커지면서 댐 해체 논의도 촉발되고 있다. 강원도 평창의 도암댐은 1256억원을 투입해 1991년 완공된 수력발전용 댐이다. 하지만 댐에 물을 가두다 보니 수질이 악화돼 발전을 위해 물을 방류하면 하류 지역 하천과 상수원까지 오염시키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자 정선과 강릉, 영월, 평창 등 댐 주변지역 주민들이 궐기대회와 상경 투쟁 등을 벌였고, 결국 2001년 발전 방류 중단이 결정됐다.

임채혁 정선군번영연합회장은 “현재 도암댐의 잔존가치는 800억원에 불과한데 정선군이 2017년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도암댐 흙탕물 방류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액만 1조306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의 온상인 도암댐을 하루빨리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조가 창궐한 영주댐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경북에선 낙동강 수질 개선을 목적으로 지은 영주댐에 해마다 심각한 녹조가 발생하면서 댐 자체를 철거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강호열 낙동강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영주시는 영주댐에 1조원의 사업비를 들여 관광댐으로 개발하겠다고 하는데, 녹조로 가득한 호수에 누가 찾아오겠느냐”고 꼬집었다.

환경단체 쪽에서는 노후 정도가 심각하거나 용도가 분명하지 않은 채 방치되는 댐의 경우, 해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1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노후 인프라 개선을 위한 민간투자사업의 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다목적댐과 발전용 댐, 홍수전용댐 등 전국에 산재한 댐 615개 가운데, 쌓은 지 30년 이상인 댐의 비율이 63.4%(390개)에 이를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하다.

실제 외국에선 오래된 댐들을 지속적으로 없애고 있다. 미국은 1912년부터 2015년까지 노후화하거나 용도가 없어진 1300개의 댐과 보를 철거했으며, 2015년 한해에만 62개의 댐을 해체했다. 지난 9월10일 댐 붕괴로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리비아의 댐 2곳 역시 지은 지 50년이 가까운 노후 시설이다.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공동대표는 “댐은 생태계 단절과 왜곡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방벽이다. 댐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효과는 떨어지고 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댐 정책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더라도 이후 댐 건설 계획은 변화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허재영 충남도립대 명예총장은 “미국과 일본 등에선 기능을 다한 보나 소형 댐 등을 철거해 하천을 복원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 우리도 철거에 따른 환경적 편익과 비용 등을 분석하고 이해관계자들과 합의를 끌어내는 방향으로 하천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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