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스쳐간 자리엔 공실뿐…자영업자 쓰러지자 텅 빈 상권[벼랑 끝에 선 자영업]

2023. 10. 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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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금리·高인건비에 임차 수요↓, 신도시 역세권·강남 번화가도 ‘휘청’
호가 높은 수익형 부동산, 경매 시장에서도 ‘찬밥 신세’
광명역자이타워 1층 양편에 자리한 스트리트 상가들 대부분이 비어 있는 상태다. 사진=민보름 기자


“회식 문화가 사라져서인지 최근 고깃집 몇 군데가 문을 닫았어요. 직장인들도 돈을 예전보다 훨씬 덜 쓰는 것 같고요.” 경기도 광명시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직장인 K(45·경기도 거주) 씨의 말이다. 

9월 22일 KTX광명역 인근 광명역자이타워 내 상가를 찾았다. 손님들이 몰려야 할 점심시간이었지만 한산하다 못해 적막한 분위기가 돌았다. 오피스 상권과 대단지 아파트를 두루 끼고 있는 탁월한 입지에도 1층 상가는 3분의 2가 공실로 남아 있었다. ‘임대’ 표지와 공인중개사무소나 상가주 연락처만 눈에 띄었다. 이곳 상권은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공실률로 유명한 지역이 됐다.

비슷한 현상은 광명뿐만 아니라 고양시 삼송지구, 하남·성남 위례신도시, 인천 청라국제도시 등 다른 수도권 택지지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입지가 좋아 높은 분양가에 팔렸던 상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높은 분양가에 따라 형성된 높은 임대료 등이 공실을 부추기기도 한다. 높은 공실률은 자영업자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하다.

 

엔데믹에도 유동 인구 ‘뚝’, 신규 창업 엄두도 못 내

광명시 건물 내 상가는 부동산 시장이 호황기에 진입하던 2017년 3월 분양을 시작했다. 기대감으로 분양가는 꽤 높은 수준에 책정됐다. 대형 건설사 브랜드와 단지 내 오피스(지식산업센터) 상주 수요, KTX광명역 역세권 유동 인구 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43㎡(13평)짜리 1층 소형 상가가 약 10억원에 공급되기도 했다.

신축 아파트나 새 건물 내 상가는 입주가 끝나고 상주 수요가 자리 잡으면서 점차 활성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광명역자이타워 내 지식산업센터는 80% 이상 입주한 상태다. 하지만 준공 4년여를 맞는 건물 상권은 준공 후 공실이 줄기는커녕 늘고 있다. 손님이 몰리면 주차 공간조차 부족한 인근 코스트코코리아 광명점, 이케아 광명점과 극명히 대비된다. 높은 분양가에 따라 월 임대료는 3.3㎡(1평)당 20만원 수준으로 형성됐지만 일부 상가주는 임대료를 낮추면서 장사할 사람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가 커피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광명역자이타워 상가가 공실인 모습. 사진=민보름 기자



코로나19 격리가 끝난 지금도 상권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영업하던 가게 일부도 임차인이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고 있다. 대부분 자영업자인 임대인들이 고금리 부담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광명역세권 상가 공실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급 과잉과 고금리”라면서 “택지지구 특성상 상가가 과잉 공급된 데다 최근 대출 금리와 인건비가 함께 오르면서 기존 점포는 어려워지고 신규 창업 문의는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명 역세권 개발 사업으로 탄생한 광명역자이타워 사례는 택지지구 내 상가 공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공공 기관이 개발 수익을 높이기 위해 상가 비율이 높은 상업용지·준주거용지 등을 필요 이상 공급한 결과다. 2021년 12월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광명역세권지구 내 상업지역(일반상업지역·유통상업지역 포함) 면적은 전체(192만3012.8㎡)의 37.91%에 달한다. 준주거지역은 11.07%를 차지하고 있다. 유동 인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던 인근 대형 몰은 일명 ‘빨대 효과’를 일으키며 수요를 흡수하며 상가 공실을 더욱 심화시킨다.



인천 청라지구에서 공실로 유명한 상가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곳은 청라 스퀘어세븐이다. 신도시 중심 수변공원인 커넬웨이에 인접한 입지에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입점했지만 공실 해소에는 도음이 되지 않고 있다. 초기 수백만원대 임대료에 높은 관리비까지 더해져 유동 인구 대비 비용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2021년 입주한 청라테트리스타워는 1층부터 고층까지 비어 있는 상가가 대부분이다. 이들 상가는 준공 당시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과 천장 전선·배관이 노출된 상태다. 임차인이 집기를 채 치우지 못한 채 문을 잠그고 방치한 상가도 눈에 띄었다. 청라국제도시 한 점포 사장은 “청라신도시 상가는 입주 당시부터 상가 매출 대비 임대료와 관리비가 비싸게 책정돼 공실이 더 심해지기도 했다”면서 “지금은 임대료와 관리비가 낮아졌다고 해도 영업이 안 된다는 이미지가 강해 들어가려는 업주들이 없다”고 말했다.

도시 개발로 대규모 상가가 형성된 고양시 삼송지구와 위례신도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삼송지구의 월드에비뉴, 위례신도시의 엘포트몰 등도 공실로 분양받은 상가주의 한숨이 깊어 가고 있다. 


임대인·임차인, 오른 이자에 ‘동상이몽’

신도시 상가 분양 시장은 한때 호황을 누렸다. 금융 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과 주택 규제를 피한 투자 수요, 노후 대비를 위한 장년층의 은퇴 자금까지 수익형 부동산에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부 수도권 상가는 단기간에 분양이 마감되는 것은 물론 웃돈까지 붙어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도시 입주가 본격화하고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는 동안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기대 이하의 수익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 분양가가 높았던 만큼 높은 임대료를 기대했지만 임대료를 받기는커녕 대출 이자와 관리비를 내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경매에 나오는 상가 물건도 대폭 늘고 있다. 하지만 인기는 별로 없다. 특히 고금리는 새로운 상가 수요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경매 정보 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이후 수도권 상가 매각률과 매각가율이 급락한 채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상태다. 특히 물건 수 대비 낙찰 비율을 나타내는 매각률은 반 토막이 났다. 이주현 지지옥션 수석연구원은 “고가에 분양한 공실 상가는 감정가 자체가 높더라도 유찰을 반복하다가 수익률을 맞출 수 있는 최저 입찰가에 근접해서야 낙찰되는 편”이라며 “최근 버티지 못한 수도권 신축 상가들이 법원 경매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지하철 개통 등 교통 호재가 실현되면 역세권은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일부 부동산 관계자들의 낙관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나마 존재하던 신도시 수요마저 지하철 노선을 따라 서울 중심 상권으로 이동해 버릴 위험이 존재한다. 실제 신분당선 개통 이후 분당신도시 최고 상권이던 정자동 카페거리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이 있던 강남대로변 건물이 비어있는 모습. 사진=민보름 기자



현재는 강남을 상징하는 신사동 가로수길과 강남대로 상권조차 불경기와 고금리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상권의 특징은 대로변 1층 상가 공실이 많다는 점이다. 불과 2~3년 전 부동산 호황기를 맞아 높은 호가에 건물을 매수한 소유주들이 임대료를 올려 받으려는 과정에서 1층 공실이 심화하고 있다. 99㎡(30평) 상가 월세가 5000만원을 호가하는 신사동 가로수길은 대기업 안테나 숍조차 버티지 못하고 나가면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대표 격이 된 상태다. 그 대신 이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이면 도로 상권이 더욱 활성화하는 추세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탬버린즈와 논픽션 같은 브랜드도 대로변이 아닌 이면에 자리 잡았다.

논현동에 소재한 강남대로 앞 건물은 1층부터 3층까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원래 해당 상가는 저축은행이 임차하고 있었지만 최근 건물주가 바뀌면서 공실이 됐다. 썰렁한 대로변과 달리 좁은 이면 상권은 빈 상가 없이 식당과 술집으로 가득했다. 아직 퇴근 시간을 앞둔 오후인데도 거리에 행인들이 많았다. 자영업자들이 대로변을 피해 이면 도로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서울 대형 상권의 공통적 특징이다. 

상가 투자 전문가인 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는 강남권 건물 공실에 대해 “강남 부동산 시세가 한창 오를 때 높은 호가에 건물을 산 건물주들이 고금리에 직면하면서 투자 수익률과 수백억원에 달하는 건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임대료를 높였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건물주는 임대료를 낮출 수 없는데 임차인 역시 이자 부담에 불경기까지 겹친 상황에서 월세를 더 낼 수 없어 ‘미스 매치’가 발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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