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고 공급 늘린 정부…침체된 주택 시장 활기 돌까 [비즈니스 포커스]
수요 진작 대책 없어 실효성 의문, PF 대출 확대 리스크도 커져
정부가 주택 시장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목표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급감한 주택 공급 물량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100만 호(인허가 기준)’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빼들었다.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에서 9월 26일 열린 ‘제6차 부동산 관계 장관 회의’에서 발표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에는 단기 주택 공급 증대를 위한 전방위적 대책이 담겼다.
주택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기에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주택 사업 활성화에 나섰다는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매매·전월세 가격 상승의 불씨를 잡고 주택 시장을 지속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시장 원리에 따라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조 조정이 진행돼야 할 주택 시장에 정부가 섣불리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역시 제기된다. 서울 등 일부 선호 지역 외에는 수요가 줄며 미분양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계획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심사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금융 지원 방안이 자칫 퇴출돼야 할 부실 현장에 기회를 준다는 신호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탄력성 높은 주택시장…빠른 대응은 긍정적
정부는 이번 발표 배경에 대해 “지난해 8월 270만 호 공급 계획 수립 등 그간 공급 규제 합리화를 추진한 결과 선호도 높은 도심 내 민간의 중·장기 공급 기반이 강화됐고 수도권 중심 신규 택지 지정으로 공급 여력도 확충됐다”면서 “다만 작년 하반기부터 공급 여건이 악화되면서 단기적으로 주택 공급이 위축돼 안정적으로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주택 건설 사업 여건은 급변했다. 2021년 말 3~4% 수준이던 부동산 PF 대출 금리는 올해 8월 들어 8~9%를 기록하며 2배 이상 높아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인허가를 마쳤음에도 공사를 연기한 착공 대기 물량이 33만1000호에 달한다. 인허가 규모도 줄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3년 8월 기준 주택 통계’를 보면 8월 누계 기준 전국 주택 인허가는 21만2757호로 전년 동기 34만7458호 대비 38.8% 감소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알려진 준공 후 미분양은 9892호로 전월 9041호보다 3.9%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주택의 수요와 공급이 경기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움직이며 발생한다. 부동산 경기가 하락할 때는 주택 수요가 줄며 미분양이 급속도로 늘다가 다시 시세 상승 조짐이 보이면 잠재 수요까지 주택 매수를 시작하며 더욱 거세게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다. 주택 공급 물량 또한 경기에 따라 증감이 심하다. 그런데 공급은 인허가·건축 기간이 걸리는 문제로 호황기에 수요가 증가하는 속도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다. 그 사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며 집값이 급등한다. 2014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발생한 현상이다.
이에 따라 주택산업연구원을 비롯한 연구 기관과 업계 전문가들은 정책적으로 주택이 꾸준히 공급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장기 공급뿐만 아니라 내년까지 단기 공급 또한 신경 쓰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 내용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민간 공급을 증가시키는 한편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저렴한 공공 주택을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분양가를 비롯해 주택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방위적 사업자 지원에 ‘도덕적 해이’ 우려
시장에선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 중 특히 민간 사업자가 공급을 미루고 있는 대기 물량을 시장에 풀기 위한 지원책에 관심을 집중한다. 정부가 3기 신도시 토지 이용 효율성 제고 등을 통해 공급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밝힐 만큼 공공 부문에서 추가 공급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밝힌 공공 주택 공급 규모는 12만 호다. 결국 이번 대책의 성패는 100만 호 중 공공 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을 책임질 민간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먼저 그간 민간 사업자들의 주택 사업 기간을 지연시켰던 인허가 과정을 손질한다. 우선 사업 승인을 위한 교통 영향 평가와 경관 심의 등에 대한 ‘통합 심의’가 의무화된다. 교육부는 주택 사업자들에게 비용 부담을 안겼던 학교 시설 기부 채납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한다. 또 학교 용지 부담금 면제 대상을 현재 임대 주택에서 전용 면적 60㎡ 이하 주택까지 확대한다. 이와 함께 공공 택지 전매를 1년간 한시적으로 풀어 자금 여력이 있는 업체가 여건이 안 되는 기업의 토지를 인수해 주택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금융 지원 측면에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당초 계획보다 PF 대출 보증 규모를 5조원 확대해 각각 15조원, 10조원을 보증한다. 정부는 PF 대출 심사 기준도 완화해 보증 대상 사업장을 늘리도록 할 계획이다. 대출 보증 한도는 전체 사업비의 50%에서 70%로 높인다. 이 밖에 현재 대출 심사 시 적용되는 ‘시공사 도급 순위 700위’ 기준이 폐지되며 자기 자본 선투입 요건도 낮아진다.
부실 우려 사업장에 대해서는 대주단 협약을 통해 사업 재구조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 대신 신규 자금(PF 정상화 펀드) 규모는 당초 1조원에서 2조원으로 늘어나며 HUG 중도금 대출 보증 책임 비율은 현행 90%에서 100%로 높아진다. 연립·다세대·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사업에 대해서는 건설 자금이 1년간 한시적으로 지원된다. 은행권이 중도금 대출 심사 과정에서 초기 분양률을 적용하는 관행이 정부 점검 대상이 되면서 합리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허가 규제 완화는 정부가 주택 사업자들이 바라던 내용을 대폭 수용한 모양새다. PF 대출 규모 확대 등은 시장의 ‘돈맥경화’를 해소해 본격적인 착공·분양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분양 우려가 여전한 현 시장 상황에서 수익성을 목표로 하는 민간 주택 사업자들이 공급에 나설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이 잘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규제가 강하고 금리가 높아도 사업자들은 주택 공급을 하게 돼 있다”면서 “취득세 감면 등 수요를 진작할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주택 공급은 사업성이 관건인 만큼 이번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이 당장 시장 활성화와 주택 공급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처럼 시장이 꺾인 상황은 오히려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를 실행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므로 시장이 바뀔 때를 대비해 여러 규제 요인을 조정해 두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PF 대출 확대 방안이 일부 부실 사업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재로서는 PF 대출 대상과 재구조화 대상을 결정하는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한문도 교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정리돼야 할 부실 현장이 살아남아 대출 이자만 쌓아 가다 부도로 넘어가는 등 시장 전체의 위기가 발생핳 수 있다”면서 “정부가 자연스럽게 구조 조정돼야 할 주택 시장에 잘못 손대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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