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8시간 근무제, 저출산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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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에게 들었다
이상림(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출산 주저하는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이 우선
대한민국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하더니 올해 2분기에는 더 낮은 수치인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동독이 무너졌을 때 동독 지역에 잠깐 합계 출산율이 0.78%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붕괴됐을 때 나오는 역대급 수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2006년부터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280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인구 절벽’의 위기를 맞았다. 이상림 박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는 청년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의 생애 과정 이행이 멈춰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청년들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지, 청년들에게 어떤 기회와 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년들이 출산을 주저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해결해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Q 1인 가족과 비혼 가족이 늘고 있습니다. 그저 개인의 선택으로만 봐도 되는 문제인가요?
1인 가구는 크게 세 형태가 있는데 사별한 노인 가구, 이혼한 중년 가구, 미혼의 청년 가구입니다. 미혼 청년들의 경우 겉으로는 개인의 선택으로 보이지만, 사실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청년들이 생애 과정을 이행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졌어요. 안정적 직장을 얻거나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굉장히 힘듭니다. 우리나라는 대학생들이 졸업할 때 이미 학자금 대출을 비롯해 대출을 많이 떠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평생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 속에 살게 되는 거죠. 그런 친구들이 결혼을 선택하기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혼인이라는 게 굉장히 안정적인 집안에서만 해야 하는 걸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은 가족의 친밀성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경쟁 사회 속에서 치열한 사교육을 받으며 자란 청년들 중에는 가족의 정서적 친밀성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어른이 된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할 욕구를 못 느끼는 겁니다.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간과하고 개인의 선택으로만 한정 짓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Q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유독 심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구조적으로 우리나라 청년들이 굉장히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일자리, 주거, 사교육비 문제 등이 안 풀리니까 청년들이 결혼을 선택하기 힘들고 아이를 낳기 힘든 거죠. 또 하나는 가족이 행복하지 않은 체제입니다. 그러니 청년들이 결혼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장시간에 걸쳐 생겨난 구조적 요인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전문가들도 정부 탓을 하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국민들도 전문가들도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가 다 함께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거죠.
Q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합니다.
사실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자꾸 개별 사업들을 벌이니까 좀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혼부부를 위해 주택청약 공급을 늘리고 전셋값을 보조해준다고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죠.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청년들이 미래를 굉장히 불안하고 어둡게 봅니다. 이런 것들이 지원금 몇 푼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비용이 만들어지면 출산율이 오를 거라는 생각이 잘못된 겁니다. 방향성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Q 저출산 관련 정책들이 실효성에서 별 효과가 없다는 거군요.
하지만 다양한 정책이 사회에 많이 반영된 건 사실입니다. 20년 전 우리나라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중 가족 부문 지출이 굉장히 낮아 OECD 국가 평균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사실 혼인과 출산 환경이 예전보다는 굉장히 좋아졌어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첫째와 둘째 자녀를 둔 부모들은 확실히 예전보다 아이 키우기가 수월해졌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보육 시설도 최고 수준이고, 육아휴직 기간도 세계에서 가장 길어요. 그런데도 출신율이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출산 해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정부 정책이 바로 주 48시간 근무제라는 겁니다. 퇴근이 빨라지고 야근이 없어지다 보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거죠. 그런데 정작 주 48시간 근무제는 저출산 정책에 포함이 안 됩니다. 복지 지원만이 답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완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사회정책, 노동정책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Q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외국의 사례가 있나요?
독일의 경우가 좋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복지 지원 확대를 중요하게 생각해 프랑스와 스웨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우리 사회 실정에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독일은 통계상으로는 출산율이 낮지만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사실 대표 정책이 별로 없고, 교육 개혁과 산업 개혁, 노동 개혁 등을 천천히 하면서 달라지고 있는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예산 확장이나 정책 확대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과 시민의 참여를 많이 독려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기 위해 가장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청년들은 결혼하고 나서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습니다. 결혼하면 오히려 대출이 끊기기 때문이죠. 물론 단편적인 예시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비혼을 조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30%대밖에 안 되지만, 사실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경우는 10%도 안 됩니다. 대다수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유보적인 의견인 거죠. 이 말은 청년들의 상황이 좀 나아지거나 좋은 상대를 만나면 결혼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의 생애 과정을 이해하고, 청년들이 생애 과정을 이행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원인들이 무엇인지 바라보고 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박현구(프리랜서)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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