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1건 '서울시의회 조례 불복'→조희연, 올해만 4건
올해에만 4건…시의회 다수 당 '진보→보수' 변화 영향
"교육만큼은 정쟁 안 돼…학생 중심에 놓고 협치해야"
[서울=뉴시스]김경록 기자 = 세 번째 임기를 맞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국민의힘이 다수 의석을 보유한 서울시의회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예산에 이어 올해는 조례를 사이에 둔 갈등도 극한에 치닫고 있어 이제는 협치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뉴시스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서울시의회에서 재의결한 조례안을 교육감이 대법원에 제소한 경우는 단 1건이었다.
2013년 '학생인권옹호관 조례안'에 대한 재의결 무효확인 및 집행정지 신청 건으로, 당시 문용린 전 서울시교육감이 대법원 제소를 진행했으나 이듬해 당선된 조 교육감이 소를 취하하고 집행정지를 취소했다.
대법원 제소는 교육감이 시의회 의결에 불복할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최후의 행정적 수단이다.
시의회 본회의 의결(재석의원 과반 동의), 교육감 재의요구, 시의회 재의결(재석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을 모두 거쳐도 조례안에 위법한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교육감은 무효확인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대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대법원에서 집행정지를 인용하면 시의회 의장이 조례안을 직권 공포했더라도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 효력이 정지된다.
이처럼 절차도 까다롭고, 그 과정에서 교육청과 시의회 간 갈등도 불가피하기 때문에 지난 13년 간 서울시교육청의 대법원 제소는 1건 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올해만 시의회에서 재의결된 조례안 4건을 대법원에 제소했다.
시작은 지난 5월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었다. 시의회에서 제안하고 의결 및 재의결까지 진행한 이 조례에는 단위 학교가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를 공개하면 교육감이 포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조 교육감은 정부법무공단 법률 자문을 근거로 교육기관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대법원 제소를 진행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조 교육감은 시의회 시정연설을 통해 대법원 제소의 당위성을 설명할 계획이었으나, 시의회측이 시정연설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자정까지 본회의를 정회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 지난 5일에는 조례안 3건을 무더기로 대법원에 제소했다. 각각 모두 위법한 소지가 있다고 조 교육감은 주장했다.
우선 '학교환경교육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으로 '생태전환교육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대체하는 것은 환경교육과 생태전환교육 간 근거 법령이 달라 어렵다고 봤다. 이에 2건을 모두 대법원에 제소했다.
또한 '노동조합 지원 기준에 관한 조례안'의 경우 헌법에 규정된 교육감과 노조의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체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시의회에서 재의결까지 진행한 조례안이 올해에만 4건이나 대법원으로 넘어가자, 김현기 시의회 의장은 논평을 통해 "시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를 무시하는 행태"라며 "집행정지 기각 시 엄히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조 교육감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교육감을 역임하고 있는데, 유독 최근 시의회와 충돌이 잦은 이유는 정치 지형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진보 성향인 조 교육감은 같은 진보 성향을 띠는 정당이 집권한 시의회와는 충돌이 크지 않았다. 9대 시의회(2014~2018), 10대 시의회(2018~2022) 모두 진보 정당(9대 새정치민주연합, 10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정권 교체와 함께 보수 성향인 국민의힘이 112석 중 70%에 달하는 76석을 차지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에 학력진단, 생태전환교육, 노조 지원 등 좌우 성향에 따라 방향성이 다른 문제는 어김 없이 조 교육감과 시의회가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시한폭탄도 언제 터질지 몰라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조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에는 동의하지만 폐지는 '절대 반대' 입장이다. 2010년 경기에서 처음 제정돼 서울에는 2012년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 대한 체벌·차별 금지 등 조항을 담고 있으며 진보교육의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최근 교권 추락의 원흉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되면서 주민조례청구를 통해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지난 3월 발의됐다. 아직 시의회 교육위원회 심사 단계인데도 안건 상정 여부를 놓고 무기한 정회 사태가 벌어지는 등 조짐이 심상치 않다. 오는 12월 돌아오는 시의회 회기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될 경우 5번째 대법원 제소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로 멈춰있던 학교현장이 활기를 되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 1년 넘게 이어지는 조 교육감과 시의회 간 갈등에 서울교육 관계자들은 누적된 피로감을 호소하며 협치를 촉구했다.
김성일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시의회도 초창기에 교육청 예산을 무리하게 삭감한 측면이 있고 교육청도 교육청대로 한쪽으로 치우친 측면이 있다"며, "서로 성향이 다를 수 있지만 교육만큼은 정치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대립각만 내세우지 말고 서로 양보하며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근병 서울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시의회가 교육청을 상대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보여진다"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은 교육청과 시의회 모두 정파를 떠나 양보하고 인정해서 교육현장에 혼란이 없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혜승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교육청과 시의회 간 갈등의 피해는 결국 학교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현장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고 조 교육감 마지막 임기인 만큼 마무리하고자 하는 정책들이 잘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이제는 양 기관이 정쟁하지 말고 학생을 중심에 놓고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knockro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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