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화는 누군가의 희생에 빚지고 있더라”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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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한창인 캠퍼스에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축제 여파로 "말도 못하게" 일거리가 쌓였다고 성토하던 윤화자씨(66)의 얼굴이 밝아진 건 무대 앞에서였다.
"더 늦기 전에 바뀌어야 할 게 많아요. 그래도 누가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거, 그게 참 든든해요. 아줌마가 아니라 여사님, 분회장님 하고 부르거든요." 사람들이 떠난 대학 캠퍼스에, 15년 차 청소 노동자 윤화자씨의 '몫'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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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한창인 캠퍼스에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축제 여파로 “말도 못하게” 일거리가 쌓였다고 성토하던 윤화자씨(66)의 얼굴이 밝아진 건 무대 앞에서였다. 10년 전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던 중앙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이 있던 자리다. ‘10년’이란 숫자에 감회가 새로웠다. 2013년 9월27일 윤화자씨는 당시 용역업체의 비인격적 대우에 항의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청소·경비 노동자 10명이 모인 자리에서 “얼떨결에” 분회장으로 뽑혔다는 그는, 그해 12월부터 이어진 파업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현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중앙대 분회장이다.
첫 출근일이 또렷하다. 2008년 5월1일 노동자의 날. 식당을 접고 51세에 시작한 일이었다. “서빙은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 그러데. ‘물일’ 하기 싫어서 관둔 건데 설거지는 죽어도 하기 싫더라고.” 청소 용역업체 면접에서 그는 “시켜만 주시면 잘하겠다”라고 간청했다. 대학가 청소 노동자 월급이 70만원이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계약서상으론 오전 7시부터지만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오기 전에 끝마칠 수 있었다. 정신없이 쓰레기통을 비우고 물기를 닦은 후에야, 눈에 띄지 않는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산재보험과 연월차도 없었고 ‘잡담이나 콧노래를 삼가라’는 인권침해적 규정도 있었다. “한 달만 하고 때려쳐야지”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싸우고 요구하고 바꿔가다 보니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지난 10년은, 데모를 ‘배부른 소리’라 생각했던 한 청소 노동자가 “이래서 노조 하는구나”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도움으로 노조를 결성하자 용역업체는 ‘아줌마들이 무슨 노조냐’ 비난했고, 학교는 사실상 방관했다. 총장실 점거부터 대자보 부착, 천막 농성을 벌이며 윤화자 분회장이 외친 건 “사람 대우”였다. “그땐 정말 속상해서 서로 끌어안고 엉엉 울기도 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어요.” 44일간의 파업 끝에 노동조합을 인정받았을 땐 후련했다. 매년 월급이 몇백 원씩 인상된 덕분에 올해 시급 1만원을 넘었고 정년도 65세에서 71세로 연장되었다. 또 아프면 쉴 수 있다. “모두 노조가 생기고 나서 바뀐 것들이에요. (동료가) 우리는 71세까지 무조건 ‘고(go)’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싸운 게 아까워 일터를 못 떠났다는 윤 분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2013년 중앙대 청소 노동자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간접고용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끌어냈다. 윤 분회장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라고 본다. 2021년 8월 서울대 한 청소 노동자가 폭염 속 에어컨 하나 없는 휴게실에서 숨졌다. 그 이후 중앙대 청소 노동자 휴게실마다 에어컨이 설치되는 걸 보며 ‘어떤 변화는 누군가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바뀌어야 할 게 많아요. 그래도 누가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거, 그게 참 든든해요. 아줌마가 아니라 여사님, 분회장님 하고 부르거든요.” 사람들이 떠난 대학 캠퍼스에, 15년 차 청소 노동자 윤화자씨의 ‘몫’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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