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건설사 24곳이 문을 닫았다’

김원장 2023. 10. 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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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유명 건설사의 PF부도설이 또 불거졌습니다. 애시당초 부동산PF라는 게 미운오리새끼같은 땅을 백조로 만드는 겁니다. 150개 이상 공무원들의 도장을 받아 용도변경에 성공하면 대박이고, 그러다 금리가 오르거나, 집을 사겠다는 대중들의 욕구가 식으면 쪽박입니다. 그러니 내가 제발 끝물이 아니기를 바라며 작두 타는 겁니다. 다 알고 있는 거잖아요.

미국처럼 투자받아 땅을 사지않고, 은행 돈을 빌려 부동산 사업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들 위험을 혼자 떠맡기는 싫은 거죠. 시행사는 10% 정도되는 에쿼티(자기 지분)만 들고 사업의 주인이 되고, 건설사는 손 안대고 코 풀고, 은행은 한방에 대박 이자놀이가 가능합니다. 이 얼마나 한국적입니까.

그래서 삼성물산같은 건설사는 아예 PF 사업을 안합니다. 재건축 재개발만 하죠. 포스코건설 같은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PF사업에 지급보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회계기준이 바뀌면서 지급보증한 금액도 부채로 잡히거든요.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해외입찰에서 불리해지니까 지급보증 안합니다. 대신 ‘책임준공’이라는 우리만의 비법을 개발해냈죠.

그런데 왜 중견건설사들은 위험한 PF사업에 지급보증을 계속했을까. 그래야 대형건설사들을 제치고 시공권을 따내죠. 소비자들이 자이나 힐스테이트만 찾는데 무슨 방법이 있나요. 그러니 중견건설사들의 탐욕을 욕하는 것도 참 하나마나 한 지적같아요. 지금 위기설이 퍼진 그 건설사는 자본금이 2백억 원 조금 넘는데, PF대출 잔액은 4조 원이더군요.

아파트 가격이라는 게 참으로 묘해서, 자동차나 운동화는 가격이 10% 내리면 더 잘 팔리고 30% 내리면 다들 사려고 줄을 서는데. 그런데 아파트는 10억 원 하던 아파트가 11억 원이 되면 더 잘 팔리고 15억 원이 되면 다들 못 사서 안달이 나죠. 그 아파트가 또 9억 원이 되면 또 아무도 안 사요. 그 끝물에 걸리는 건설사는 대책 없이 다들 무너집니다.

(부동산에 대한 우리 마음은 언제든 돌변합니다. 2011년 KBS 9시뉴스는 여론조사를 했는데요, 집주인의 43%가 집을 산 것을 후회한다고 답했어요. 그중 22%는 1년 안에 집을 팔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가을부터 우리는 온 국민이 집을 갖겠다고 달려들었죠. 거의 7년 동안 집을 사지 못한 국민들은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그러더니 지난해 6월부터 또 갑자기 집을 안 삽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집값이 차갑게 식었습니다. 미분양이 늘었습니다. PF대출이 곳곳에서 연체됩니다. 2011년이 되자 전체 금융권의 PF연체율이 10%를 넘었습니다. 금융당국이 서둘러 저축은행의 PF부실 축소에 나섰고, 은행들이 돈을 회수하자 LIG건설과 삼부토건, 동일하이빌, 진흥, 월드건설, 임광토건 등 중견건설사들이 차례로 무너졌습니다. 100대 건설사 중에 24개 건설사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저축은행사태가 터집니다. 20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고 삼화저축은행 부산저축은행 등은 간판을 내렸습니다. 저축은행들은 피해자일까? 그때 저축은행들은 PF대출에 15%가 넘는 이자를 받았습니다. 위험하니까 그렇게 높은 이자를 받은 거잖아요. 다 알고 있었잖아요.

(이 폭탄의 도화선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갑니다. 정부가 `8·8클럽(BIS비율이 8% 이상이면서 부실대출 비율이 8% 이하인 우량저축은행)`에 대해 자기 자본의 20% 까지 PF대출을 허용해줬어요. 저축은행은 경쟁적으로 PF 대출을 해주면서 몸집을 키웠습니다. 그때 규제를 풀자고 했던, 또는 규제를 풀면 위험하다고 반대했던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녹취록이 그대로 남아있을 겁니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정부는 전체 대출 중 PF대출이 2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했고, 시행사도 최소 땅값의 20% 이상을 들고와야 초기 대출(브릿지론)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증권사들이 PF에 매달렸습니다. 지난 2021년에서야 정부는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과 채무보증을 합한 금액이 자기자본의 100%를 넘지 않도록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PF잔액이 100조 원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시장은 얼마나 똑같이 되풀이되는가? 그때 LIG건설은 용인이나 김포에서 무리하게 PF사업을 벌이다 법정관리로 넘어갔습니다. LIG건설은 대구의 주)건영을 인수한 회사인데요. 그 건영 역시 사실은 무리한 PF로 쓰러진 회사입니다.

해가 바뀌어도 아파트를 사고 싶어 안달이 난 소비자들이 모델하우스에 길게 줄을 서고, 기업들은 한번 성공하면 대박이 나는 PF사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듭니다. 2012년에 웅진이 갖고있던 극동건설도 역시 PF부실로 넘어가는데. 그룹 전체로 부실이 번지면서 웅진그룹이 무너집니다. PF사업은 워낙 규모가 커서, 정수기하고 비데, 아침햇살이 아무리 잘 팔려도 감당을 못합니다.

예를들어 시장점유율이 90%가 넘었던 진로소주가 있는데, 진로는 도대체 왜 망했을까(경기가 나빠지면 오히려 더 팔린다는 그 신비로운 이슬이 있는데). 역시 진로건설의 부실이 화근이였습니다
. 도대체 소주 잘 팔리는데 왜 건설업에 뛰어들었을까? 천 원짜리 소주를 팔던 회사는 다른 건설사들이 시행 한 건에 수천 억 원을 버는 게 부러웠을 겁니다. 그렇게 진로그룹은 2004년 하이트로 넘어갔습니다.


저축은행 사태 10여년이 흐르고 또 PF폭탄이 불안불안합니다. 정부가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데, 별반 10여 년 전과 ctrl+C, ctrl+V입니다. 은행권에 도움을 요청해서(사실은 압박해서) 20조 원 정도 탄환을 마련하고, 또 공적보증기관이 위험에 빠진 PF사업장들을 보증해줍니다. 아직 그때처럼 본격적으로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건설사 부실채권을 매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부동산 경기를 살려서 분양이 잘되게 해주면 됩니다. 예를들어 논란이 된 50년짜리 장기대출 상품이나 특례보금자리론 40조 원 뿌린 것도 그런 맥락이죠. 그렇게 시장을 살리고 PF대출의 부실을 해소하는 겁니다. 그럴러면 분양가가 더 올라야 합니다. 집값도 계속 올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집값이 또 내리면, 정부가 저금리로 대출 유도해서 집을 분양받은 소비자의 소중한 돈이 건설사나 금융권으로 옮겨간 겁니다. 결국 정부가 PF부실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입입니다. 기재부나 국토부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 하나만 더.

2011년 저축은행을 살리기위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작은 웅덩이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는 붕어에게 필요한 것은 강물이 아니고 물 한바가지”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PF시장은 덩치가 커서 무너지면 은행으로 번지고 그럼 국민이 피해를 봅니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하는 겁니다. 그런데 은행은 정말 어려운 서민들이 물 한바가지만 달라고 하면 한방울이라도 퍼주는가. 사실 대장동처럼 PF사업이 성공해서 시행사와 건설사 금융권이 막대한 돈을 챙긴다면 그 돈은 모두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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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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