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지만 또 없는 [아트총각의 신세계]
선ㆍ원을 작품 언어로 활용
거기에서 뻗어나오는 변화
엄청난 감정적 물결 일으켜
예측 못한 경이로움 선사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시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놀런 감독이 평단과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전달한 사실상 첫번째 영화인 '메멘토' 역시 시간과 기억을 풀어낸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도 시간과 중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 이제 사족을 접고 본론을 이야기해보자. 놀런 감독의 영화를 볼 때 필자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건 블랙홀이다. 블랙홀이란 존재는 오펜하이머가 원폭을 개발하던 당시에도 이론물리학에서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 카메라 기술로는 블랙홀을 잡아낼 수 없었을 뿐이다. 사진의 원리는 빛이 물체에 충돌해 반사하는 것을 잡아내는 것이다. 이미지를 형성하는 빛을 가둘 만큼 강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은 그래서 사진으로 형상화할 수 없었다.
역설적이지만 최근 블랙홀을 잡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컴퓨터와 전파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블랙홀의 디지털 이미지를 잡아내는 데 성공한 거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블랙홀 주변부와 빛의 흔적을 통해 얻은 데이터로 블랙홀의 형태를 명확하게 만들어냈다. 아울러 블랙홀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추출해냈다."
과학적 접근법이 보이지 않던 존재까지 보이게 만들어낸 셈인데, 이런 흐름은 미술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에선 14일까지 흥미로운 전시회가 열린다. 구정아 작가의 개인전 '공중부양'이다.
구 작가는 2024년 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단독작가로 뽑혔을 만큼 능력 있는 아티스트다. 회화부터 조형작품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여온 그는 선ㆍ원 같은 단순한 형태를 작품 언어로 활용한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거기에서 뻗어나오는 끝없는 변화는 엄청난 감정적 물결을 일으킨다. 그 중심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힘'이 있다. 구 작가는 회화란 전통적인 기법에서부터 과학의 영역인 AR(증강현실ㆍAugmented Reality)도 적극 활용한다.
이번에 '공중부양'에선 좀 더 근원적인 존재를 향한 자신의 고찰을 시각화했다. 많은 작품 중 'Density(2023)'는 중력을 거스르는 입체 작업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드로잉에서 출발해 AR 작업으로 발전한 'Density'는 이번 전시에서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자석의 속성과 결합해 부유하는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이는 별관에 전시한 'NOMOS Alpha(2016)'의 드로잉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 연작의 어스름한 형상들은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지만 그 이면엔 흐릿한 사실과 허구, 심리적인 충동과 명랑함 등의 복잡미묘한 세계가 담겨 있다. 예측하지 못한 경험과 발견의 경이로움을 선사하려는 구 작가의 창의적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구정아는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평범함의 시적인 측면을 일깨워 왔다. 그는 비가시적이지만 가시적인 것, 가상이면서 현실인 것, 없지만 있는 것 등 서로 다른 두 개념 사이를 오가며 인지의 이면裏面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라면 전통적 기법이든 차세대 시각화 기법이든 별 상관 없이 적용한다. 과학자들이 이론에서나 존재했던 블랙홀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각화에 성공한 것처럼 구 작가는 AR이란 기법을 동원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거다.
어디에나 있지만 없는 미스터리(MYSTER IOUSSS), 호기심(CURIOSSSA), 참 나(CHAM NAWANA; true me & I)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끄는 '공중부양'전은 볼거리와 함께 생각할 거리도 넘치는 전시회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