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찔한 강하늘? 내 모습"…코미디에 죽고사는 '30일' 감독(종합) [N인터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저희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입니다. 큰 대(大)에 가운데 중(中)인데 제가 고성 남씨라 남녘 남(南)자를 써요. 그래서 디제이(DJ) 사우스(south) 뭐 그런 느낌인데요…."
왠지 모르게 이름부터 코미디적이다. 영화 '30일'의 남대중 감독은 어쩐지 낯이 익으면서도 흔치 않은 이름, '대중'이 자신의 본명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3일 개봉한 '30일'은 8일까지 6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누적 61만명 이상을 동원했다. 한국 영화의 흥행이 쉽지 않은 요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영화로써 추석 대작들을 제치고 정상을 차지한 것은 의미있는 성적이다.
남 감독은 최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30일' 개봉과 관련해 "떨린다기 보다는 감개무량 반, 영화에 폐를 끼치거나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 반"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감독 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상업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 투자자나 제작사를 비롯해 이 영화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지 알죠. 그런데 제가 좀 '드립'을 치고 이런 걸 좋아하다 보니까 혹시라도 감독이 '나댄다'는 소리를 들어 (영화에)폐를 끼칠까봐 그것에 대한 긴장감이 있어요."
혹시나 '나댄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것을 보니 평소 남 감독의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 배우 강하늘, 정소민은 인터뷰를 통해 남 감독의 '개그 욕심'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 남 감독의 성향 덕분에 현장이 항상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고. 정소민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남 감독님이 웃기는 것에 어느 정도 진심이고 고수이시느냐면 본인이 드립을 쳤는데 상대가 '뭐야?' 하는 반응을 보여도 그것까지 즐기는 분이다, 그것마저도 너무 좋다고 하더라, 웃기는 것에 진심이라 뭘 던지는 것 자체 만으로 재미를 느끼시는 것이다, 정말 고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는 코미디를 하는 사람인데 저를 희화화 하고 놀리고 하는 게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어릴 때도 보면 꼭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자기는 남에게 장난을 치면서 자기한테 장난을 치면 정색하는 사람이요. 전 그런 사람이 싫었어요. 저부터 스스로 망가지는 걸 기분 좋게 받아들여야 코미디 감독으로서 디렉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 감독이야', 이렇게 폼을 잡으면서 배우들에게 어떻게 웃긴 연기를 하라고 하겠어요?"
어쩌면 '30일'에서 강하늘이 역대급 코미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코미디를 위해 자신부터 살신성인한 감독 덕분인지 모른다. 하지만 남 감독은 그 모든 공을 강하늘에게 돌렸다. "센스가 좋아서 하나를 얘기하면 열 개 스무 개 이상을 해내는 배우"란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할 정도, 미안할 정도로 강하늘씨의 연기에 만족해요.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얘기까지 했죠. 애초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기존에 강하늘이 갖고 있던 미담 제조기 훈남 이미지를 차용해 코미디에 사용하려고 했었어요. 정열이 캐릭터는 자격지심 덩어리에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봐도 너무 찌질하고 자칫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래도 강하늘이 연기해 정열이가 가진 순수함이 잘 보였던 것 같아요. 나라가 뭔가 정열이의 이런 드러나지 않은 순수한 면에 끌리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이 생겼고요. 다른 배우가 했다면 절대 소화하지 못했을 거예요."
강하늘이 연기한 정열의 캐릭터에는 남대중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갔다. 시나리오 출신인 남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실제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이나 지인이 겪은 이야기들을 허락하에 넣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도 그런 장면들이 있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모범생 정열(강하늘 분)이 공부를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감독의 대학 시절, 다음날 시험을 치러야 했던 어느 선배가 나이트 클럽에 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밤새 그곳에서 공부를 했던 에피소드를 녹였다.
"선배가 책가방을 메고 클럽에 왔어요 '나 여기서 놀다가 밤새고 갈거야' 하던 선배의 모습이 떠올라서 넣었었죠.(웃음) 작가들이 글을 쓰다 보면 자기 성향이 묻어나게 마련이에요. 정열의 캐릭터는 거울 속의 제 자신, 저의 찌찔함이 들어갔어요. 어릴 때 연애사라든가 이런 것들, 그런 성향들, 자격지심이라든가 저의 모습을 많이 투영했던 것 같아요."
'30일'은 이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동반 기억상실증에 걸린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흔한 기억 상실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클리셰를 비껴나가는 연출로 신선한 재미를 안긴다. 첫눈에 반하지 않는 주인공 남녀의 모습이라든가, 남녀의 성고정관념을 비껴나가는 캐릭터나 상황 설정, 예컨대 꼼꼼하고 세심한 남자 정열과 주도적이고 공격적인 나라의 모습이 그렇다.
"시나리오에서부터 클리셰가 있는데, 우리 영화는 그걸 정면 돌파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크게 비틀었다기 보다는 클리셰를 그대로 가되 현실감을 주자는 게 제 의도였어요. 현실은 영화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아귀가 들어맞게 이어지지 안잖아요. 그런 것을 상황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위대한 소원'(2016) '기방도령'(2019)에 이어 남대중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남대중 감독은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과 함께 코미디에 집요하게 천착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써 놓은 시나리오가 15편인데, 그 15편이 모두 코미디 장르라는 남대중 감독은 그만큼 코미디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깊다. 전작들을 통해 받았던 비판을 수정하기 위해 여러 면에서 공부하고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조금 더 대중(大衆)적이고 대중(大中)적인 작품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싫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코미디는 취향이니까요. 조금 더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코미디를 하려고 많은 공부를 해요. 코미디는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거든요. 예전에 재밌는 게 지금은 재미없을 수 있거든요. 그런 걸 많이 공부해요. 서핑도 하고, 커뮤니티도 보고, 대학생 여자분들에게 시나리오를 돌려봐서 불편한 부분이 있는지도 확인해서, 가능하면 누군가 불편하지 않을 코미디를 하려고 해요.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고, 친구와 봐도 불편하지 않고, 갓 만난 연인이 봐도 불편하지 않을 코미디요. 이런 것에 대해 자기검열을 많이 해요."
첫 영화였던 '위대한 소원'이 이 같은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듯 보였다. '위대한 소원'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흥행한 작품이었으나, 성을 소재로 했기에 여러 엇갈린 반응들이 있었다. 남 감독은 가장 인상깊었던 댓글 중에 하나가 '이거 진짜 재밌는데 누구한테 추천하기는 좀 그럼'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느낀 감정이 조금 더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 '30일'을 만들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작품을 통해 그런 것을 배워왔다는 게 어떻게 보면 부끄럽기도 해요. 제게 개인적인 욕망, 욕심이 있다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 다수를 웃기고 싶어요. 그게 제 솔직한 심정이에요. 2차 시장에서나 누군가 나중에 볼 때도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웃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코미디에 진심이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앞으로의 차기작도 계속 코미디일 거예요."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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