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집권 아프간 도와야…한국인도 언제든 난민 될 수 있어"
"여아 학교 못 가고 자녀 매매도…여러분 아이와 다르지 않다"
(부산=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눈앞에서 재앙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너무나 기이한 일이 빠르게 벌어졌습니다.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최근 개막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아프간 리스트'의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대탈출이 일어난 2021년 8월을 이렇게 떠올렸다.
당시 미국은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함에 따라 철군을 결정했다. 아프가니스탄전쟁 동안 미국에 협조했거나 반(反) 탈레반 전선에 섰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에 나섰다.
탈레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영화인과 언론인들 역시 속속 공항으로 몰려갔다. 하나 감독의 아버지이자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프랑스와 미국, 독일 등에 요청해 이들이 아프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하나 감독이 이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내놓은 작품이 '아프간 리스트'다.
지난 6일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모흐센 감독은 "탈레반이 입성하면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라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선 300개가 넘는 전 세계 영화제 측에 예술가들을 초청해줄 수 있는지 문의했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아주 비극적이었습니다. 아프간에는 대사관과 영화제가 없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인을 데려오기 어렵다는 거였죠. 다행히 독일과 프랑스 영화제에서 각각 65명과 1명을 초청해준 덕에 이들은 아프간을 출국할 수 있었어요."
당시 영국 런던에 머물고 있던 모흐센 감독의 집은 '아프간 탈출 본부'로 변했다. 이곳에서 아프가니스탄 예술가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한편 각국 정부와도 긴밀히 협력했다. 그 결과 총 385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모흐센 감독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를 구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다"면서 "누가 죽고 살지를 우리가 결정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2009년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뒤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135명을 구했다. 구출에 실패한 이들은 구금되거나 사형이 집행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부녀는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예술가들의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고 했다.
모흐센 감독은 "지난주에도 산을 넘어 인근 국가인 이란과 파키스탄으로 갔다가 체포당한 난민들이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려보내진 다음엔 (탈레반에 의해)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다.
"지금 아프간에선 여자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성인 여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나 남자 형제 없이는 밖에도 나가지 못하죠. 일자리와 식량이 없어 아이들을 부잣집에 팔기도 합니다. 축구 경기장에서 시아파 같은 소수 민족에 대한 공개 처형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아프간은 최근 대지진까지 발생하면서 벼랑 끝으로 몰렸다.
하지만 두 감독은 미군 철수 후 시간이 흐르면서 아프간이 세계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하나 감독은 탈출이 벌어진 2년 뒤에 '아프간 리스트'를 내놓은 이유에 대해 "영화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상기해주고 싶었다. 이 영화로 한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도 구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 사는 아이라고 해서 여러분의 아이와 다르지 않다"며 "단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로 평생 피해자로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모흐센 감독도 "신체 일부만 다쳐도 온몸이 아픈 것처럼, 인류 역시 한 나라의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면 다른 나라의 국민도 자기 일처럼 고통스러운 법"이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들을 받아주는 곳은 적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난민을 수용해야만 합니다. 10년 뒤에 혹은 그 뒤에 우리도, 심지어 한국인도 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국경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는 모두 지구 공동체에 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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