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과 공이 겹쳐서" 생각만 해도 아찔…문보경이 밝힌 김혜성 송구의 '비하인드' 스토리
[마이데일리 = 인천공항 박승환 기자] "전광판과 공이 겹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서 대만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문보경은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문보경은 결승전에서 공·수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며 아시안게임 4연패의 선봉장에 섰다.
항저우 출국을 앞둔 문보경의 타격감은 '절정'이었다. 10경기에서 2홈런 9타점 타율 0.405(37타수 15안타)를 기록했고, 상무 피닉스와 평가전에서도 안타를 터뜨리면서 좋은 감을 뽐냈다. 하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회 일정이 시작된 후의 문보경은 출국전과 사뭇 달랐다.
문보경은 홍콩, 대만, 태국과 B조 조별리그를 치르는 동안 4개의 타점을 쓸어담았지만, 안타는 4개에 불과했다. 두 번의 콜드게임 승리를 따냈던 것을 고려하면 감은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이 흐름은 슈퍼라운드 일본전으로도 이어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대회 막판 떨어졌던 타격감이 다시 회복됐다.
문보경은 중국과 슈퍼라운드 2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던 중 마지막 타석에서 승기에 쐐기를 박는 2루타를 터뜨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공·수에서 제대로 빛났다. 문보경은 조별리그에서 꽁꽁 묶였던 대만의 린위민을 상대로 첫 타석에서 2루타를 터뜨렸다. 이는 곧 결승득점으로 연결됐다.
문보경의 2루타로 만들어진 1사 3루의 득점권 찬스에서 한국은 김주원이 자신의 아웃카운트와 한 점을 맞바꾸는 희생플라이를 쳐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그리고 김형준과 김성윤의 연속 안타로 만들어진 2, 3루 찬스에서는 린위민이 폭투를 범했고, 이틈에 3루 주자 김형준이 홈을 밟으면서 2-0까지 간격을 벌렸다.
공격에서만 빛났던 것은 아니다. 2-0으로 앞선 5회초 대만의 린즈하오가 친 강습타구가 1루수 쪽으로 향했는데, 이때 문보경은 주 포지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샐 틈이 없는 수비를 펼치며 선발 문동주의 어깨에 힘을 실었다. 그 결과 한국은 문보경의 결승득점을 바탕으로 2-0으로 대만에게 승리했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문보경은 우승을 거둔 직후 '울었느냐'는 질문에 "울 뻔했다. 울지는 않았다. 울컥울컥했다"며 감격적인 순간을 떠올리며, 첫 대표팀인데 야구를 시작하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순간이었다. 태극마크가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정규시즌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모두가 고생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서 좋았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주 포지션이 3루수지만, 대표팀에서는 줄곧 1루수로만 출전했던 문보경 부담은 없었을까. 그는 "부담은 없었다. 타구를 잡을 때는 각도만 다르지 3루와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어깨가 워낙 좋아서, 공이 강하게 날아와 처음에는 살짝 어려웠는데, 훈련을 하면서 적응이 되더라"고 말했다.
1루 수비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일본전에서 9회 김주원의 송구를 놓친 것. 반대로 가장 기쁜 순간은 대만과 결승전에서 김혜성의 송구를 받으며 경기를 매듭지을 때였다. 당시 문보경은 김주원과 껴안으며 '미안해'라는 말을 건네기도. 문보경은 일본전 송구를 잡아내지 못했던 장면에 대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공이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나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돼 정말 미안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문보경은 "(박)해민이 형이 일본전에서 놓친 이후 '정신 차려라'라고 연락이 오셨었다"고 멋쩍게 웃으며 우승의 순간에 대해 "전광판과 공이 겹쳐서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았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비디오 판독이 없기 때문에 먼저 뛰쳐나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베이스를 끝까지 밟고 있었다. 이후 아웃콜을 하는 것을 보고 뛰어나갔는데, '진짜 이겼구나. 우승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대회가 시작된 후 타격감이 좋지 않았던 탓에 마음고생은 하지 않았을까. 문보경은 "(오)지환이 형이 '그럴 때일수록 더 과감하게 쳐야 한다'고 해주셨었다. 그리고 (김)혜성이 형을 비롯한 대표팀 형들이 '다른 타구도 운이 나빠서 잡혔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생각을 해보니 마냥 빗맞은 타구만 나왔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더 자신감 있게 기죽지 않게 임했다"고 설명했다.
문보경이 자리를 비운 사이 LG는 무려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LG 선수단은 대표팀에 합류해 있는 문보경, 정우영, 고우석과 부상으로 이탈한 함덕주 유니폼까지 더그아웃에 걸어두며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문보경은 대표팀에 집중한 나머지 팀 성적을 신경 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솔직히 대표팀에 집중하느라 팀을 신경 쓰지 못했다. 내일(10일) 복귀하는데 가서 느끼면 더 좋을 것 같다"며 "대표팀과 우리팀이 모두 우승을 했기 때문이 더 좋다"고 활짝 웃었다. 이날 문보경 인터뷰가 끝나갈 즘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LG 팬들은 문보경의 응원가를 힘차게 부르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축하했고, 문보경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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