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불평등의 경제학](17)
지난 8월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서 한 남성이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사상자를 낸 뒤 백화점 내의 행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칼부림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량돌진으로 5명이 다치고, 그중 1명이 사망했으며 9명이 칼부림으로 피해를 입었다. 7월 21일에는 서울 신림역에서 한 남성이 칼부림을 일으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밖에도 여러 칼부림 미수 사건이 발생했고, 또한 수백 건의 칼부림 예고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했다. 8월 17일 신림동 한 공원에서는 점심시간 직전에 한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고 살인해 충격을 주었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세계적으로 안전하던 한국이 흉흉해졌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을 보며 많은 사람이 한국사회가 어딘가 잘못됐고, 앞날도 걱정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병리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그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커다란 질문과 고민을 던져주었다. 물론 범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포함해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사회적 배경 중 하나는 불평등이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불평등이 부르는 사회적 병리현상들
실제로 불평등은 사람들의 마음 건강을 해치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영국의 역학자인 윌킨슨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와 피켓 요크대학교 교수는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에서 불평등한 사회에서 온갖 사회적 병리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한다. 예를 들어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가 기대수명이 낮고 10대 출산율과 영아사망률과 정신질환, 약물사용과 비만인구, 살인율이 높고 사람들의 신뢰와 아동의 교육성취도와 행복도는 낮다. 다른 요인들이나 시간적 변화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선진국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소득불평등이 여러 건강과 사회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의 최근 저작인 <불평등 트라우마(The Inner Level)>에서 불평등이 사람들과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만드는지에 관해 상세한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윌킨슨과 피켓은 불평등이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이면에 사람들의 지위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여러 분야의 연구결과를 검토하며 불평등이 심각하면 소득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강화되고 이것이 사회불안과 스트레스로 나타나 사회적 접촉과 공동체 그리고 공감이 약화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회평가 위협과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가 지위 불안과 정신적인 압박 또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를 견디기 힘들어 사람들은 스스로 고립되거나 반대로 자기도취나 과시, 우월감을 표출한다. 또한 가짜 해결책으로 도박이나 쇼핑 그리고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이 심화되기도 한다.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는 이렇게 개인도 사회도 정신적으로 병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불평등은 상대적 빈곤과 지위 불안을 심화시키는 반면 사회적 신뢰와 상호성의 규준을 약화시키고 계급차별, 조롱과 수치 그리고 복수로 이어져 범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로 여러 연구는 불평등이 높은 곳에서 살인이나 강간, 총격, 아동학대 등의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한다.
총기난사·학교폭력 등 범죄와 연관성
미국의 3144개 지역별 데이터를 사용한 한 실증연구는 총기난사 사건이 빈곤율과 실업률 그리고 총기규제 등 여러 요인을 통제한 후에도 소득불평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고한다. 일본에서는 2008년 도쿄의 아키하바라에서 한 비정규직 남성이 트럭으로 횡단보도에 돌진한 이후 행인들을 마구 찔러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00년대 고이즈미 정부의 개혁과 함께 구조조정으로 실업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했다. 당시 묻지마 범죄가 증가한 것도 불평등의 확대와 취약한 노동자들의 증가와 관련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편 불평등은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이 높은 사회는 아동의 행복도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으며 가난한 학생들이 자라 성공하기가 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불평등이 학교폭력도 증가시킨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는 소득불평등과 왕따 등의 학교폭력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한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지위 차별과 스트레스가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엘가 맥길대학 교수 등의 최근 연구는 40개국 약 2만9000개 학교 87만명의 서베이 자료를 분석해 0~4세 유아기에 겪은 그 사회의 불평등이 아이들이 커서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행사하는 확률에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한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생생하게 보여준 학교폭력 문제도 근본적으로 우리 안의 불평등과 관련이 높다는 이야기다. 특히 어린 시절 폭력이나 아동학대와 같은 불평등의 악영향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학교폭력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묻지마 칼부림과 같은 최근의 범죄도 불평등 문제와 관련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범죄는 여러 요인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불평등을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포함한 여러 사회문제를 개선하고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윌킨슨과 피켓 교수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개선되면 사회관계가 개선돼 공동체와 신뢰가 강화되고 지위 불안과 스트레스 그리고 폭력과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 역설한다.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은 어떤가. 윤석열 정부는 철 지난 낙수효과 경제학에 기초해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를 실시했고 경기둔화에도 재정긴축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책기조 하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개선돼온 소득불평등과 빈곤율이 다시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국제적으로 볼 때 한국의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와 빈곤율은 OECD 선진국 중에서 높은 수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소득불평등이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세금과 사회복지를 통한 정부의 소득재분배 역할이 다른 국가에 비해 크게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경찰은 칼부림 사건들에 대응해 장갑차와 기관단총을 소지한 경찰특공대원을 배치했다. 그러나 사회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장갑차와 특공대가 아니라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취약한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해 불평등을 개선하는 노력일 것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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