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했던 폭염·폭우, 농업 피해 대책 뭔가

2023. 10. 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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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지 유실·매몰 반복…농작물 피해 보장 확대해야
지난 8월 7일 충남 홍성군 한 젖소 농가에서 축사 열기를 식히기 위해 대형선풍기 등을 가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충남 예산군에서 돼지농장을 운영하는 A씨(63)는 지난 7월 기르던 돼지 30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했다. 돈사 내부에 환기 시설과 쿨링 패드(냉각팬), 에어컨 시설을 종일 가동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낮 30도를 웃도는 내부온도는 밤에도 열대야 때문에 꺾이질 않았다. 전기료도 평소의 2배 이상 나왔다. 평상시 월 300만원 정도 나왔는데 600만~700만원까지 뛰었다. 돼지는 땀샘이 없어 다른 가축에 비해 더위에 약하다. 혹서기엔 고온 스트레스 때문에 식욕과 면역력, 생산성이 떨어져 질병에 걸리기 쉽고 수태율도 낮아진다. 비타민제, 해열제, 미량 광물질(미네랄) 등을 사료에 섞어 주고 하루에 수차례 얼음조각을 줘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A씨는 “폭염 때문에 지난해엔 15마리가 폐사했는데, 올여름엔 2배로 늘었다. 내부시설 현대화가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충남 청양군에서 멜론 하우스 농사를 하는 B씨(58)는 3년째 침수 피해를 겪었다. 집중호우가 몰아치던 지난 7월, 하우스 20개 동 중 4개 동이 물에 잠겼다. 1개 동에 멜론 상자가 1400개 정도 출하한다고 가정했을 때, 전체 피해액은 1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올해는 군에서 일부 피해 보상을 받긴 했지만, 작년과 재작년엔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B씨는 “여름철 집중호우가 시작되면 불안해 잠을 잘 수가 없다. 매번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물이 범람하고 피해를 입는데도 딱히 손쓸 방도가 없다. 지난해 침수 피해 이후 배수로를 넓혀달라고 지자체에 요청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고 했다.



농작물과 가축 등 생산성 급감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 시대다. 여름철 평균기온이 매년 오르고 있고, 집중호우 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기상청이 지난 9월 7일 발표한 올여름(6~8월) 기후 분석 결과를 보면, 전국 평균기온은 24.7도에 달했다. 평년 23.7도에 비해 1도 오른 것이자, 역대 4번째로 높다. 평균 최고기온은 29.3도. 이 역시 평년 28.5도보다 0.8도 높다.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 일수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 일수도 많았다. 올여름 전국 평균 폭염일은 13.9일로 평년(10.7일)보다 많았고, 열대야 전국 평균도 8.1일로 평년(6.4일)보단 자주 나타났다.

강수량도 마찬가지다. 올여름 전국 평균강수량은 1018.5㎜로 평년(727.3㎜)보다 291.2㎜ 더 많았다. 역대 5위 수준이다. 연평균강수량(1306.3㎜)을 감안하면 78%가 여름 한철에 쏟아졌다. 올여름 전국 평균 장마철 강수량은 660.2㎜로 역대 장마철 강수량 중 3번째로 많았다.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 등 기후악화로 인한 농업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29일 농림축산식품부의 ‘폭염 및 풍수해로 인한 농업 피해 현황’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12명이다. 가축은 61만마리(잠정), 농작물은 7만9473㏊에 달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농작물재해보험 지급자료를 토대로 분석해 지난 8월 16일 발간한 ‘기후위기와 농업·농촌의 대응’ 보고서를 보면, 2018년 폭염으로 인한 보험 지급 건수가 1만3169건, 지급액은 65억4100만원이었다. 2021년엔 지급 건수가 24만9000건, 지급액은 735억원으로 급증했다. 3년 사이에 지급 건수가 18.9배, 지급보험금은 11.2배나 증가했다. 농작물은 노지 작물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가축에 비해 피해가 컸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풍수해 피해도 컸다. 지난 6월과 7월 장마철 호우로 7513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농경지 1409㏊가 유실·매몰됐고, 농작물 6만8567㏊ 등의 사유시설 피해를 입었다. 지난 8월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입은 피해액은 558억원이었다.

지난 9월 5일 한 상인이 서울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과일을 팔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충남 서산에서 양계장을 하는 한 농장주는 “여름철엔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다. 올해 장마철 집중호우가 내릴 때 낙뢰로 양계장 전기가 다 나간 적이 있는데, 다행히 비상발전기가 있어서 곧바로 전원을 복구할 수 있었다. 주변에 발전기가 없는 양계장이 많은데, 이런 곳은 한번 전원이 나가면 환기시설과 에어컨 작동이 안 돼 닭들이 단기간에 집단 폐사할 수 있다. 폭염 때는 닭들의 체감온도를 낮추기 위해 에어컨을 틀고 수시로 물을 뿌려주는데도 닭들이 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 고온 스트레스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져 경제적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농가 경영 위협하고 물가 자극

폭염·폭우는 농업인, 농작물, 가축에 직접적 피해를 주고, 농가 경영을 위협한다. 농작물 피해의 경우 피해 보상을 위한 농작물재해보험이 있지만, 가입률은 지난해 기준 49.9%로 높지 않은 편이다. 일각에서는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실제 피해 보상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가입률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보험료는 전체의 절반을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농협, 농가(순보험료의 10% 수준)가 나눠낸다. 정부는 사과, 배, 벼, 밀, 감자, 딸기, 오이 콩 등 보험 대상 품목을 올해 70개에서 2027년 80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농가 수를 지난해 기준 51만가구에서 향후 5년간 63만가구까지 끌어올리고, 보험 대상 품목도 지속적으로 늘릴 예정이다. 우선 2025년까지 블루베리, 두릅, 생강 등을 재해보험 신규 품목으로 추가 지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남 청양군 청남면의 한 주민이 지난 7월 16일 배수장 인근 지천 제방 붕괴로 전날 밤부터 물에 잠긴 마을 일대를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돼지와 가금류는 폭염에 특히 취약하다. 돼지는 체내에서 발생한 대사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능력이 낮고, 가금류는 깃털로 덮여 있어 체온 조절이 어렵다. 대부분 공장식 밀집 축사에서 사육돼 면역력이 약하고 고온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해 폐사하는 경우가 많다. 8월 2일 보험개발원이 내놓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가축의 폭염 피해’를 분석해보니 기상 관측 사상 폭염 일수가 가장 많았던 2018년(31일)에 돼지, 가금류의 손해액은 각각 910억원과 504억원에 달했다. 반대로 폭염 일수가 7.7일에 불과했던 2020년에는 손해액이 각각 283억원과 85억원으로 급감했다.

피해 보상은 가축재해보험을 통해 가능하다. 정부가 보험료의 50%를, 지방자치단체가 최대 40%를 지원한다. 가입률은 지난해 기준 94.7%, 가입 농가 수는 3만4000여가구에 달한다. 소·말·돼지·닭·오리 등 16종의 가축과 가축시설물은 연중 가축재해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다만 돼지와 가금류는 폭염 특약에 별도로 가입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올여름 집중호우와 태풍, 폭염 등으로 농산물 수급 불균형이 커지면서 물가가 크게 뛰었다. 통계청이 10월 5일 발표한 ‘2023년 9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9월 물가는 1년 전보다 3.7% 상승했다. 지난 4월(3.7%)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 영향으로 농축수산물이 3.7% 올라 전월(2.7%)보다 상승 폭을 확대했다. 특히 농산물이 7.2% 오르며 지난해 10월(7.3%)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과(54.8%), 복숭아(40.4%), 귤(40.2%) 등 신선 과실은 무려 24.4%나 올랐다. 2020년 10월(25.6%)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김태후 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후 영향이나 작황 부진에 따라 가격이 상승하면 농가 경영위험이 늘고 소비자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의 사전적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폭염과 가뭄 등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 방법 등을 연구하기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농작물재해보험 보장 강화 등 제도 정비도 요구된다. 김태후 부연구위원은 “자연재해가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복구비 지원 단가 인상 등 보상 단가를 현실화하고, 농작물 피해 보장 품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농가에서 자발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농업인 경영안전망 확충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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