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도시서 누리는 것, 영양서도 누릴 수 있게”

지유리 2023. 10. 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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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7) 사진 작업·카페 운영하는 허진희·허진수씨 남매 <경북 영양>
사진관 문연 이듬해 코로나19 확산
온라인 산나물축제 준비에 힘 보태
지역농산물 활용 음료·디저트 판매
사무실 공간 대여사업 추진도 주력
창업 기회를 찾아 소멸위험지역인 경북 영양에 귀촌한 허진희(왼쪽)·허진수씨 남매.

경북 영양군은 울릉군에 이어 전국에서 인구가 두번째로 적은 기초 지방자치단체다. 8월 기준 인구는 1만5799명. 오랜 이촌향도로 주민이 급감한 농촌에 파릇파릇한 30대 청년 허진희(33)·허진수씨(31) 남매가 귀촌했다. 그들에게 영양은 소멸위험지역이 아니라 새 꿈을 펼칠 기회의 땅이었다.

먼저 영양행을 택한 건 누나 진희씨다. 서울 생활에 지칠 때마다 큰어머니와 사촌언니 부부가 귀농한 영양에 자주 놀러 갔었다.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길 여러번 거듭한 끝에 아예 이주해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당시 경북도가 추진했던 ‘도시청년 시골파견제’가 촉매가 됐다. 창업 비용이 지원된다고 하니 이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까. 영업력이 남다른 남동생 진수씨까지 설득해 마침내 영양에 자리를 잡았다.

2019년 남매는 사진관 ‘단듸스튜디오’를 열었다. 진희씨는 마케터로 일하면서 제품 사진을 찍었고, 진수씨는 영상 제작 능력이 있으니 해볼 만하다 싶었다. 개관 이듬해 코로나19가 터졌다. 망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기회가 됐다. 군이 매년 해오던 ‘영양 산나물축제’를 온라인으로 개최하기로 하면서 산나물 사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진수씨는 잠잘 시간까지 줄여가며 사진을 찍었던 당시를 똑똑히 기억한다.

“농촌이야말로 사진관이 필요해요. 요즘은 축제 홍보는 물론이고 농산물 판매도 온라인으로 이뤄지잖아요. 저와 누나가 축제에 참가하는 농가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산나물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을 보고 흐뭇해하시던 어르신들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축제 운영도 맡아서 누리집을 제작하고 산나물 온라인 판매까지 했어요.”

영양 산나물축제는 지역농가의 주요 판로 중 하나다. 온라인 축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면 한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었던 것. 온라인으로 전환한 첫 축제를 허씨 남매 덕분에 무사히 치렀고 산나물도 꽤 팔았다. 몸은 고됐지만 당시 경험은 영양 생활에 더없이 좋은 밑거름이 됐다. 진희씨는 “축제 이후 저희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면서 “영양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렇게 틈새영역을 찾아 도전하고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무리 없이 정착했다. 이후 남매는 단듸스튜디오를 접었지만 사진·영상 작업은 계속해오고 있다.

경북 영양산 송고버섯이 들어간 ‘착한송이라테’와 산나물을 넣은 ‘연당스콘’. 스콘은 고추맛 크림치즈를 곁들여 먹는다(

요즘 이들은 단듸랩이라는 사업체를 통해 입암면 연당마을에 문을 연 카페 ‘연당림’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2021년 지역 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마을에 오랫동안 방치됐던 고택을 고쳐 카페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진희씨는 “영양은 심각한 소멸위험지역”이라면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관광객을 모아야 하고, 그러려면 자원이 필요한데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평소 고택을 눈여겨봤는데, 문경에서 활동하는 로컬크리에이터그룹 ‘리플레이스’가 협업을 제안했을 때 “옳다구나” 쾌재를 불렀다. 진수씨가 손수 고친 100년 넘은 고택은 이제 영양에서 가볼 만한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연잎가루가 든 ‘연당라테’와 커피·쿠키 등이 포함된 애프터눈티 세트.

연당림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모두 지역농산물로 만든다. 진희씨는 평소 질 좋은 영양 농특산물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안타까웠고 젊은 관광객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어서 디저트와 접목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대표 메뉴는 송고버섯을 넣은 ‘착한송이라테’다. 버섯을 양갱처럼 만들어 건더기로 담았다. 단맛이 강해 누구나 호불호 없이 마실 수 있다. 산나물·고추·연잎이 든 스콘도 인기가 많다. 진희씨는 “연당림 메뉴를 맛보고 농산물을 사가겠다는 손님을 만날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 싶다”면서 밝게 웃었다. 그는 “메뉴 개발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면서 “영양 농산물 홍보대사가 될 만한 메뉴를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단듸랩은 벌써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다. ‘공간 대여’ 사업이다. 내부를 멋지게 꾸민 사무실을 빌려주는 일이다. 도시에는 흔한데 영양에는 없다. 도시에서 누리는 것을 영양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단다. 진희씨는 “시골이라고 무료하고 불편해야 할 이유는 없다”면서 “도시와 시골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단듸랩의 역할”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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