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간판 찾기 힘드네…외국어·외래어로 뒤덮인 도심
한글 병기해야 하지만 '예외 대상' 있고 규제도 어려워
"여기는 대체 뭐를 파는 곳이야?"
577돌 한글날을 앞두고 <뉴스1> 취재진이 둘러본 광주 서구 상무지구 일대의 상가 간판은 외국어와 외래어 표기 일색이다.
우리말로 된 간판을 사용하는 곳은 병원이나 약국, 학원 등 2~3곳에 불과했다. 식당이나 카페는 대부분 영어나 일어 표기를 썼다.
중심가에 위치한 아시아 음식점들은 더욱 심각했다. 외국어를 발음 그대로 한글로 표기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고 대부분은 아예 외국어 간판을 내걸었다.
일본 음식을 판매하는 한 식당은 중심 간판에 일어 표기를 했고 왼쪽에 작게 일본어 발음 그대로의 한글 표기와 '원조 마제 소바(일본식 볶음우동)'라고 적어놨다.
멀리서 보면 일본 종이 제등 인테리어와 일본어 간판 때문에 무엇을 파는 식당인지 알기 어렵다. 가까이 가서 작은 보조 간판을 봐야지만 볶음우동을 판매하는 식당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에 있는 일본 라면집도 한자와 함께 영문 표기 'JAPANESE RAMEN RESTAURANT'을 사용했다. 한자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경우 가게 상호조차 읽기 어려웠고, 영어를 잘 모르는 경우엔 무엇을 판매하는지 가늠도 어렵다.
바로 옆에 있는 아시아 음식 전문점은 아예 한글 표기나 설명도 없다.
한 꽃집은 '영원한 꽃'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Eternel Fleur' 간판을 걸었으며 이발소의 경우 'Barber shop'이라고만 적어놓기도 했다.
이런 가게들의 경우 '아시아 음식점', '꽃집', '이발소' 등 충분히 우리말로 대체해 표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점의 분위기나 특색 때문에 외국어 간판을 고집하고 있다.
간판뿐 아니라 차림표 표기도 남다르다. 찹쌀떡을 '모찌', 가루녹차인 말차를 '맛차', 달걀말이나 과일을 식빵에 끼워 먹는 일본 음식을 '타마고 산도'나 '후르츠 산도'라고 적어둔다.
손님들은 심지어 외래어 표기를 보고 '해외 감성 맛집'이라고 찬양한다. '멋있어 보인다'거나 '마치 해외여행을 온 느낌'이라며 이곳 간판이나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는 경우도 허다하다.
베트남 음식점 앞에서 만난 조보람씨(28·여)는 "일본 감성 식당과 카페는 이미 너무 많아졌고 요즘은 멕시코, 베트남, 인도 등 다국적 식당과 카페가 더 유행이다"며 "간판이나 메뉴를 그 나라 언어 그대로 표기하고 매장 분위기도 남달라서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반면 상당수 시민들은 이같은 현상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신정미씨(55·여)는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기도 어렵고 찾아보려고 해도 검색도 잘되지 않는다"면서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것 아니냐. 한국에 있는 가게에서 한국 사람을 상대하면서 왜 일본어나 영어를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식당과 카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외국어 간판들에는 위법 소지가 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함께 나란히 적어야 한다. 간판은 대다수의 시민이 보는 만큼 이해하기 쉽게 한글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 법령에 모든 업체가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옥외광고센터가 지난해 발행한 '옥외광고물 법령 해설집'은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를 그대로 표시하는 경우를 '특별한 사유'로 정하고 법령에서 제외한다.
관광진흥과 세계화 촉진을 위해 외국어 표기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대형 가맹점 업체, 즉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관리법 시행령 제5조에 따라 간판 면적이 5㎡ 이하면서 3층 이하에 설치될 경우 신고나 허가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이에 관할 지자체가 세밀한 모니터링을 하기 어렵고 실질적인 관리나 규제도 힘든 실정이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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