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에 맞서다]㉒ 말·소 키우던 제주 목장이 우주산업 터전으로

고성식 2023. 10. 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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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일변도 벗어나 첨단산업 총력전…민간 우주산업기지 '하원테크노캠퍼스'
축산단지를 벤처기업 집적 시설로…유전자원 보호하고 바이오 산업 키워
첨단기업들 "전기차 배터리·자율주행 최적합…인재 잡아야 제주 발전"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하원테크노캠퍼스로 바뀌는 옛 탐라대 부지 [제주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소나 말을 키우던 목장에서 사람을 키우고 기업을 키우는 터전으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제주 서귀포시 하원마을 김기훈 노인회장은 과거 마을목장이던 곳이 첨단산업 터전으로 변모한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내비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6년 하원마을 소유 공동목장을 탐라대학교 조성을 위해 기부하는 데 참여했던 주민 중 한 사람이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 공동목장 31만835㎡에 대학을 세워 마을 발전에 기여하자는 뜻에서 주민들이 마을 공동목장을 기부하자는데 뜻을 모았었다.

하지만 탐라대가 10여년간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2012년 다른 대학과 통폐합되면서 부지가 장기간 방치돼 왔다.

그렇게 주민 뜻과 달리 폐허가 돼 가나 싶던 탐라대 부지는 이제 제주 첨단산업의 터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목장·탐라대 부지에서 우주산업 전진기지로

제주도는 이 땅을 2016년 공유지로 매입한 뒤 올해 1월부터 민간 우주산업 전진기지인 '하원테크노캠퍼스'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화시스템이 이미 지난 7월 제주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수백억 원을 들여 제주에 1만㎡ 규모의 한화우주센터를 건립하는 계획을 내놨다.

올 하반기 하원테크노캠퍼스에 공장 설립을 위한 인허가 절차에 돌입해 내년 상반기에는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제주도와 한화시스템은 우주산업 기반시설인 저궤도 위성 AIT(Assembly·Integration·Test) 시설 구축을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하는 등 내년부터 이전 및 조성을 추진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위성 AIT 시설은 조립과 기능·성능 시험을 하는 곳을 의미한다.

한화시스템은 우주센터를 기반으로 소형 저궤도 위성을 대량 생산하고 이를 국내 활용할 계획이며 또 위성 미보유국에 수출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소형 위성은 스페이스X(미국 우주탐사 기업)의 스타링크 서비스에 활용되는 등 우주산업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와 개발,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제품군이다.

하원테크노캠퍼스 조감도(미확정) [제주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 8월 31일 우주발사체 개발 기업인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에도 하원테크노캠퍼스 입주를 권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2021년 12월 제주시 한경면 용수포구에서 국내 최초로 민간 과학 로켓 시험발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올해 연말에도 우주발사체인 '블루웨일1' 상단을 제주에서 쏘아올릴 예정이다.

제주는 위성 발사에 용이한 적도와 국내에서 가장 가깝고 폭넓은 발사 방위각을 확보할 수 있으며 발사체 조립·시험을 위한 넓은 공간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주변국과 공역 침범을 방지할 수 있어 민간 우주 산업계에 주목받고 있다.

농촌마을 제주 서귀포시 하원마을 전경 [촬영 고성식]

감귤을 주로 재배하는 농촌 마을인 서귀포시 하원마을은 민간 우주 산업 기업들이 하원테크노캠퍼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소식에 고무돼있다.

김 노인회장은 "마을에 젊은 청년들이 떠나 점차 인구가 고령화되고 줄고 있는데, 이번에 큰 기업들이 온다고 해서 마을 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오창헌 전 하원마을회장은 "탐라대 부지가 장기간 방치되다 보니 주민 걱정이 무척 컸다"며 "지역에 이익이 되는 활용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창주 하원마을회장도 "이른 시일 내에 하원테크노캠퍼스 조성이 진전을 봐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 과정에서 마을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제주흑돼지 유전자원연구센터 조감도 [크로넥스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바이오 벤처 기업 메카 꿈꾸는 제주 축산진흥원 축산단지

한라산 중산간에서 소와 말을 키우는 제주도 축산진흥원의 축산단지도 바이오 벤처 기업의 메카를 꿈꾸고 있다.

축산진흥원 축산단지에는 제주흑돼지 유전자원연구센터가 들어선다. 현재 공사가 한창인 유전자원연구센터는 7천490㎡ 대지에 1천495㎡ 규모로 조성된다.

유전자원연구센터에는 천연기념물인 제주 흑돼지를 의료 산업에 활용하는 벤처기업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현재 인간의 신체, 장기구조를 지닌 돼지를 활용해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4년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종주권에 대한 인식도 강화돼 소형돼지의 국산화가 필요하며, 유전자원을 활용한 수익 극대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제주흑돼지 유전자원연구센터가 완공되면 바이오기업인 크로넥스 등 3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박천규 크로넥스 부장(이학박사)은 "제주는 실험용과 연구용 사업이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위한 형질 전환 동물을 개발하고 바이오산업에 활용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지역"이라고 말했다.

제주흑돼지 유전자원연구센터는 지난 7월 20일에는 제주흑돼지 유전자원 연구센터 벤처기업집적시설로 지정되기도 했다.

벤처기업집적시설은 벤처기업 영업 활동을 위해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른 건축물로, 입주 기업들은 기술이 우수하다고 입증된 것으로 각종 자금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장원 제주축산진흥원 팀장은 "제주 재래 유전자원의 보존에 대한 연구와 제주흑돼지 생체재료와 이종 장기용 실험동물 생산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공사 중인 제주흑돼지 유전자원연구센터 [촬영 고성식]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청년·창업기업 지원

여기에 더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창업 지원과 신생 기업 육성을 통해 우수한 기업인이 제주로 유입하도록 하고 마땅히 직업이 없어 제주를 떠나던 젊은 층의 도내 경제활동을 돕고 있다.

JDC 제주혁신성장센터 'Route 330'은 4차산업 중심의 창업기업에 사무와 연구 시설은 물론 투자 유지를 지원하고 있다.

2018년 12월 문을 열어 지난해 12월까지 4년간 분야별 유망 기업과 기관 등 총 143곳을 유치했으며 누적 일자리 창출은 818명이다.

또 지금까지 1천225억5천만원의 기업 투자 유치를 이뤄냈다.

Route 330에는 제주 기반 자율주행 모빌리티 기업인 라이드플럭스와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을 하는 네이처모빌리티, 현대자동차 사내 벤처로 출발한 배터리 재제조 기업 포엔 등의 유망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또 초음파를 활용한 실시간 노면 상태 측정 센서 개발 기업인 모바휠, 가상발전소 기술 기반 에너지 자산관리 플랫폼 기업인 브이피피랩 등이 운영 중이다.

Route 330에 입주한 전기차 충전 정보 제공 플랫폼 기업인 고은의 김종현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다가 제주에 이주해 창업까지 이르게 됐다"며 "제주가 전기차 특구 지역이기도 해 기업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현철 라이드플럭스 PR팀장은 "제주도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다양한 자율주행 실증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창업 초기 다른 지역에서 의기투합해 제주로 온 직원도 있고 현지 채용을 통해 입사한 분까지 팀원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고 말했다.

JDC 제주혁신성장센터 'Route 330' [촬영 고성식]

지난 8월 말 기준 제주지역 고용률은 70.1%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도매· 소매업, 숙박업, 음식점업 등 중소 자영업과 관광업계에 집중된 게 사실이다.

제주 지역내총생산(GRDP) 비율은 관광·서비스업 80%, 농림어업 11%, 건설업 7% 등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제조업 등 첨단산업의 GRDP 비율은 미미한 상황이다.

국내 및 세계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제주 관광시장도 요동을 칠 수밖에 없어 다양한 산업 확장을 통한 인구 유입이 절실한 이유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에서 무인 전동 킥보드 기업을 창업한 현승보 이브이패스 대표는 "인재가 제주를 떠나면서 결국 지방인구 소멸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지역을 모태로 성장하는 기업이 더 많아질 때, 좋은 인재들이 제주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동시에 제주 역시 성장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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