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약초 이야기]⑫ 가을빛 노랗게 물드는 '산수유'
[※ 편집자 주 = 약초의 이용은 인간이 자연에서 식량을 얻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할 정도로 오래됐습니다. 오랜 옛날 인류 조상들은 다치거나 아플 때 주위에서 약을 찾았습니다. 그때부터 널리 사용되고, 지금도 중요하게 쓰이는 게 약초입니다. 현재는 한방 약재뿐만 아니라 생명산업, 기능성 식품, 산업 소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2023 산청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우리 전통 약초와 관련한 이야기, 특성, 효능 등이 담긴 기사를 연재합니다.]
(산청=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에 한 왕이 있었다.
왕은 평소 목 디스크를 앓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지병에 효과가 있을 거라며 산유라는 붉은색 작은 열매를 바쳤다.
하지만 왕은 약이랍시고 고작해야 작은 열매를 바친 게 괘씸해 그 사람에게 곤장을 때린 뒤 쫓아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뒤 왕은 여전히 목 디스크가 낫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다.
백방으로 방법을 수소문하던 어의가 어느 날 검고 마른 열매를 끓여와 왕이 복용하게 한 뒤 그 씨를 베개에 넣어 자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수년간 왕을 괴롭혔던 목 디스크가 씻은 듯 사라졌다.
이에 왕이 어의에게 무슨 좋은 약을 썼는지 물었다.
그러자 어의는 "3년 전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공물로 바친 산유 열매입니다. 산유 열매로 만든 베개를 베고 자면 목 통증도 낫고 눈이 밝아진다는 얘기가 있어 그대로 처방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왕은 어의의 공을 치하하며 열매에 어의의 성인 '주'(朱)를 넣어 산유라는 이름을 산주유(山朱萸)로 바꾸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산주유는 현재 우리가 쓰는 산수유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산수유나무는 층층나뭇과에 속하며 낙엽이 지는 키가 큰 나무다.
가을에 붉게 익는 긴 타원형의 매우 작은 열매가 열리며 주로 독성이 있는 씨를 제거한 후 말려서 먹거나 산수유주를 담가서 먹는다.
국내에서는 수년 전 한 건강기능식품 회사의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멘트가 유명해지며 산수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적 있다.
당시 이 회사 대표는 허위·과장 광고 논란에 휩싸여 재판까지 갔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다.
이 일화는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많은 약재의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행법상 약이 아닌 이상 구체적 치료 효과를 명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 한 게 대박을 터트리며 허위·과장 논란에 시달린 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산수유의 성질은 약간 따뜻하며 맛은 시고 떫다.
간과 신장의 기운을 돕고 몸 안 정혈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잡아 주는 효능이 있다.
이밖에 어지럼증이나 귀울음, 허리가 시리고 아플 때 혹은 오줌을 흘리거나 자주 마려울 때도 쓸 수 있다.
현대에는 비타민A를 포함해 여러 생리 활성물질이 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몸을 지키는 1차 순찰 병력인 대식세포의 기능을 촉진하고 생체 면역기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백혈구 감소증이나 종양 치료 등에 임상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이밖에 혈당을 낮춰 당뇨병에 좋으며 피부 손상을 방지해주는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남자에게 참 좋다'는 산수유가 남성 정력제만이 아닌 실생활에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주로 산기슭이나 인가 부근에서 잘 자라며 중국과 한반도 전역에서 자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남 구례와 경북 의성·봉화, 경기 이천·양평이 주산지이다.
경남에서는 하동과 산청 일부 농가에서 소규모로 재배 중이다.
특히 산수유나무가 많은 구례에서는 근현대사 우리 민족의 애환을 산수유에 빗댄 '산동애가'라는 노래가 전해지고 있다.
산청군 관계자는 "경기도 여주나 이천에서는 마을 여자들이 입에 산수유 열매를 넣고 이 사이로 씨를 발라냈다고 한다"며 "하루 한 말 정도 씨를 발라냈는데 이렇게 모은 게 약효가 더 좋다고 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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