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주문기도 어려운데 영어까지?”…외국어 메뉴판에 어르신 난색 [9일은 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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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를 찾은 50대 여성 최모씨는 무인 주문기(키오스크)를 잘 사용할 수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가끔씩 멈칫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이건범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외국어, 특히 영어를 쓰면 고급 문화, 세련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카페든 공공장소든 영어를 남용하면 고령자 소외 내지는 차별로 이어질 수 있어 가급적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표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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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야? 그냥 카페라떼 시키려면 뭘 눌러야 해?”
6일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를 찾은 50대 여성 최모씨는 무인 주문기(키오스크)를 잘 사용할 수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가끔씩 멈칫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메뉴판이 영어 일색이라서다. ‘라이트시럽(저열량 시럽)’, ‘하우스 블렌드 라떼’, ‘소이밀크(두유)’ 등 범람하는 외국어에 주문하려는 음료를 찾지 못하고 길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최씨는 “한국말로 쓰면 될 것도 굳이 영어를 써서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며 “물어보기도 창피해서 카페를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9일 한글날이 577돌을 맞았지만 외국어와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영문 표기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겐 소통을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60대 여성 김모씨도 추석 연휴 때 가족들과 카페에 갔다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무인 주문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눌러도 오류창만 뜰 뿐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해당 음료는 '매진'이었다. 화면엔 '매진' 혹은 '품절'이라는 안내 대신 '솔드아웃(Sold out)'이라고 써 있어 순간 착각했던 것이다. 김씨는 "무인주문기 사용을 숙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젠 ‘영어’라는 산까지 넘어야 하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간판도 외국어 일색이다. 성수동, 연남동 등 카페와 식당이 밀집한 지역에서 로마자로 표기한 간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한글문화연대가 2019년 12개 자치구 7252개 간판을 조사해보니 외국어 간판이 1704개(23.5%)에 달했다. 한글과 외국어를 병기한 간판은 1102개(15.2%)에 불과했다.
한글을 병기하지 않고 외국 문자로만 표기한 간판들엔 위법 소지가 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제12조 3항에 따르면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해야 한다. 외국 문자로 표기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4층 이하 건물에 설치되는 크기 5㎡ 이하 간판은 허가 혹은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특허청에 외국 문자로 등록된 상표를 그대로 표시할 경우에는 외국 문자만 쓰인 간판을 걸어도 위법이 아니다.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데어리(유제품)’, ‘베지터블(채소)’ 등 각 구역을 안내하는 표지판에 영어가 등장한다. 한 매장에선 문구류를 ‘Stationery’라고 표시했다가 빈축을 샀다. 아파트 단지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맘스테이션(부모 안심 승강장)’ , ‘시니어클럽’(경로당), ‘라이브러리’(도서관) 등 영어로 표기한 안내 표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외국어를 남용하는 이유는 뭘까.
이건범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외국어, 특히 영어를 쓰면 고급 문화, 세련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카페든 공공장소든 영어를 남용하면 고령자 소외 내지는 차별로 이어질 수 있어 가급적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표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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