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잡히는 물가에 소비심리 위축…재정·통화정책 공조도 쉽지 않아
금리 올리자니 가계부채 걸림돌, "그래도 금리 올려야"
[편집자주] 미국 국채금리가 연일 급등하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앞으로 상당 기간 고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고용 등 경기지표가 여전히 강한 미 연준이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추가로 금리를 올릴 경우 한국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습니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이미 2%포인트(p)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한미 간 정책금리 역전 현상이 심화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고환율, 고물가가 다시 이어지는 등 한국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이에 뉴스1은 2회에 걸쳐 최근 경기 진단과 위기 대응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세종=뉴스1) 손승환 기자 =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확대되면서 남은 하반기 경기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가계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졌다는 의미인 만큼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어서다.
특히 물가 오름세가 국제유가 상승이라는 대외 요인에 기인하고 있는 데다, 고금리 장기화 전망까지 이어지면서 경기 반등에 기대를 걸만한 마땅한 요인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2.99(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전월(3.4%)에 이은 2개월 연속 상승폭 확대다.
소비자물가는 올 1월(5.2%) 정점을 찍은 이후 7월까지 매월 하락하면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 8월부터 다시 오르막을 걷고 있다. 이는 국제유가가 오른 영향이 컸다. 지난 7월 -25.8%, 8월 -11.0%이던 석유류 물가 하락 폭이 9월에는 -4.9%에 그쳤다.
또 석유류의 물가상승률 기여도 역시 7월 -1.49%포인트(p)에서 8월 -0.57%p, 9월 -0.25%p 등으로 둔화했다. 석유류 가격의 하락세 둔화가 전체 물가의 상승 폭을 키운 셈이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석유류 물가 하락 폭이 둔화했고, 국제유가 상승분이 10월 물가에도 어느 정도 반영될 걸로 보인다"며 "국제유가에 따라 앞으로 (물가 흐름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통계청 관측대로 남은 상황도 불투명하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월평균 물가상승률은 3.7%였다. 정부(3.3%)와 한국은행(3.5%), 한국개발연구원(KDI, 3.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 등 주요 기관의 전망을 여전히 상회하는 수준이다. 물가가 목표대로 가려면 남은 석 달 동안 2%대의 상승률을 보여야 하는데 현재로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강상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가계부채가 너무 심해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남은 기간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들어가긴 사실 어려울 것 같아 기재부와 한은이 더 큰 고민에 빠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천소라 KDI 경제전망총괄은 "연말 연초 국제유가 방향에 따라 전망 수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면서도 "향후 유가 상승세가 기존의 전망에 비해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경우 전망치 상향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물가 측면에선 오는 4분기 공공요금 인상도 악재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015760) 사장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2021년 시행된 연료비 연동제 이후 정부가 올해 인상을 약속한 전기요금은 kWh당 45.3원이고 이를 맞추려면 25.9원을 이번(올해 4분기)에 올려야 한다"며 "지금까지 올리지 못한 부분을 대폭 올리는 것이 맞다"고 호소한 바 있다.
여기에 장기간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소비 지표도 상황이 좋지 않다. 대표적인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지난 8월 기준 전월 대비 0.3% 감소했다. 두 달째 이어진 감소이자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5.2% 하락한 수치다. 정부는 재화 소비가 주춤했을 뿐 서비스 부문은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매달 동일한 방식으로 나오는 지표인 만큼 전반적인 소비가 그만큼 안 좋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경기가 반등하는 '상저하고'를 실현할 정부의 돌파구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단 점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5일 "결론적으로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1.4%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생산, 수출, 소비를 종합한 성장 정도가 훨씬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기조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추가적인 물가 상방 요인과 이로 인한 가계의 실질 구매력 감소는 이미 예견됐다. 한은의 '9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103.1)보다 3.4p 하락한 99.7이었다. CSSI가 기준선인 100을 밑돈 건 4개월 만이다. CCSI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강 교수는 "상저하고는 생산, 소비, 수출이 좋아져야 실현 가능한데 물가가 오르면 소비는 물론이고 수출에도 악영향을 준다"며 "재정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기도 쉽지 않고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유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 연장, 할인쿠폰 지급 등의 방식으로 통화 정책과 엇박자를 내선 안 된다"며 "재정지출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원을 할 거면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식으로 지출을 더욱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금리를 올려 고물가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 압력은 충분히 안정되지 않았다"라며 "정부가 이야기하는 물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금리를 인상하는 것 외엔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s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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