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사는것처럼 꾸며…임대주택 부정입주 시킨 브로커들

최지은 기자 2023. 10. 9.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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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서울 강북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이한민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서울 강북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이한민 경위(52)는 8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허위 서류를 꾸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입주한 부정 입주자들과 브로커 등 129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LH로부터 받은 전세 대출금은 106억에 달했다./사진=본인 제공
"지인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받았는데 이게 혹시 불법인가요?"

지난해 초 서울 강북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고시원에 살고 있다고 허위로 전입 신고를 하는 등 서류를 꾸며내 LH 전세자금을 불법 대출받고 LH 전세임대주택 부정 입주 자격을 얻은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북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이한민 경위(52)는 직접 제보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브로커의 인적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일단 제보자로부터 들은 정보를 토대로 브로커 A씨에 대한 수배를 내렸다.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A씨가 검거돼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A씨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던 이 경위는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A씨는 브로커 B씨와 C씨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브로커들은 LH 전세자금 대출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서류를 꾸몄다. 쪽방, 고시원 등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거취약계층이 될 수 있다. 이를 노려 브로커들은 고시원 원장들과 결탁했다.

1개월 치 고시원 이용료를 지불하는 대신 LH 임대주택 부정 입주자들이 4~5개월가량 해당 고시원에 거주했다는 가짜 영수증을 발급받았다. 고시원 거주자가 전입 신고하기 위해서는 영수증을 꼭 증빙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정 입주자들은 실제로 고시원에 거주한 이력이 없지만 지방자치단체와 LH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주거취약계층 자격을 얻었다. A씨는 부정 입주자들에게 수수료로 1인당 100만~500만원을, B씨와 C씨는 100만~300만원을 받았다. 부정 입주자들이 LH로부터 받아낸 전세자금 대출금은 총 106억원에 달했다.

브로커들은 부정 입주자 한 명을 섭외한 뒤 입소문을 내 또 다른 부정 입주자를 모았다. 지인을 소개하거나 가족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연령대도 청년층부터 고령층까지 다양했다. 특히 B씨는 부정 입주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딴 것으로 드러났다. C씨는 B씨에게 범행 수법을 배운 뒤 B씨와 별개로 브로커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경위는 브로커들의 계좌를 추적해 부정 입주자들을 추려 나갔다. 100만원, 200만원 등 단위가 떨어지는 송금 내역은 모두 조사했다. 그러나 계좌 추적은 쉽지 않았다. A씨는 본인의 계좌를 사용했지만 B씨와 C씨는 본인 대신 가족의 계좌를 범행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추린 명단은 LH에 보내 용의선상에 오른 이들이 실제 LH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거나 LH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8개월간에 걸친 방대한 수사 끝에 브로커 3명과 고시원장들을 포함해 총 129명을 사기, 공공주택 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중 브로커 A씨는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져 법원에서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경위는 1999년도에 경찰 마크를 달았다. 수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인 수사 경과를 딴 뒤 22년간 형사와 수사관으로 활동했다. 2007년에는 중국 삼합회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위조 여권으로 국내에 입국한 사건을 수사해 일망타진했다. 보험 설계사와 고객, 의사들이 결탁해 대규모 보험 사기를 벌인 사건을 수사해 구속까지 이어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수사통' 이 경위는 더 좋은 수사 인프라가 마련되면 더 많은 후배 수사관들이 몰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22년째 수사 업무를 이어오고 있는데 더 좋은 수사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며 "또 좋은 후배들이 수사 업무에 많이 자원해 함께 여러 사건을 해결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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