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인터뷰]송중기 "지루해지고 싶지 않아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과 정반대 이미지
"뻔하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 계속 원했다"
"욕 먹을 수도 있겠지만 꼭 해야 하는 영화"
제작비 낮추기 위해 출연료도 받지 않아
"내 결정 칸 진출로 일부는 보상 받은 듯"
지난 5월 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진출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귀 일부가 뜯겨 나갔을 정도로 깊은 상처, 감정을 드러내는 법 없는 건조하고 푸석한 얼굴, 온몸을 휘감은 흉터. 영화 '화란'(10월10일 공개)의 치건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인 그는 중식당에서 우연히 본 연규에게 300만원을 건넨다. 연규와 중식당 사장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이 아이에게 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걸 눈치 챈 뒤 적선하듯 돈을 준다. 이 인연을 계기로 연규는 어두운 세계에 발을 담근다. 치건은 찾아오지 말라고 했으나 탈출구가 필요했던 연규가 그 말을 들을 리 없다. 치건은 연규를 도우려 한 걸까, 아니면 끌어들인 걸까. 치건은 연규에게 말한다. "이 동네 참 X같아."
치건을 연기한 배우는 송중기(38). 그는 이런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그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나 '빈센조'의 빈센조 혹은 '태양의 후예' 유시진이 보여준 멀끔하게 깨끗한 얼굴이니까. 그러나 '화란'에서 송중기는 자신이 가진 외모를 완전히 바꿔놓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외모 뿐만이 아니다. 그는 치건을 끌어 안고 염세와 우울 속으로 깊이 파들어 간다. 송중기는 "새로운 걸 원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화란'에서 그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다.
-'화란'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
"영화가 스산해서 좋았다. 앞서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못한 적이 있다. 당시에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인지 이 대본 처음 봤을 때 딱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많은 시나리오가 비슷해 보였다. 흥행 공식에 딱 짜여진 작품이랄까. 새로운 게 하고 싶었다. '화란'의 그 스산함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 영화와 어떻게 만나게 됐나. 직접 제안 받은 게 아니고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맞다. 당시 플러스엠이 제안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 나간 자리에서 '화란'이라는 게 있다는 말을 들었다. 플러스엠 관계자가 내게 어떤 작품이 하고 싶냐고 묻더라. '이런 느낌의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화란' 대본을 한 번 보라더라.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거다. 영화 '똥파리' 느낌이 나더라. 정말 하고 싶었다. 문제는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가 안 시켜줄 수도 있다는 거였다.(웃음) 우리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도 안 된다고 할 것 같았다. 회사도 수익을 따져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화란'은 규모가 작은 작품이기도 하고, 돈도 안 받는다고 하니까.(웃음)"
-그래도 사나이픽쳐스와 매니지먼트 회사 쪽에선 결국 허락한 것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한 대표님도 좋다고 하고 회사 대표도 좋다더라. 회사 대표는 영화 '가버나움' 생각이 난다면서 이건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상업영화가 아니다 보니까 제작비 문제가 있어서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회사 대표도 '네 말이 맞다'며 그러자더라. 어쨌든 이 선택은 좋았던 것 같다. 칸영화제에 갔으니까. 물론 칸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고, 관객에게 평가를 받는 일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노 개런티 출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인터뷰 때 최대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더 말하고 있다.(웃음) 이게 알려져서 제작사 대표들이 저기서는 (출연료) 안 받고 여기서는 받냐고 농담을 한다.(웃음) 여기서 확실하게 말하겠다. 받을 거다. 많이 받을 거다.(웃음)"
-'화란'은 일단 겉보기엔 누아르 혹은 갱스터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 하고 싶었던 게 이런 류의 작품이었다고 보면 되나.
"건달 영화를 하고 싶었던 건 전혀 아니다. 일단 누아르라고 하면 건달 영화로 분류되는 것 같지만, 사실 누아르에는 여러 갈래가 있지 않나. 내가 원한 건 '화란'과 같은 분위기와 캐릭터 간 관계였다. 여기에 가정폭력이라는 게 얽혀 있는 것도 좋았다. 사실 내가 '무뢰한'을 정말 좋아한다. 열 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재곤(김남길)이 혜경(전도연)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수사를 하려는 건지 아사모사 하지 않나. 그 느낌을 참 좋아한다. 우리 영화에서도 치건이 연규를 대하는 태도가 명확하지 않다. 그런 게 좋았다. 게다가 '화란' 제작진과 '무뢰한' 제작진이 같다. 그것도 좋았다."
-아마도 해보지 않은 것,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큰 것 같다. 최근 그런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는 건가.
"음…코로나 사태 거치면서 그런 마음이 커진 것 같다."
-해외 작품 오디션을 꾸준히 보고 있는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라고 봐도 되나.
"그렇다. 오디션은 계속 보고 있다. 자꾸 떨어져서 슬프긴 하다.(웃음)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작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 물론 반드시 해외에서 활동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다. 그래도 더 다양하게 일해보고 싶은 건 맞다. 지루해지고 싶지 않다. 외국어 공부를 더 일찍 시작할 걸 그랬다.(웃음) "
-치건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어쨌든 '화란'은 연규의 이야기다. 치건은 연규 주변 인물이다. 운신의 폭이 좁을 수 있지 않나.
"말한대로 이 영화 중심은 연규다. 그런데 연규를 연기하는 사람이 신인 배우인 홍사빈이다. 나는 홍사빈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배우이고. 이런 이름값, 현실적인 부분이 이 이 작품의 플롯을 망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연규의 영화이지 않나.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연규를 따라가자고 판단했다. 그런데 내 깜냥이 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았다.(웃음)"
-'깜냥이 안 된다'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힘을 빼려고 했는데 자꾸만 힘이 들어가더라.(웃음) 그래서 내가 깜냥이 안 된다고 말하는 거다. 나도 야망이 있는 배우 아닌가.(웃음) 연기하는데 자꾸 힘이 들어가는 거다. 힘을 빼자고 나 자신을 자꾸만 채찍질 했다. 잘 된 건지, 잘 안 된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관객이 판단해줄 거다. 아무튼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이 역할을 꼭 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홍사빈 배우는 대선배인 당신을 완전히 믿고 따라갔다고 하더라. 깜냥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큰 힘이 돼 준 것 아닌가.
"당연히 믿음을 주고 싶었다. 나도 선배들에게 그런 혜택을 받았다. '재벌집 막내아들' 할 때, 이성민 선배께 크게 의지하면서 푹 안겨 연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는 아직 이성민 선배 경지에 이르진 못했다. 그래도 홍사빈에겐 선배이긴 하니까 그 친구가 기댈 수 있었다면 그게 오히려 감사하다. 근데 모르는 거 아닌가. 말로만 그러는 건지 진짜인지.(웃음)"
-성공한 작품도 쌓였고 연기 호평도 꾸준히 받아왔는데 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내보이지 않나.
"믿음…글쎄, 아직 모르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아직은 내가 원하는 정도에 다가가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내려놓는다'는 말을 하지 않나. 난 아직은 잘 안 내려놔진다.(웃음) 그래도 최대한 책임감 있게 일하려고 한다."
-홍사빈과 연기는 어땠나. 이 작품이 홍사빈에게 첫 작품은 아니지만 사실상 완전 신인이라고 해도 무방한 경력을 가진 배우 아닌가. 그런 면에서 힘들지는 않았나.
"알아서 잘하더라. 홍사빈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앳된 얼굴에 묵직한 성격 갖고 있다. 처음 주인공을 하는 배우가 아닌 것 같더라. 홍사빈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 잘 안다. 아무튼 여러 면에서 다 잘했다. 그리고 홍사빈이 황정민 선배와 같은 (매니지먼트) 회사 아닌가. 황정민 선배한테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겠나. 까불면 바로 혼난다.(웃음) 참 바르게 자란 친구 같았다."
-작품 외 얘기를 잠깐 하고 싶다. 최근 팬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서 다정하게 각종 팬 서비스를 해주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성민 배우는 당신의 그런 모습이 참 대단하고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성민 선배님이 좋게 봐줬다는 게 참 기분 좋고 쑥스럽다. 음…연예인이라고 해서 일상 생활에서 나를 고립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만 외로워진다. 내 판단이 맞는지 틀린지 모르겠지만 배우라고 해서 자꾸만 집으로 숨고 밖에 다닐 때 얼굴 가리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가야 하지 않겠나."
-제작에도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제작에는 관심이 많다. 제작이라는 말이 좀 광범위한데, 좁혀서 말하면 기획에 관심이 있다.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한데 휴대폰 메모장에 간략한 스토리를 적어보기도 하고, 친한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한다.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공개할 수 없다.(웃음) 아마도 이 부분 역시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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