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정신건강 지키고 싶다면 '마음 신호' 놓치지 마세요"
정신건강의학회 "우울 극복, 개인 노력만큼이나 사회·제도적 역할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는다.
'안녕하다'는 원래 '아무 탈 없이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하기에 인사말로 쓰이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에 대해 병이나 증상이 없는 수준을 넘어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이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로 정의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인의 마음 건강은 안녕한 것일까.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소속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과 함께 한국인의 마음 건강을 진단해보고 해법을 찾아봤다.
한국인 성인 6.4%가 '우울감' 호소…전문가 상담은 100명 중 1명 그쳐
경희의료원 디지털헬스센터 연동건 교수팀이 정신질환 분야 국제학술지(Asian Journal of Psychiatry)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19세 이상 한국인 284만명을 대상으로 우울감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2019년까지는 5.9∼6.0% 수준에서 변화가 없었지만,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6.4%로 상승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 중 전문가한테 상담받은 경우는 1.1% 수준에 그쳤다. 우울감을 가진 한국인 100명 중 1명 정도만 상담받는 셈이다.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여러 미디어에서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다뤄지면서 정신건강의 개념이 일상에 스며들고, 정신과를 방문하는 데 대한 거부감, 선입견도 많이 줄어들었다"며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를 잘 알지 못하거나, 안다고 해도 치료를 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도 "'누구나 이 정도는 다 힘들지', '지금 잠깐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마음의 병을 방치하고 키우다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 때가 돼서야 비로소 상담소나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빠지고 있는 정신건강을 방치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개인적,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보험연구원이 발간하는 '고령화 리뷰'에 따르면 정신·행동장애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2015년 106만명에서 2019년 133만명으로 연평균 6.2% 증가했다.
이와 관련한 질병 부담은 2030년 8조6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근골격계 질환, 당뇨병, 심혈관질환, 암 등에 이어 7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윤석준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인의 정신건강 질병부담과 보건복지부 예산 비교 연구 결과'에서는 2015년 기준 정신·행동장애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규모를 약 7조2천억원으로 추산했다.
특히 생산성 손실 등의 간접비용으로 인한 부담은 환자들의 의료비용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보다 63.5%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내 정신건강 상태 정확히 아는 게 중요…'마음 신호'에 귀 기울여야
정신건강에는 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 생물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개인마다 정신적인 어려움의 주원인이나 증상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정신장애의 예방 및 치료,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개인의 심리적 측면뿐 아니라 신체적, 사회적 여건에 대한 다각적 접근과 함께 사회적, 제도적 지원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불행에서 불행을 느끼지 않는 상태로 옮겨가는 것은 마치 마이너스(-)에서 제로(0)로 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더 나아가 불행하지 않은 상태를 넘어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은 제로에서 플러스(+)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오강섭 이사장은 "현재 마음의 건강이 마이너스에 있는 분들은 일단 제로 상태로 옮겨갈 수 있도록, 또 제로 상태에 계신 분들은 플러스로 가서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신건강 증진의 궁극적 지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현재 어디쯤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렇다고 '지금 내가 마이너스에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파도를 겪을 때가 있고 그럴 때는 마이너스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지금 있는 그 자리가 영원히 내가 머무를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오 이사장의 조언이다.
정정엽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위원회 위원은 "지금 마이너스에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 제로로, 또 제로에서 플러스로 조금씩 옮겨갈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며 "다만, 만약 지금 제로에 계신 분들이라면 내 삶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작은 것들부터 실천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정 위원은 "물론 백점 만점처럼 정신건강에 있어 완벽함을 추구할 필요는 없고, 완벽하게 행복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며 "하지만 우리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늘 귀 기울이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울증, 감추고 부끄러워할 질환 아냐…개인 문제보다 사회·제도적 접근해야
우울증이나 우울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인관계와 사회적 활동에서 위축되고 고립되는 경향을 보인다.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기능도 떨어지고, 집중력이 감소해 학업이나 직업적 성취, 생산성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심하면 우울감 해소와 현실 도피 등을 이유로 약물이나 알코올에 취약한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더 이상 감추거나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질환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몸이 아플 때 자연스럽게 병원에 가는 것처럼 우울증 역시 전문가에 의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마음의 질환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울증의 치료법은 크게 약물 치료와 정신 치료 두 가지로 나뉜다.
약물은 우울증과 관련 있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을 조절하는 항우울제 약물의 처방과 복용을 위주로 이뤄진다.
이해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우울증은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거나 불균형할 때 나타나기 때문에,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접근으로서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약물치료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 수 주 또는 수개월 이상 복용할 필요가 있으며, 복용하는 약물의 종류와 복용량 및 기간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처방을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학회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약물로 인한 중독이나 부작용에 대한 염려, 약물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약물 치료 없이 정신 치료만 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는 메스꺼움, 구토, 설사, 떨림, 체중감소, 두통 등의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경미하거나, 지속해 복용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편이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위원회 위원장은 "약물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 환자는 의사와의 충분한 면담을 통해 치료 시작 전 충분히 인지해야 하고, 부작용이 나타날 때는 즉시 담당 의사에게 알려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약물 치료 자체를 피한다면 치료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치료 과정에서 우울증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강섭 이사장은 "개인과 사회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이기 때문에 우울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적, 역사적 맥락 안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사회의 역할과 제도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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