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뜨겁게 만든 고용, 트럼프가 식히나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11일 의회서 '적과의 동침' 또 일어날까
요즘 미국 학교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입니다. 특히 등하교길이 그렇습니다. 스쿨버스와 학부모 자가용으로 뒤엉켜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고 있습니다. '등하교 시간에 학교 주변 도로를 피하라'는 미국에서 불문율이 되고 있습니다.
스쿨버스 수가 줄자 자녀들을 직접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이 급증해 일어난 일입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은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미국 학생들의 등하교길이 고통스러워진 건 미국의 노동시장과 관련이 깊습니다. 여전히 '노동시장은 활활 타오르고 연착륙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9월 고용보고서'에 미국 학교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뜨거운 고용보고서의 이면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이슈와 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게 부족한 '미국 학교'
미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팻말은 여전히 'We are hiring'입니다. 팬데믹이 끝난 지난해 정점을 찍은 뒤 조금씩 완화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든 학교들이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스쿨버스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미국 내 최고 교육특구로 불리는 버지니아 페어펙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 이전에 비해 스쿨버스 기사가 확 줄었습니다.
365일 내내 기사 모집 공고를 내지만 늘 수요 초과, 공급 부족입니다. 기사에 대한 수당과 복지를 늘려보지만 한계가 명확합니다. 공립 학교의 예산은 미국의 50개 주 정부와 교육청 통제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들은 하는 수 없이 스쿨버스 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일반 시내버스처럼 노선을 아예 없애거나 감축할 수 없습니다. 실어날라야 할 학생들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버스 한 대당 운행거리를 늘리는 고육지책을 선택했습니다. 예전에 버스 두 대가 다녀야할 거리를 한 대가 감당한다는 얘기입니다. 자연스레 스쿨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통학시간도 최대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등교시간보다 차가 더 밀리는 하교 시간에 스쿨버스 대기 시간도 확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학생들이 스쿨버스 대신 '부모찬스'를 씁니다. 미국에선 16세부터 운전이 가능한 만큼 직접 차를 모는 고등학생들도 늘고 있습니다. 버스 기사 부족으로 인한 불편한 '나비 효과'입니다.
학교에선 버스 기사만 모자란 게 아닙니다. 교사 부족 현상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투안 응우옌 캔자스주립대 교수는 연구를 통해 "미국내 교사가 최소 16만명이 부족하다"고 집계했습니다. 미국 남부 지역의 교사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고 악시오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교생도 아닌 무자격 대학생들이 교사를 대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교사 지망생이 줄어든 탓입니다. 코로나19와 잇따른 교내 총기사고도 교사직을 기피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들은 365일 연중무휴로 사람을 뽑고 있습니다. 부족한 교사와 버스기사, 직원들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사람들이 조금씩 모집되고 있습니다.
그 상황이 9월 고용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연방정부(2만9000개)와 주 정부(2만7000개)에서 뽑은 교육 분야 신규 일자리만 5만6000개었습니다. 9월 중 새로 생긴 정부 부문 일자리(7만3000개)의 76%를 차지했습니다. 정부 부문의 9월 신규 일자리(7만3000개)가 지난 1년 평균(4만7000개)의 1.65배에 달했는데 그 핵심이 교육부문 일자리였던 것입니다.
바이든표 '네버엔딩 일자리'
정부 부문 신규 일자리는 지난해 9월만 해도 6000개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올들어 급증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쏟아부으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바이든표 일자리 늘리기는 민간 부문에서 더욱 더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건설업입니다. 미국 의회가 2021년말 1조2000억달러의 인프라 예산을 통과시킨 뒤 미국의 건설업 붐은 역대급입니다. 도로와 다리, 철도를 새로 놓는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금리 속에 주택 건설은 줄고 있지만 인프라를 짓는 토목 공사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미국 내 공장 건설도 역대급입니다. 한국과 대만, 일본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건설업 인력이 늘 부족한 이유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달 건설업 근로자 수는 801만4000명이었습니다, 한 달 전보다 1만10000명, 1년 전보다 21만7000명 각각 증가한 수치입니다. WSJ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미국인이 지금보다 많았던 적은 없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건설업은 일자리 파급효과를 낳습니다. 도로와 다리를 새로 짓고 공장을 신축하면 주변에 식당과 호텔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시설이 부족하면 새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서비스업 일자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실제 9월 고용보고서를 보면 대면 산업 일자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레저 같은 접객업에서 9만6000개의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1년 평균(6만1000개)을 웃돌고 있습니다.
식당과 바 등을 포함하는 요식업에서도 6만1000개가 늘었습니다.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병원 등 헬스케어 일자리도 4만1000개 많아졌습니다. 바이든표 정책이 계속해서 일자리 수요를 늘리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바꿔 말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확장재정을 지속하는 한 미국 내 일자리는 늘고 노동시장은 계속 뜨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원 의장 해임의 나비효과
확장적 재정정책과 긴축적 통화정책은 이론적으론 모순적인 정책 조합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합니다.
미 중앙은행(Fed)은 금리 인상으로 시중의 돈을 흡수하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모은 돈을 시중에 뿌리고 있습니다.
시중의 돈은 줄어든 상황에서 미 국채 발행량은 늘어납니다. 미국 국채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금리 장기화' 내러티브에서 국채금리를 비롯해 시중금리가 급등한 배경입니다. 희한한 두 정책의 조합은 미 국채시장에서 오히려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백악관과 Fed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경기 연착륙론이 시장에서 먹히고 있습니다. 고금리를 유지해도 미국은 경기침체를 겪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의회가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미 연방정부의 업무중단(셧다운) 화두로 불안심리를 자극하더니 234년 미국 의회 역사상 하원 의장이 처음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 하원 구조에서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을 대체할 수 있는 후임자를 선출할 수 있을까요.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는 의장이 단 번에 나올까요. 신임 하원 의장 투표일인 오는 11일(현지시간)에 그 결과가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공화당·오하이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지지하는 후보가 공화당 강경파가 아닌 다수의 중도파 의원들의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하원 의장이 되려면 하원(435명)의 과반을 확보해야 하는데 하원 의원 수가 221명인 공화당에서 4명만 반대해도 하원 의장은 선출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매카시 전 의장의 해임 같은 일이 재발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당시 '적과의 동침'을 보여준 민주당과 공화당 강경파의 야합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하원 의장 공석이 길어지면 또다시 셧다운 위기 우려가 재점화될 수 있습니다. 지난달말 의회를 통과한 45일짜리 임시예산안 시한이 끝나는 11월 17일까지 내년 본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임시 의장 체제에서 여야간 협상이 순탄하게 이뤄질까요.
그렇다고 추수감사절(11월24일)을 앞두고 연방정부가 문을 닫고 예산 집행을 멈추기는 힘들 전망입니다. 현재로서는 임시 의장 체제 하에서 또다른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키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에 임박해 내년 예산안을 처리하는 경로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이든표 예산에 제약이 생깁니다. 임시 예산은 전년도 수준에서 동결되는 형태가 많습니다. 임시 의장 체제에서 예산 증액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민주당과 공화당이 옥신각신 중인 우크라이나 지원금과 국경강화 예산을 맞바꾸는 건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꺾이는 CPI?
노동시장은 계속 뜨겁습니다. 미국 경제는 강력합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좀 다릅니다. 근원물가를 중심으로 조금씩 완화하고 있습니다. 복병은 유가와 주거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락을 하고 있습니다. 디스인플레이션을 주도할 것이라던 주거비는 생각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2일 나오는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줄 수 있습니다. 시장 컨센서스는 안도를 바라고 있습니다. 헤드라인 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3.6%로 8월(3.7%)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플레 완화와 상당히 보수적인 클리블랜드 연방은행의 인플레나우캐스팅도 3.7%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Fed가 더 중시하는 근원 CPI는 9월에 4.1% 상승해 8월(4.3%)보다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다만 변수는 Fed 인사들의 발언입니다. 10일에 9월 FOMC 의사록에서 미처 나오지 않은 매파적 말들이 공개될 수 있습니다. 이번주에 수많은 Fed 인사들이 공개 연설을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갈 길이 멀다"거나 "우린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최근 채권금리 급등으로 금융시장 상황이 변한 만큼 발언의 톤이 바뀌었을 개연성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골드만삭스의 금융여건지수가 악화한 것처럼 금융시장 리스크가 높아진 게 두 번의 금리인상 효과를 갖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도 금리를 올리기 부담스런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이 때문에 금리인상 필요성이 줄어들고 올려도 11월이 아니라 12월이 적합하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면제받나
반도체 규제도 이번주 중요한 관전포인트입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한 지 1년이 된 시점에 업데이트를 합니다. 규제가 1년이 지나는 11일 전후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이 1년 규제 유예를 받는 것을 벗어나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지위를 얻을 수 있을 지가 관건입니다. VEU는 사전에 승인된 기업에 한해 지정된 품목 수출을 허가하는 일종의 포괄적 허가 방식입니다. 한번 VEU에 포함되면 건건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정된 품목에 한해 수출 규제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첨단 반도체 미세공정에 절대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반입하는 건 여전히 언감생심입니다. 이 때문에 그 어떤 규제가 나온다 하더라도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국과 대만의 중국 반도체 공장은 현상 유지와 기존 장비 보수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주는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중동 정세를 어떻게 흡수할 지가 핵심 관건으로 떠올랐습니다. 재정정책 측면에서만 보자면 바이든표 확장재정이 혼란스러운 의회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 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화정책에선 채권금리 상승 속에 CPI가 어떻게 나올 지가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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