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데탕트’에 존재감 잃을라…하마스, 이스라엘 기습공격 감행한 까닭은

전혼잎 2023. 10. 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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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이스라엘과 수교 논의에
하마스 ‘위기감’… 중재 미국 ‘골치’
이스라엘 적대 정책 항전 성격도
8일 팔레스타인 남부 가자지구 칸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으로 파괴된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를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펴보고 있다. 칸유니스=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공격은 16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서안지구 공습, 알아크사 모스크 모독에 대한 대응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지도자 무함마드 알데이프는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기습 공격 ‘알아크사 홍수 작전’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재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년간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조이며 하마스와 물리적 충돌을 이어왔다.

그러나 하마스의 목적이 단순한 보복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중재로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 ‘중동 데탕트(detente·긴장 완화)’ 분위기에 고립을 우려한 하마스가 존재감을 부각하려 나섰다는 것이다. 오랜 중동 화약고의 불씨를 덮으려던 국제사회의 시도가 오히려 전쟁으로 번진 양상이다.


“하마스, 더 많은 ‘국제 관객’ 확보하려 해”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에서 회담 중 악수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이스라엘 사법 개혁, 팔레스타인 분쟁,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관계 문제 등을 논의했다. 뉴욕=AFP 연합뉴스

하마스의 위기감은 아랍권 국가로부터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던 이스라엘이 수교를 잇달아 이뤄낸 상황이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등과 이른바 ‘아브라함 협약’을 맺고 관계를 정상화한 이스라엘은 최근 아랍의 맹주 사우디와도 외교 관계 정상화 논의를 벌이고 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팔레스타인의 '뒷배'를 자처하던 사우디는 수교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내세웠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우파 연정은 이를 완강히 반대한다. 마무드 아바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요르단강 서안지구,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각각 나눠 통치하는 팔레스타인의 상황도 걸림돌이다. 지난달 사우디는 외교 사절단을 서안지구에 보내 아바스 수반을 만났다.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이해관계자인 팔레스타인의 지지를 얻으려는 행보인데, 하마스로서는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나예프 알-수다이리 주요르단 대사 겸 비상주 팔레스타인 대사가 지난달 26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중심도시 라말라의 팔레스타인 외교부 청사에서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논의 중인 사우디는 이날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지구에 30년 만에 외교단을 파견했다. 라말라=AFP 연합뉴스

영국 가디언은 “이스라엘 민간인을 납치하고 살해한 것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이는 가능한 한 많은 ‘국제 관객’을 확보하려는 (하마스의) 작전”이라고 분석했다. 또 하마스가 전 세계 팔레스타인 세력을 향해 싸움에 동참하라고 촉구한 것도 팔레스타인에서 자신들의 영향력과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전했다.

미국으로서는 정치적 셈법이 복잡해졌다. NYT는 “팔레스타인 분쟁은 미국과 사우디 간 회담에서 ‘부차적인 문제’였다”고 전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1차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란을 제어하고,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막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사우디와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에도 제동이 불가피해졌다.


네타냐후의 극우 정부, 충돌 불씨 키워

7일 이란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축하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이번 공격은 국제 정세와는 별개로 네타냐후 정권이 극우 정책으로 잡음을 내온 만큼 팔레스타인의 항전 성격도 짙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 말 네타냐후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여기는 정착촌 확대 정책과 영토 병합을 주장하며 팔레스타인과 마찰을 빚었고, 이런 적대 정책에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도발 수위를 높여 왔다. 이스라엘이 이를 다시 강경 진압하면서 보복과 재보복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올해 9월 기준 227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에 의해 숨졌다.

하마스의 배후에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인 쿠드스군이 있다는 추측도 나오면서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불씨도 남겼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 흐름이 못마땅한 이란과 손을 잡고 중동 정세를 뒤흔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미 외교협회(CFR)의 중동 전문가 스티븐 쿡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을 더 효과적으로 도발하려 하마스와 헤즈볼라, 이슬라믹 지하드의 지도자들과 만나 왔다”면서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그 결과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의 기습 공격이 더 폭넓은 중동 전쟁의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란의 개입은 이스라엘의 내부 사정이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있다. 쿡은 “최근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추진한 사법부 개혁에 반발한 반대파들의 시위로 이란과 하마스 등이 이스라엘이 분열됐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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