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시에 당한 ‘중동판 진주만 공습’, 전쟁은 예고 없이 닥쳐온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대규모 선제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즉각 보복에 나서 중동 전쟁이 시작됐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 세력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해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면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는 유가 급등과 세계 경제 불안을 초래하고 우리 안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스라엘이 공격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 새벽에 5000여 발의 로켓포탄을 퍼부었지만 세계 최고의 정보 수집력을 자랑한다던 이스라엘 모사드는 공격 징후 탐지에 실패했다. 하마스는 무장 대원들을 이스라엘에 침투시켜 군인·민간인을 납치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아이언 돔’ 로켓 방어 시스템을 도입하고, 무장 세력 침투를 막기 위해 스마트 국경 시스템과 지하 벽을 설치했지만 하마스는 이를 무력화시키며 이스라엘 영토를 유린했다. 이스라엘로선 아랍의 기습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최악의 정보 실패로, ‘이스라엘판 9·11 테러’ ‘중동판 진주만 공습’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김정은 정권이 2019년 미·북 하노이 협상 결렬 후 더욱 호전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지난해 북한은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데 이어 지난달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했다. 핵무기의 다종화, 실전 배치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 김정은은 우리 계룡대 타격을 상정한 훈련에서 “남반부 영토 점령”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군사 지휘 거점과 군항·비행장, 혼란 사태를 연발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들에 대한 동시다발적 초강도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구체적 지시도 내렸다.
이스라엘 사태는 전쟁은 언제든지 예고 없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때보다 호전적인 북한이 하마스처럼 동시에 수천 발의 로켓포탄을 휴전선 너머로 쏘아 올리고 백령도 점령에 나서는 시나리오를 터무니없다고 배제할 수 있나.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과 북한군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하며 유사시 북한군 포탄이 단 한 발도 우리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만한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군과 정보 당국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여야 정치권은 온통 정쟁(政爭)에만 몰두해 있다. 국가정보원은 올 들어 1급 간부 보직 인사가 번복되며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군사훈련 도중 발사한 현무 미사일이 뒤로 날아가는 황당한 사고가 벌어지는 등 군의 기강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중동의 화약고에 불이 붙었는데도 국가안보실은 안보상황점검회의조차 열지 않고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세계 정세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북한은 대결 태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상황 인식은 안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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