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법치 국가 판사들은 한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2023. 10. 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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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법원은 前 대통령 두 명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했다
왜 현직 야당 대표만 방어권 보장해야 하나
日은 재판관 탄핵청구만 2만 건… 판사가 사법정의 허물 때 국민은 탄핵 요구해야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학자는 논문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 기자의 기사는 데스크가 검토하고, 학자의 논문은 동료 심사를 거치지만 판사의 판결문은 사전 검증 절차가 없다. 오보를 낸 기자는 소송당하고, 자료를 조작한 학자는 매장당하는데, 잘못된 판결문을 쓴 판사는 사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모든 문명국 재판은 3심제로 운영되나 상급심 판결로 하급심의 오류가 드러나도 판사는 문책당하지 않는다.

헌법은 판사들에게만 왜 그토록 커다란 특권을 보장하는가? 판사들이 고귀한 선민(選民)이거나 특출한 인재라서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하는 막중한 사법의 책무를 지기 때문이다. 만약 판사가 그 막중한 책무를 저버리고 법의 정신에 반하는 부당한 판결을 내놓는다면,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어떻게 법관의 독재에 맞설 것인가?

불과 몇 년 전 법원은 전직 대통령 두 명을 위시한 고위 공직자들을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무더기로 구속했다. 당시 영장판사들이 휘두른 법의 칼날은 사무라이 진검보다도 서슬이 퍼렜다. 무죄 추정이나 불구속 재판 원칙은 거론되지도 않았다. 법원은 전직 대통령을 잡아넣고선 반년 후 다시 반년 구속을 연장했고, 매주 4차례씩 공판을 이어갔다.

그랬던 법원이 특대형 비리 혐의에 휘말려 제 입으로 50년 형을 운운하는 야당 대표를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풀어주었다. 피의자가 경기도지사 당시 위증을 교사한 혐의는 이미 소명됐다면서도 동일 인물이 야당 대표 신분이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판사의 결정문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법치 국가 사법부의 모든 결정은 형평성과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어느 사회나 법의 생명은 진실성(integrity)에 있다. 저명한 법학자 드워킨(Ronald Dworkin)이 웅변하듯 “국가는 한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과 관련 피고인들을 수갑 채우거나 포승줄로 묶어 언론에 노출하는 문화혁명식 인격 살해를 일삼았던 법원이다. 이제 와 현직 야당 대표에게만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니 무원칙하고, 불공정하고, 비논리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사법의 원칙과 기준이 정세에 따라, 판사의 성향에 따라 표변하면 누가 법원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법을 존중하고 법치를 갈구하는 국민이라면 더더욱 법원의 불공정한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 무조건적 복종은 노예의 도덕이다. 민주공화국 시민의 도덕은 판사의 부당한 판결에 대해선 냉철하게 비판하고 강력하게 저항하라 명령한다. 이미 시민 사회의 법조인들은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예규를 근거로 문제가 된 결정문의 법리적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질타했다.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한 걸음 나아가 헌법과 법률에 반해 법관의 권력을 오용하는 판사를 탄핵하도록 국회를 압박해야 한다. 대통령, 장관도 탄핵하는 나라에서 법관 탄핵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일본의 경우 1948년부터 2022년까지 2만3719건의 재판관 탄핵소추 청구가 수리되었고, 이에 참여한 국민 총수는 89만4243명에 달한다. 한국의 법원도 탄핵의 압박을 직접 피부로 느껴야만 일부 교만한 판사의 사법 농단이 근절될 수 있다.

지난 6년간 특정 정치 세력에 장악된 대법원이 스스로 사법 독립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대법원장은 파벌의 수장처럼 처신했고, 법관들은 편파적 판결을 남발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아왔다. 지난 5년간 재판 지연의 사례가 민사, 형사 각각 65%, 68%나 급증했다. 청와대나 집권당 인사들 관련 재판은 끝도 없이 미뤄졌으며, 특히 선거소송에선 180일 이내에 신속히 처리하라는 법의 엄명이 아예 무시됐다. 법관들이 정치에 빠져서 재판을 사보타주한 혐의가 짙다.

법원이 무너뜨린 사법 정의를 이제는 국민이 행동으로 세워야 할 때다. 비판 여론의 형성, 학술적 검증, 범국민적 청원, 평화적 시위, 합법적 항의 등 국민이 기본권을 행사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사법부가 스스로 법의 정신을 훼손하거나 정치의 시녀가 된다면, 국민은 입법부를 압박해서 사법부를 견제하는 탄핵소추의 정공법을 쓸 수 있다. 결국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의회 권력의 판도를 바꾸는 길이 가장 효과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치의 궁극적 주체는 법관도, 정치인도, 공무원도 아닌 바로 일반 국민이다. 법관이 국민을 두려워할 때, 법관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가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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