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따거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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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환(1997년)을 앞둔 1980년대 홍콩에는 불안감과 허무함이 팽배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영화에 반영된 게 '홍콩 느와르'다.
그가 지난 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콩 영화에 대해 "지금은 규제와 검열이 많아 제작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자율성과 다양성을 구가하던 홍콩 영화가 중국 반환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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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환(1997년)을 앞둔 1980년대 홍콩에는 불안감과 허무함이 팽배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영화에 반영된 게 ‘홍콩 느와르’다. 이는 ‘국내 영화수입업자 혹은 저널리스트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홍콩 느와르 시작은 ‘영웅본색’이다. 이 영화가 1987년 국내에 개봉되자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주인공 주윤발(저우룬파)은 청춘의 우상이 됐다. 그가 성냥개비를 물고 있는 장면은 냉소적인 남성의 상징이었다. 당시 수많은 10~20대가 성냥개비를 씹고 다니며 그를 흉내낼 정도였다.
스타가 되기 전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도박 중독에 빠진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자 15세에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1973년에 방송국 연기학교에 들어간 후 방송국 공채 연기자가 됐지만 수년간 단역을 전전했다. 1976년 영화 ‘투태인’으로 데뷔한 이후 ‘와호장룡’‘첩혈쌍웅’ 등에 출연하며 홍콩 영화 부흥기를 이끌었다. 지난 7월 중국 매체들은 ‘주윤발이 혼수상태’라고 보도했다. 그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감염 후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가짜 뉴스였으나 그를 둘러싼 사망·위독설은 어느 유명인보다 잦다. 그만큼 그가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높은 데다 ‘홍콩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따거(큰 형님)’주윤발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부산을 찾았다. 2009년 ‘드래곤볼 에볼루션’ 국내 개봉 이후 14년 만의 내한이다. 지난 5일 영화제 개막식 무대에 그가 등장하자 ‘영웅본색’ 등의 주요 장면이 스크린에 흘렀고 초로의 주윤발을 ‘실물영접’한 많은 중년 관객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인 배우다. 2014년 홍콩에서 행정장관(일인자)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 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위대를 공개 지지했다. 또 2019년 홍콩에서 집회·시위 때 복면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자 검은 복면을 쓰고 거리에 나왔다. 그는 2010년 전재산인 56억 홍콩달러(960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지난 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콩 영화에 대해 “지금은 규제와 검열이 많아 제작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자율성과 다양성을 구가하던 홍콩 영화가 중국 반환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는 이유다. 권력의 눈치를 보기보단 용감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그에게서 대배우의 품격이 느껴진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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