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

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2023. 10.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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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주윤발 배우님 30초 후 도착합니다.” 무전이 울린다. 부산국제영화제 내부에서 ‘드롭 존’이라고 불리는 게스트 하차 공간은 수많은 취재진과 관객으로 북적인다. 레드카펫을 걸으며 포즈를 취하는 전 세계의 스타들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 이면에는 순간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의 노고가 담겨 있기도 하다. 게스트의 출발·도착과 숙박·편의를 제공하는 초청팀과 VIP 코디네이터·이벤트팀은 한 명 한 명 스타들이 차에서 내릴 때마다 누구인지 식별하고 다음에 도착하는 감독 배우들과 간격을 조정한다. 또 모든 스타의 이름을 외울 수는 없는 호스트들에게 성명과 작품을 안내해 자연스럽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메인 무대인 상영장의 레드카펫으로 동선을 유도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대기 공간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영광스러운 무대에 등장한다는 이유로 기분이 상승해 있는 게스트가 있다면 적당한 리액션으로 그 기분을 유지시키는 일을 하기도 한다. 레드카펫을 걸어 상영장 객석에 도착한 스타를 자신의 이름이 명기돼 있는 좌석으로 인도하는 일은 9명의 프로그래머와 프로그램실의 담당이다. 한 명의 스타가 차에서 내려 자신의 좌석으로 도착하기까지의 짧은 상황에만 동원되는 인력은 50명이 넘는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10월, 단기 고용 스태프를 포함한 상주 인력은 270명 정도다.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까지 900여 명의 인원, 거기에 경호, 이벤트 외주사와 경찰 파견까지 포함해 15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축제를 만들어나간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총 관객수는 19만 명 수준이었다. 올해도 최소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제를 찾을 것이다. 10만 장 이상의 티켓이 발매된다는 이야기다. 이 수량의 티켓은 16명의 ‘관객 서비스 팀’ 직원들이 관리한다. 쉽지 않은 업무다. 관객 서비스 팀은 상영관의 티켓 발매와 예매 업무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의 관리까지도 책임지고 있다.

초청 업무와 프로그램 수급, 극장의 영사와 자막, 그 밖의 GV와 이벤트까지 담당하는 프로그램실의 인원은 106명. 스폰서의 유치와 관리를 담당하는 마케팅 부서인 대외협력실에서는 11명의 스태프가 일한다. 거기에 아시아콘텐츠 어워드와 필름 마켓을 주관하는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실에서는 40명이, 아시아 필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지석영화연구소에서는 15명이 해외의 참가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린다. 남포동에서 열리는 관객 주도 축제 커뮤니티비프는 6명이 수많은 관객과 소통하며 새로운 방향의 상영을 만들어내고, 영화제의 물리적 영역을 넓혀가는 동네방네비프는 8명의 스태프가 부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영화제를 준비한다. 이 모든 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경영지원실에서는 30여 명이 회계 인사 총무 기획 등의 업무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 모든 노고로 만들어지는 영화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홍보실의 인원은 30명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스태프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객과 영화를, 팬과 스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모두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인원수를 강조하며 칼럼을 쓰고 있다.

아쉬운 부분은 이 모든 스태프는 거의 대부분 영화광이며 영화제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아쉬움의 이유는 이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구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10일간의 축제 기간에는 치열한 업무 때문에 상영작 하나를 볼 시간이 없는 셈이다. 영화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볼 수 없는 아이러니, 그래서 그들은 ‘다른 영화제’를 열심히 다닌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지도부의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하지만 올해 개막식은 역대급이라는 호평을 들으며 성공적 개최를 해냈다. 축제는 그런 것이다. 이전의 지도부를 폄하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름다운 영화제란 소수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1500여 명의 개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는 하나의 거대한 기념비다. 축제의 지속가능성은 바로 이 개인들에게 달려 있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논리로 이 개인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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