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골관 악기 하나쯤
시티 스캐너가 몸을 훑는다. 숨을 참고 내뱉고 또 숨을 참는 동안 엑스선이 전신을 투과한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작열감과 조영제 탓인지 울컥울컥 속이 되넘어 올 듯 울렁거린다. 몇 달 동안 머리와 심장과 혈관 등을 검사하느라 큰 기계와 작은 기계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갔으니, 이번에도 눈 딱 감고 이십여 분만 참으면 해결될 일이다. 의사 선생님은 촬영된 모니터 사진을 내 앞으로 돌려준다. 뼈가 도드라진 한 여자가 누워 있다. 저것이 나라고 하는데, 내가 나를 선뜻 알아보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옷을 걷어내고 살가죽을 벗겨내고 근육을 제거하고 흉터와 주름과 표정까지 싹 다 지워버렸다. 그뿐인가. 환희와 분노와 슬픔과 고뇌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무거운 것들은 어디에 숨었는가,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처음으로 내 속의 나를 마주한다. 어설픈 환자 눈에도 앙다붙은 척추가 다부져 보이고 갈비뼈와 골반도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이 잘 되었다. 오히려 통통한 살에 가려졌던 팔다리뼈가 삭정이같이 앙상하여 애잔하기 그지없다. 발목과 손목뼈는 마디마디에 단단한 나사로 조이거나 철심 하나 박지 않았는데, 온몸을 지탱하고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으니 고맙고 기특하다. 낯설지 않다. 학창 시절 과학실 괴담의 주인공이었고, 오래전 재래식 화장장에서 몸을 태운 부모님의 유해도 희고 가지런했다. 위대한 조각가 자코메티의 작품에서도 인간의 형상에서 살을 떼어내어 유골 같은 뼈대를 강조했고, 대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1500년 전 고대인의 인골도 저러했다. 심지어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물고기 뼛조각과도 닮아있다. 분명 눈에 익은 모습인데도 저 섬뜩한 것이 나라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포장했던가. 속은 삭고 허물어져 병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겉만 꼿꼿이 곤두세우고 번드레하게 꾸며내었다. 속은 겉을 외면했고 겉은 속에게 무관심했다. 육신이 번잡하고 고통스러우니 정신도 산란하여 편안하지 못했다. 그러니 누구나 살점 없는 인간의 뼈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평수 넓은 아파트도 보이지 않고 명품 가방도 소용없으며 통장에 찍힌 두둑한 숫자도 부질없다. 결국 생의 끝자락에 남는 것은 허옇고 까슬한 몇 조각의 뼈밖에 더 있겠는가.
그렇다면 후제에 저 뼛조각도 운이 좋으면 쓰임새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내 뼈가 다시 쓰일 수만 있다면 하나의 악기로 탄생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북이나 장고 같은 악기는 나무통에 짐승의 가죽을 씌워서 두드리기도 했지만, 최초의 피리는 동물 뼈에 구멍 내어 바람 넣기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는 일이다.
티베트에서는 조장한 인간의 넙다리뼈로 나팔을 만들고 머리뼈를 맞대어 타악기를 완성시켰으며, 에스파냐인들은 손가락 길이의 대롱뼈들을 연결한 긁개에 캐스터네츠를 두드려 소리를 내었다. 우리나라도 가까운 동래 낙민동 유적지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각골 악기가 부산박물관에 모셔져 있으며, 쿠바의 당나귀 턱뼈를 이용한 우이루는 지금도 거리의 악사들이 즐겨 연주하는 타악기다.
문학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궤나도 있다. 고대 잉카인들은 연인의 정강이뼈로 궤나 피리를 만들어 떠난 이가 그리울 때마다 구성지게 불었다고 한다. 김왕노 시인의 시 ‘궤나’만 보더라도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가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 그리워질 때면 그립다고 부는 궤나/ (중략)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짐승들을 울게 하는 소리/ 오늘은 이 거리를 가는데 종일 정강이뼈가 아파/ 전생에 두고 온 누가/ 전생에 두고 온 내 정강이뼈를 불고 있나 보다/ 그립다 그립다고 종일 불고 있나 보다’ 하고 읊었으니, 생전에 고생한 내 연골들도 죽음을 넘기고 나면 청아한 소리가 날까.
나의 뼈에 입술소리 내줄 이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으니 체념은 빠른 게 좋겠다. 어느새 의사의 설명은 갈비뼈를 헤집어 심장을 가리키는데 화들짝 놀란 등짝에서 우두둑 뼈 소리 흐른다. 어쩌면 이미 나는 골관 악기 하나쯤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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