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당장 나라 구할 길 없어 답답하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2023. 10. 9.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26> 갑오년(1594년) 8월 30일~9월 19일

- 임금 “적 공격하라” 밀지에 근심
- “머뭇거린다”며 거짓 참소한 원균
- 활 대결서 패하자 술 취해 돌아가
- 아내 병 위중 소식에 애 태우기도
- 망궐례 등 통제사 전시일상 계속

충남 아산시 염치읍에 자리한 현충사의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서 만난 이순신 장군 모습. 이순신 장군과 관련 있는 기록물과 굳센 느낌의 이순신 장군 그림이 어우러졌다.


8월30일[10월13일]

날이 맑고 바람조차 없었다. 해남현감이 보러 오고 늦게 우수사와 장흥부사가 보러 왔다. 저물녘에 충청우후 웅천현감 거제현령 소비포권관도 함께 왔고 허정은도 왔다. 이날 아침에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몹시 위중하다고 한다. 벌써 생사 간에 결판이 났을지도 모른다. 나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수가 있으랴 마는, 아내가 가고 나면 아들 셋, 딸 하나가 어떻게 살아갈꼬. 마음이 아프고 무척 걱정이 된다. 김양간이 서울에서 영의정(류성룡)의 편지와 심충겸(병조판서)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분개하는 뜻이 많이 적혀 있었다. 원균 수사의 하는 일이 매우 해괴하다. 날더러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했다니 천년을 두고서 한탄할 일이다. 곤양군수가 병으로 돌아갔는데, 송별해 주지 못하고 보내어 너무 섭섭하다. 밤 10시께부터는 마음이 산란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왜 수군과 한산도에 진을 치고 있는 조선 수군은 웅천과 거제를 경계로 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조선 수군은 섣불리 군사를 일으키다가는 적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순신은 견내량을 고수해 적의 서진을 막는 것이 바다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해 소위 견내량 고수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었다. 원균은 이순신을 꺾기 위해 자기는 부산으로 나가 적을 물리칠 수 있는데 이순신은 나아가지 않는다고 무수히 이순신을 참소했다. 이날 일기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갑오년(1594년) 9월

다행히 아내가 건강을 회복했고, 통제사의 전시 일상은 계속된다. 다만 하순에 수륙이 합동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장문포에 있는 적을 치는데, 이순신은 삼도수군의 통제사로서 참전하여 육군을 도와 성심을 다하지만, 한탄을 부른다는 현몽(現夢)을 꾸기도 한 그는 이 전투의 기획과 경과 결과에 대해 탐탁지 않아 했다.

9월1일[10월14일] 맑음.

앉았다 누웠다 잠을 이루지 못해 촛불을 켠 채 뒤척이다가 아침이 되었다. 일찍 세수하고 고요히 앉아 아내의 병세에 대해 점을 쳤더니 “중이 환속하는 것 같다”는 괘를 얻고, 다시 쳤더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아주 좋다. 또 병세가 나았다고 할지 죽는다는 통보가 올지를 점쳐보았더니 “귀양 땅에서 친척을 만난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이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좋은 소식을 알게 될 징조였다. 순무사 서성의 공문과 장계 등본이 들어왔다.

9월2일[10월15일] 맑음.

웅천(이운룡) 소비포(이영남)가 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늦게 낙안이 보러 왔다. 저녁때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좀 나아졌으나, 원기가 매우 약하다고 하니 염려스럽다.

9월3일[10월16일]

비가 조금 내렸다. 새벽에 임금의 밀지가 들어왔다. “수군과 육군의 여러 장수들이 팔장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가지 계책이라도 세워 적을 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럴 리가 만무하다.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3년 동안이나 바다 위를 떠돌며 죽음으로써 원수를 갚을 뜻을 결심하고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는가! 다만 적이 험고한 곳에 웅거하여 있으니 경솔히 나아가지 않을 뿐이다. 더욱이 옛날의 병법에서도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종일 큰바람이 불었다. 초저녁에 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생각하니 나랏일은 어지럽건만 안으로 구해낼 방책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랴! 밤 10시경 흥양현감(황세득)이 내가 혼자 근심하고 있음을 알고 들어와서 자정까지 이야기하다 헤어졌다.

*이 일기는 당시의 이순신이 처한 힘든 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 일기로, 여러 책에서 자주 인용된다.

9월4일[10월17일] 맑음.

아침에 흥양현감이 와서 만났다. 식사 후에 소비포도 왔다. 조금 있으니 경상수사 원균이 와서 활 솜씨를 겨루어 보자 하므로 활터 정자로 나가 활을 쏘았다. 원수사가 9분을 지고서는 잔뜩 취해 돌아갔다. 피리를 불게 하고 밤이 늦어서 헤어졌다. 미안한(온당치 못한) 일이 있었다. 여도만호가 들어왔다.

※이순신의 활 솜씨가 원균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이날도 아마 원균이 온당치 못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매번 피리 소리를 듣고 나면 미안한 일이 생각나는 것(8월 20일 일기 참조)도 재미있다.

9월5일[10월18일] 맑음.

닭이 운 뒤 아무리 머리를 만져도 마음에 들지 않아 종을 시켜 손질하게 했다. 바람이 순하지 않아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급히 어머니께로 문병 갔던(8월 20일 일기 참조) 충청수사가 들어왔다.

9월6일[10월19일]

맑고 바람도 잔잔했다. 충청수사 우후 마량첨사와 함께 아침을 하고 늦게 활터 정자로 옮겨 활을 쏘았다. 저녁에 종 효대와 개남이 오면서 어머님께서 편안하시다는 편지를 가져왔다. 고맙고 다행이다. 들으니 방필순(가까운 처가 집안 사람인 듯함)이 세상을 떠나자 방익순이 그 가족을 끌고 우리 집으로 왔다고 한다. 기가 차다. 밤 10시께 복춘이 왔다. 저물녘에 김경로가 우도(右道)에 이르렀다는 말을 들었다.

9월7일[10월20일] 맑음.

순천부사(권준)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편지에서 순찰사(홍세공)가 10일께 순천부에 도착하고 좌의정(윤두수)도 온다고 했다. 심히 유감스런 일은, 순천부사가 나와 같이 진에 있을 때 거제도로 부하들을 사냥 보냈는데 그들이 모두 적에게 붙잡혔는데도 그 사정을 나에게 보고하지 않다가 이 편지로 뒤늦게 보고했음이다. 아주 해괴한 일이라 순천에게 그 점을 지적하는 답장 편지를 써 보냈다.

9월8일[10월21일] 맑음.

장흥부사(배흥립)를 헌관(獻官, 술잔 올리는 사람)으로, 흥양현감(황세득)을 전사(典祀, 제반 일을 책임지는 사람)로 삼아 내일 둑제(대장기, 둑기 앞에서 경칩 상강 때 지내는 제)를 지내려고 입재(入齎)시켰다. 첨지 김경로가 왔다.

9월9일[10월22일]

맑다가 저물녘에 잠시 비가 내리다 그쳤다. 여러 장수들이 활을 쏘았다. 삼도(전라 충청 경상)가 다 모였는데, 원균수사만 병으로 오지 않았다. 첨지 김경로도 장수들과 같이 활을 쏘다가 경상도 진영으로 가서 잤다.

9월10일[10월23일]

맑고 바람도 고요했다. 사도첨사가 활쏘기 대회를 열었는데, 우수사도 왔다. 김경숙이 창신도로 돌아갔다.

9월11일[10월24일] 맑음.

일찍 수루에 올라, 남평의 담당 아전을 처벌하고 순천의 격군으로서 3번이나 군량을 훔친 자를 처형했다. 각 관포(5관 5포)에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늦게 충청수사가 와서 봤다. 소비포권관(이영남)은 원수사 몰래 달밤을 이용해 본포(소비포)로 돌아갔다. 원수사가 알면 모함하려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9월12일[10월25일] 맑음.

본영 병방으로 가는 김암이 내 방에 왔다. 정조방장의 종이 돌아가는 길에 답장을 써 보냈다. 우수사 충청수사가 오고, 장흥이 술을 내어 함께 이야기하다가 크게 취해 헤어졌다.

9월13일[10월26일]

맑고 따뜻하다. 어제 취한 술이 아직 깨지 않아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 충청우후가 문안하러 와 조도어사 윤경립의 장계 초안 2통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진도군수의 파면을 청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군과 육군을 서로 바꾸어 징발하지 말라는 것과 각 고을의 수령들을 전쟁에 내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의견은 눈앞의 제 쪽 일만 생각하는 편협한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녁에 하천수가 장계 회답과 홍패(과거 합격증) 97장을 가지고 왔다. 영의정의 편지도 가져왔다.

9월14일[10월27일] 맑음.

우수사 충청수사가 모여 활을 쏘았다. 홍양현감이 술을 보내주었다. 방답첨사가 공·사례를 행했다.

9월15일[10월28일] 맑음.

일찍 충청수사와 여러 장수와 함께 망궐례를 드렸다. 우수사는 미리 약속해 놓고도 병을 핑계 대고 오지 않으니 한탄스럽다. 새로 급제한 사람들에게 홍패를 나눠주었다. 남원 도병방과 향소등을 잡아 가두었다. 충청우후(원유남)가 본도(충청도)로 돌아갔다. 종 경이 들어왔다.

9월16일[10월29일] 맑음.

충청수사 및 순천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날 밤 꿈에 아이를 보았는데, 경(庚)의 모(母)가 아들을 낳을 징조였다.

9월17일[10월30일]

맑고 따뜻하다. 충청수사 순천부사 사도첨사가 와서 함께 활을 쏘았다. 우후 이몽구가 국둔전(國屯田)에서 추수를 하기 위해 나갔다. 효대 등도 떠나갔다.

9월18일[10월31일]

맑고 무척 따뜻했다. 충청수사 및 흥양현감과 종일토록 활을 쏘다 헤어졌다. 저물녘에 시작한 비가 밤새도록 뿌렸다. 이수원과 담화가 들어오고, 머물고 있던 복춘은 돌아갔다. 밤이 이슥하도록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9월19일[11월1일]

종일 비가 내렸다. 홍양현감(황세득)과 순천부사(권준)가 의논하러 왔다. 해남현감은 와서 이야기하고 바로 돌아갔다. 흥양과 순천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