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억류된 우리 국민 6명… “생사라도 확인해달라”
“10년간 가족들이 외부 노출도 꺼리며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북한 당국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우리 동생을 비롯한 억류된 국민들의 생사(生死)를 확인해주고 석방·송환해 주길 바랍니다.”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단둥에서 탈북민 쉼터와 국수 공장을 운영하며 대북 인도적 지원에 힘써온 김정욱(60) 선교사가 북한 당국에 체포돼 억류된 지 8일로 꼬박 10년이 됐다. 김씨의 친형인 김정삼 기현정밀 대표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2019년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 전혀 동생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며 “생사조차 알 수 없지만 국민과 정부를 믿고 기도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현재 북한에는 선교사 3명(김정욱·김국기·최춘길)과 탈북민 3명(고현철·김원호·함진우) 등 우리 국민 6명이 억류돼 있다.
김 선교사는 2013년 10월 8일 평양에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이듬해 5월 국가전복음모죄·간첩죄 누명을 쓰고 한국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북한은 “(김 선교사가) 국가정보원에 매수돼 북한 정보를 수집하러 입북했다”고 주장했는데, 김 선교사의 탈북민 지원이 탐탁지 않았던 북한의 유인 전술에 당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씨는 “동생은 북한 주민에게 전달해 줄 국수가 여름이면 변질돼 늘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당시 추석 직전 급하게 출국하느라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는데, 김씨 부친은 아들과 재회하지 못하고 2018년 세상을 떴다.
북한은 억류 중인 우리 국민 6명에 대해 수년째 생사 여부조차 함구하고 있다. 변호권, 영사 접견권, 통신·서신 교환의 권리 등 국제법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구금돼 있는 상태다. 2014년 단둥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체포된 김국기 목사의 아내 김희순씨는 올해 3월 자필 편지를 통해 “살아계신다는 소식만이라도 확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반면 북한은 미국 국적의 억류자들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올해 7월 공동경비구역(JSA) 견학 중 돌연 월북한 주한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을 70여 일 만에 돌려보냈다. 미·북 대화가 무르익던 2018년 5월에는 김정은과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담판을 하고 나서 미국인 3명(김동철·김상덕·김학송)을 한꺼번에 석방하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미국인들을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가족들의 잇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 경색을 우려해 북한과의 양자 대화나 유엔 같은 다자(多者) 무대에서 억류자 문제를 언급하는 걸 꺼려 왔다. 2018년 초부터 북한과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서 송환을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지만 북한이 그해 6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관련 기관이 검토 중”이라 답한 뒤 진전이 없었다. 임기 내내 앰네스티 같은 국제 인권 단체들이 문 전 대통령에게 “북한 억류자의 생사·소재 확인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촉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김씨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결국 동생을 비롯한 우리 국민이 한 명도 석방되지 못해 너무 실망했다”고 했다.
김씨는 “윤석열 정부에선 억류자 문제가 주요 의제로 상정된 것 같아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역대 장관 중 최초로 북한 억류자 가족을 면담했다. 통일부는 김영호 장관 취임 후 억류자 문제 해결을 위한 장관 직속 대책팀을 신설했고, 이들의 송환을 염원하는 상징물 제작도 추진하고 있다. 8일에는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생사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북한 당국의 불법적·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한다”며 “북한이 인권 문제에 대해 일말의 인식이라도 있다면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때는 공동성명에 사상 처음으로 ‘억류자·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3국 공조’가 명시됐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연말에 유엔총회에서 통과될 북한인권결의안에 김 선교사의 이름을 적시해 북한의 송환을 압박하는 한편 정치인 출신 대북 특사 파견 같은 상상력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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