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오스카상 괜히 받았어… 존경이란 말 무섭다”
“어머, 이렇게 많은 분이 돈 내고 절 보러 와주신 거예요? 유료 티켓이라고 그러던데.”
‘한국 최초의 오스카 수상자’ 배우 윤여정(76)은 지난 6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로 들어섰다. 지난 4일 개막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대담 프로그램인 ‘액터스 하우스’ 초청 배우로 나선 자리였다. 그를 보자 250석을 꽉 채운 관객은 환호부터 보냈다. 2021년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인터뷰를 사양해 오던 그가 공개 대담 자리에 나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제가 워낙 실질적인 사람이라, 오늘 티켓이 9000원이라고 해서 (티켓 값을 못 할까) 걱정”이라며 “제가 말을 거를 줄 몰라서 그간 인터뷰를 피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스카 수상은 제게 행복한 사고 같은 것”이라며 “저는 결점이 많은 사람인데, 상 받고 나선 말 한마디라도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니, 오스카가 오히려 족쇄가 됐다”고 말했다. “존경이라는 말 무서워요. 상 괜히 받은 거 같애.”
윤여정은 1966년 TBC 공채 3기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문과에 입학해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 PD 권유로 지원해 합격했다. 1971년 고(故) 김기영(1919~1998) 감독이 그를 영화 ‘화녀’의 주인공으로 발탁하며 20대의 절정이 왔다. 한 가정을 파탄 내려 드는 파출부 명자 역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정작 그때는 제가 왜 그 작품에 선택받았나 싶어 저주를 퍼부었다”고 했다. 당시 촬영 현장은 맨손으로 생쥐를 잡거나 계단을 그대로 구르는 등 매우 열악했다. “그땐 어려서 몰랐어요. 김기영 감독 같은 천재한테 배웠던 건데 그걸 모르고.” 그러면서 “여러분은 친구를 사귀더라도 고급하고 노세요”라며 “나보다 나은 사람, 나보다 책 많이 읽은 사람하고 얘기해야 배움이 있다”고 했다.
꽃피던 연기 인생은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며 끊겼다. 미국으로 건너가 두 아들을 낳고 13년을 살다 서울로 돌아왔다. 이혼을 전후로 생계를 위해 연기를 다시 하려 했으나 ‘이혼한 여자'라는 손가락질이 방해했다. 단역·조역 가리지 않고 맡았다. 모욕과 멸시도 견뎠다. 한 번은 후배가 “언니, 이 역할 할 땐 그렇게 깨작거리는 거 아냐. 팍팍 먹어”라고 충고했다. 그의 목소리를 두고 “수챗구멍에 물 내려가는 소리 같다”고 쑥덕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아무리 괴로워도 한번 한다고 했으면 한다, 중도 하차는 없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답변 중간중간에 ‘나는 현실적인 사람’ ‘나는 동물적인 사람’ ‘나는 실질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으로 버텨내야 했던 세월의 결과였다.
한 관객이 “무자녀 싱글이었으면 연기 인생이 달랐을 것 같냐”고 묻자 “자식 없었으면 그렇게 목숨 걸고 안 했을 것”이라며 “걔네 먹여 살려야 해서 했다. 어떻게 보면 두 아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물어봐요. 돈 벌어 건물이라도 샀느냐고. 아니라고 했더니 ‘돈 벌어 젊은 남자 갖다줬냐’고 해요. 맞다고 했죠. 젊은 남자 둘 있다고.” 두 아들 얘기다. 두 아들은 미국 컬럼비아대와 뉴욕대를 졸업한 엘리트다. 윤여정은 오스카 수상 소감 때도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장래가 고민이라는 배우 지망생의 질문에 국민학교 양호교사를 하며 세 자매를 홀로 키운 모친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연기는 김혜자가 잘하지’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김혜자가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어요. 특출 난 배우를 따라 하려고 하면 안 돼요. 세상에 똑같은 배우가 또 필요하진 않으니까요. 나는 나다워야 해요.”
2030 관객이 많은 객석을 둘러본 그는 “어떤 젊은이가 ‘엄마가 태극기 부대라 꼴 보기 싫다’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엄마 아버지를 미워하지 마세요”라고 당부했다. “제가 1947년생인데, 격동기에 태어나 6·25를 겪은 우리한테 공산당은 너무 무서운 것이에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다시는 전쟁을 겪고 싶지 않은 공포 때문에 나서는 것이죠. 엄마 아버지가 특별 활동 하러 간다고 이해해 주세요.”
그는 대담을 마무리할 때도 ‘실질’을 잊지 않고 물었다. “제가 오늘 9000원어치 했어요?” 객석 여기저기에서 “좋아요” “멋져요”라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남 요인 암살용? 北, 자폭무인기로 BMW 폭발 장면 보도
- 중앙지검, 명태균 관련 ‘尹대통령 부부 고발’ 창원지검 이송
- 주말 한파주의보급 추위…다음주까지 초겨울 추위 이어져
- 尹대통령·시진핑, 페루서 2년만에 정상회담
- ‘북한강 시신 유기’ 양광준 동문 “동상 걸린 후배 챙겨주던 사람…경악”
- 권익위 “尹정부 전반기 26만명 집단 민원 해결”
- 수험표 배달에 수험생 수송까지...“콜택시냐” 경찰 내부 불만 나왔다
- Trump team plans to end EV tax credit, potentially hurting Korean automakers
- ‘해리스 지지’ 유명 배우 “미국 디스토피아, 떠나겠다”
- 내년 아파트 공시가격도 시세 변동만 반영...현실화율 69% 동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