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교내 출산·마약·청부 살인… 폭력과 惡만 남은 ‘김순옥표 드라마’
비에 홀딱 젖어 집에 돌아온 고등학생 딸에게 엄마가 건네는 건 “괜찮냐”가 아니다. 딸은 심장 수술을 다섯 번이나 받아서 비를 맞으면 특히 힘들어하는 상태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따스하게 안아주는 대신, 온 힘을 실어 주먹으로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한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딸은 종이 인형처럼 뒤로 나동그라진다. 이 엄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주먹질을 하다 못해, 딸의 목을 조르더니 대형 어항에 패대기쳐 버린다. 산산이 부서진 유리 바닥 만신창이가 된 딸과 금붕어 몇 마리가 힘겹게 숨을 이어간다. 이뿐 아니다.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이더니 온몸이 꺾인 28구의 사체가 차곡차곡 쌓여 언덕을 이룬다.
‘막장의 여왕’ 김순옥 작가도 이젠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이런 ‘잔혹 드라마’는 없었다. SBS 금토 드라마 ‘7인의 탈출’은 당초 큰 기대를 모았다. 전작 ‘펜트하우스’ 시리즈로 시청률 29.2%를 기록한 김순옥 작가와 주동민 PD가 다시 뭉친 것만으로도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자극을 위한 자극, 잔혹을 위한 잔혹만 이어진다.
드라마는 거부(巨富) 방칠성(이덕화) 회장의 숨겨졌던 손녀 방다미(정라엘)를 가해한 7인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출세에 방해가 된다며 딸을 버렸던 드라마 제작사 대표 금라희(황정음)는 방 회장에게 투자금을 받아내기 위해 딸을 되찾아 온다. 썼다 버리는 물품처럼 취급하더니,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면 가차 없는 폭력을 날린다. 스타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한모네(이유비)는 원조 교제·교내 출산 등 비행(非行)을 저질러놓고 이를 방다미에게 뒤집어씌운다. 심지어 방다미가 양부(養父)와 사랑을 나눴다는 거짓까지 만들어낸다. 그 외에 학교 폭력을 눈감는 교사, 마약에 찌든 비리 형사,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엔터사 대표가 나온다.
날조와 학대, 조작과 선동, 비리와 탐욕이 줄거리를 이룬다. 이때 등장하는 건 다크 히어로(사적 복수를 하는 주인공). 제도와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하는 때에 불가능해보이거나 답답한 일을 척척 해결한다. 드라마에선 방다미의 양부가 성형 수술로 거대 온라인 회사 대표 매튜 리(엄기준)로 변신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들을 단죄한다는 골자지만 ‘7인의 탈출’이 간과한 건 과정의 설득력이다. 시청자들에게 시각적 폭력만 안겨준다는 평이 잇따른다. 지난달 15일 첫 방송 시청률 6%(닐슨 전국 기준)를 기록한 이후 6회까지 방영된 현재 7.3%. 5회엔 5.6%까지 떨어졌다.
개연성은 없어도 휘몰아치는 속도감과 복수의 쾌감에 중독된다는 ‘순옥드(김순옥 드라마)’ 명성답지 않다. 시청자들은 각종 게시판에 ‘작가 퇴출, 시청자 탈출’ ‘정서적 유해, 시청자 피해’ ‘순옥적 허용(김순옥이니까 이해해준다는 뜻)을 넘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공희정 대중문화 평론가는 “악행의 잔혹한 과정을 즐기도록 과도한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며 “시청자들이 이런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현실에 무감각해지거나 모방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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