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추천작,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

신정선 기자 2023. 10. 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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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지난주에 부산국제영화제 다녀왔습니다. 제가 올해 부산에서 본 영화 중 최고였던 작품을 빨리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그 영화 어때’ 11번째 레터로 보냅니다. 그렇게나 좋았던 작품은, 네, 제목에 밝힌 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입니다.

영화 '괴물'은 모두가 모두에게 괴물이 될 수 있는 사회, 누가 진짜 괴물인지 묻는다.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 별점은 매기지 않습니다만, 만약 이번 부국제를 위해 제게 별이 주어진다면 이 영화에 몽땅 주고 싶습니다. 네,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 재밌었습니다.(저는 아무리 의미가 대단해도 재미가 없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마구 박수를 쳐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게 영화지, 이렇게 만들어야지, 그런 생각까지 들었네요.

혹시 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원래 좋아해서 그런 거 아냐, 라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아니요. 예를 들어 매우 많은 평론가들이 극찬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별로였습니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주는 좋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저는 보는 내내 결론을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결말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 장면이랑 정말 안 어울려요. 이 감독은 막귀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괴물’을 보기 전에 알고 있었던 건, 올해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교권과 학생 인권의 문제를 다뤘다, 정도였습니다. ‘혹시 엄청 지루하고 우울한 얘긴가’ 의구심을 갖고 시사회장에 들어갔습니다.

첫 장면. 어느 건물에 불이 납니다. 엄마와 초등학생 아들이 지켜봅니다. 아들이 말해요.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인간일까.” (자, 이 대사 중요합니다 계속 나와요. 불타는 건물 주목해주시고요. 저 건물 화재도 나중에 다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이 영화는 단 한 장면도 버릴 장면이 없습니다) 엄마는 남편이 죽어서 혼자 아들을 키워요. 착하게만 보이는 아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물통에서 물이 아니라 흙덩어리가 나옵니다. 아들의 머리카락이 욕실 주변에 우수수 떨어져 있고, 운동화 한 짝도 없어졌어요. 귀에서 피가 나 붕대를 감았고요. 추궁하는 엄마에게 아들이 말합니다. “선생님이 잡아당겨서 피가 났어.”

학교로 달려간 엄마. 교장실에 찾아가니 교사 네댓명이 일렬 도열해서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사죄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때렸다는 거냐 안 때렸다는 거냐”고 물으니 또 그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보고서에는 ‘교사의 손과 학생 코의 접촉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죠. 엄마는 분노합니다. 내 자식을 때려놓고 이런 말장난이라니. 물건을 집어던지며 묻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맞나요?”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손과 코의 접촉이었던 거죠. 그걸 보여주는 데에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영화적입니다. 소설이나 연극으론 이렇게 안 돼요. 왜 영화가 영화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라고나 할까요. 엄마의 시점에서 시작해서, 그 다음 교사의 시점, 다음다음에 아들의 시점이 나오는데, 시점이 바뀔 때마다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요. 퍼즐 맞추듯 그간 벌어진 일의 전모가 밝혀집니다. 부분의 사실만 갖고 결론을 내리던(그리고 퍼뜨리던) 사람들의 머리를 때려줍니다. 사실 우리 일상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요.

체벌교사는 공개 사죄를 하고 신문에 나쁜 놈으로 기사도 납니다. 그런데 이 교사는 억울하다고 해요. “전 안 그랬다”고 하니 교장이 말해요 “알아, 하지만 아니라고 하면 비판만 커져.” 그러면서 격려도 해줍니다. “자네가 학교를 지키는 거야.” 참았던 교사는 결국 엄마에게 말하죠. “어머님 아들은 왕따 가해자예요”라고.

아아, 이것이 반전? 그럼 다음에는 아들의 나쁜 짓이 드러나는? 아뇨, 그렇게 단순하면 제가 추천을 안 했겠죠. 세 번째 국면인 아들 시점에 다다르면 반전이라고 생각했던 그 반전이 또 뒤집힙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란 어쩌면 머리 세 개 달린 괴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괴물'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배우 쿠로카와 소야-히이라기 히나타

긴 터널이 지나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 검은 화면에 올라가는 긴긴 크레딧을 바라보다 두 소년이 뛰노는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네요.

저는 지금 ‘아쿠아’를 들으며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1시간 자동 반복 영상이 있어요. ‘아쿠아'는 이 영화를 위한 실로 탁월한 선택. 제가 아까 고레에다 감독이 안 어울리게 바흐 틀었다고 막귀라며 구박했는데, 취소합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숨지기 전에 고레에다 감독과 서신을 교환하며 음악을 골랐다고 해요. 7일 토요일에 고레에다 감독, 두 소년 배우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의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거기서 고레에다 감독이 설명하더군요.

두 소년이 기자회견 때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예쁜던지. 달려가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어요. 이렇게 좋은 영화 볼 수 있게 해줘서. 11월에 국내 개봉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작품이에요. 꼭 보세요. 저도 다시 보려 합니다.

매번 레터에 추천하고 싶은 이런 작품이 많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곧 다음 레터에서 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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