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윤석열 대통령이 김행 장관후보자를 빨리 ‘손절’해야 하는 이유

천광암 논설주간 2023. 10. 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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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 청문회 사상 첫 ‘36계 줄행랑’
“선정·성차별 기사”로 돈벌이 논란
조국 배우자 정경심과 형평 시비까지
美 FBI는 후보 양말 사이즈까지 뒷조사
천광암 논설주간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청문회가 끝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을 7일 강행했다. 이 중 신 장관은 현 정부 들어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18번째 장관급 인사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야당이 과거 ‘막말과 편향적’ 역사관을 문제 삼으면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23년 인사청문회 역사상 처음으로 ‘36계 줄행랑’ 파문을 빚은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윤 대통령이 강행할지 여부다.

김 후보자는 스스로를 “성공한 기업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뻑’도 이런 자뻑이 없다. 2009년 온라인 뉴스 사이트 ‘위키트리’를 공동 창업했고, 2013년 청와대 대변인이 되면서 주식을 처분했지만, 2018년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주식을 재인수했으며, 이후 탁월한 경영 수완을 발휘해 불과 4, 5년 만에 기업 가치를 79배로 키웠다는 것이다.

회사 성장 과정에서 선정적이고 성차별적인 저질 기사를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방식으로 ‘돈벌이’를 했다는 지적에 대해 자신은 경영자여서 직접 기사를 쓰거나 보지 않았으며 “이게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마치 남 이야기하듯 말했다. 공직자의 기본 자질에 해당하는 책임 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낯 두꺼운 자기변명이자 억지다. 문제의 기사가 한두 번에 그친 것이라면 해당 기자의 책임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기사가 반복적이고 상습적으로 나왔다면 회사 전체의 방향을 설정하고 끌고 나가는 경영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안 된 것은 남 탓, 잘된 것은 내 덕’이라는 자세로 대한민국의 여성·청소년 정책을 책임지는 여성가족부 장관직을 어떻게 맡을 수 있겠는가.

‘주식 파킹’ 의혹은 더 심각하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위키트리 주식을 시누이에게 매각했다가 나중에 되산 것에 대해 불법적인 파킹이 아니라 선의에서 이뤄진 정상 매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사 출신이면서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인 김웅 의원조차도 “99.9% 주식 파킹이며 수사 대상”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설령 법률 영역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언론 검증과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김 후보자의 잦은 말 바꾸기만으로도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그가 앞으로 무슨 해명을 내놓는다 해도 이미 눈덩이처럼 커진 의혹을 해소하기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이런데도 윤 대통령이 김 후보자 지명을 강행한다면 정치적으로도 두고두고 큰 짐이 될 것이다. ‘윤석열 검찰’은 2019년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단골 미용사 명의로 차명 주식투자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한 적이 있다. ‘차명 주식투자’가 ‘주식 파킹’의 다른 이름이다. 조 전 장관이 최근 “정 전 교수 차명주식 의혹을 수사하듯이 김행 후보자 및 그 배우자, 친인척을 수사하라”며 마치 좋은 기회라도 만난 듯 공세를 펴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든 대통령’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물론 전임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장관급 인사 34명을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가운데 독단으로 임명하긴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을 포함해 어느 대통령도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제 발로 뛰쳐나간 장관 후보자를 임명했다는 기록을 남긴 적은 없고, 그럴 일 자체가 없었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역사가 230년이 넘는 미국에서조차 전무했던 일이다. 미국에서라면 의회모욕죄로 형사처벌을 받았을 사안이다.

혹자는 정책을 위주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개인의 도덕성이나 사생활 문제로 흐른다고 지적한다. 틀린 이야기다. 미국의 경우 장관 후보자로 지명이 되면 연방수사국(FBI)이 나서서 심한 경우 2개월 이상 사생활을 샅샅이 캔다. 이혼한 전처나 전 직장 동료를 만나 주량과 술버릇, 이성 문제, 심지어 양말 사이즈까지 조사해서 백악관과 의회에 보고한다. 정책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음주 등 사생활 문제로 낙마한 사례가 실제로 적지 않다.

김 후보자가 여성가족부를 이끌 정책 능력이나 비전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미 제기된 의혹과 인사청문회에서 보인 행태만으로도 ‘부적격’ 판단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나마 서둘러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윤 대통령에게 지워진 인선과 검증 책임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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