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에 쓸 돈 없어요”… 소비 감소, 코로나19 이후 최대폭
소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고금리·고물가 여파에 가계 여윳돈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거의 14% 감소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최대 폭으로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따르면 대표적인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액 지수(계절조정)는 지난 8월 기준 102.6을 기록해 전년 동월(108.2) 대비 5.2% 하락했다. 코로나19 영향을 받았던 2020년3월(-7.1%) 이후 3년5개월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소매판매액 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2700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결과다. 물가 요인을 제거한 경상 판매액 불변금액에서 계절·명절·조업일수 변수까지 제외한 수치다. 계절적 요인과 물가상승률이 모두 제거된 만큼, 경제주체들의 실질적인 재화 소비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준내구재(의복·신발·가방 등 1년 이상 사용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저가 상품)의 감소폭이 1년 전 대비 7.6%로 가장 컸다. 비내구재 중에서는 음식료품의 소비가 8.3% 줄었다. 소비 심리와 연관성이 높은 숙박·음식점업은 4.4%, 도매·소매업은 3.6% 각각 감소했다.
외식 소비까지 아우르는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액 지수(불변지수)도 5.1% 감소했다. 2021년1월(-7.5%) 이후 2년7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여윳돈이 줄고, 물가 고공행진으로 인해 생활비가 늘고, 고금리로 인한 이자부담이 증가하는 등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영향도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가계의 월평균 흑자액은 114만1000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3.8%(18만3000원) 감소했는데, 이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기저효과 등으로 소득이 줄었던 2021년2분기(-13.7%)보다도 높은 감소율이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비이자지출을 차감한 처분가능소득에 소비지출까지 뺀 금액이다. 즉, 가계가 번 돈에서 세금·연금 보험료·이자 등을 내고 식료품 등 살림에 필요한 지출을 하고 남은 여윳돈을 의미한다.
가계 흑자액은 작년 3분기부터 4개 분기째 감소하고 있다. 감소폭도 작년 4분기 -2.3%에서 올해 1분기 -12.1% 등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
흑자액 감소의 배경에는 우선 이자 비용 급증이 꼽힌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등 영향으로 가계의 이자 지출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 7.1%(전년 동기 대비)에서 3분기 19.9%, 4분기 28.9%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1분기 42.8%, 2분기 42.4%로 40%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이자로 내야 하는 비용이 40% 넘게 늘어났다는 뜻이다.
여기에 물가도 오르면서 가계 여윳돈을 줄이고 있다. 있다. 2분기 가계의 소비 지출은 월평균 269만1000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보다 2.7%(7만1000원) 늘었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 소비 지출은 오히려 0.5% 줄었다. 가계가 실제 생활비를 줄였지만, 물가가 오르면서 실제 지출한 돈은 더 늘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며 가계 살림은 더욱 팍팍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긴축 장기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시사하면서 국내에서도 당분간 고금리가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물가 상승세도 둔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7% 올라 4월 이후 5개월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향후 물가 전망에 대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달부터 둔화 흐름을 보여 연말에는 3% 내외 수준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동절기 난방비 상승 등으로 인해 물가 상승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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