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 끊긴 채 극한 생활고…아사 직전 60대 남성 구조

강현석 기자 2023. 10. 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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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드러난 ‘복지 사각지대’
광주광역시 광산구 한 원룸에 8일 전기요금 미납으로 인한 단전 안내문이 붙어 있다. 독자 제공
월세 밀려 찾아간 주인이 발견
방에는 식료품 하나도 없어
석 달 전 마지막 지출 5600원
전입신고 안 해 ‘거주불명’
지자체 조사대상에 미포함

전기와 도시가스 등이 끊긴 한 원룸에서 수개월째 음식물을 거의 섭취하지 못해 ‘사망위기’에 처했던 60대 남성이 동주민센터 공무원들에 의해 구조됐다. 이 남성이 지난 7월부터 생활비로 지출한 돈은 ‘5600원’에 불과했다.

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한 원룸에서 A씨(63)가 우산동주민센터 맞춤형복지팀 공무원들에 의해 구조됐다. 원룸 주인은 넉달째 월세가 밀린 A씨가 인기척이 없자 “사람이 아사 상태에 있다”며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급히 현장을 찾았을 때 A씨는 뼈가 앙상한 상태로 옷도 입지 않은 채 방안에 누워 있었다. 방에는 쌀이나 라면, 반찬 등 식료품이 하나도 없었다. 먹다 남은 과일 통조림에는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다. A씨는 공무원들이 건넨 물을 빨대로 겨우 마실 정도로 쇠약했다고 한다. 심각한 영양실조와 탈수, 폐결핵 등의 진단을 받은 A씨는 지난 5일 긴급 상황이 발생해 대학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의료진이 “며칠만 늦었다면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라고 말할 정도였다.

전기와 가스가 끊긴 A씨 집 현관에는 지난 8월25일자로 ‘전기공급 제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고지서 등도 바닥에 쌓여 있었다.

A씨가 마지막으로 집 밖에 나가 무언가를 구입한 것은 지난 7월16일로 추정된다. 그는 당시 인근 마트에서 체크카드로 5600원을 사용했다. 통장 잔액은 0원이 됐고 이후에도 채워지진 않았다. A씨를 구조한 주민센터의 한 공무원은 “A씨가 이날 음식물 등을 구입한 뒤 그동안 수돗물로 연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려왔지만 A씨는 정부와 지자체 등의 공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월세 27만원에 해당 원룸에 거주해왔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장기간 전기나 가스요금 등을 연체하면 해당 주소지 동주민센터에 ‘복지사각지대 조사대상자’로 통보되지만 A씨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거주불명 등록자는 지난 9월 기준 전국적으로 15만302명에 달한다.

주민센터는 병원이 A씨가 입원하는 것을 거부하자 ‘의료비 지불보증’을 섰다. A씨가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중환자실에 찾아가 직권으로 주민등록도 회복시켜 생계비 등 100만원을 지원했다. A씨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자격 회복’ 절차도 추진하고 있다.

박인아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계약자를 알 수 없더라도 전기가 공급되던 집에 장기 연체가 발생했다면 누군가가 방문해 확인하는 시스템 등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행정과 복지기관 중심의 복지정책을 실제 위기가구를 잘 아는 이웃 중심으로 바꿔야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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