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구청장 뽑는데 “대통령 싫어” “야 대표 싫어”…표심 가른 심판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하는 짓 보면 (진교훈 민주당 후보를) 어떻게 뽑느냐.”(김태우 국민의힘 후보 지지자)
“진교훈 공약은 모르지만, 윤석열 대통령 싫어뽑을 거다.”(진 후보 지지자)
오는 11일 치러지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전투표일(6·7일) 직전인 지난 5일과 직후인 8일 강서구를 찾아 유권자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지역 일꾼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지만 지역 현안보다는 정부·여당과 야당에 대한 평가가 표심을 좌우하는 듯 보였다.
■ “윤 대통령 싫어 진 후보 뽑을 것”
야권 지지 성향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에 호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진 후보 개인이나 공약에 대한 지지보다는 윤석열 정부 비판에서 진 후보 지지 이유를 찾았다.
이모씨(55)는 “진 후보가 더 나아서라기보다 김 후보가 너무 안 좋아서 진 후보를 지지한다”며 “진 후보 공약은 모른다”고 했다. 김모씨(64)는 “윤 대통령이 너무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라며 “‘민주당을 위해 모여야 한다’는 게 지역 여론”이라고 말했다.
야권 지지자들은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이 총체적으로 문제라고 했다. 구모씨(50대·여)는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이전 문제를 지적하며 “그냥 평가를 안 하고 싶다. 국민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부끄러운 정부”라고 말했다. 남모씨(52)는 “인사도 그렇고 (윤 대통령이) 이념 발언을 계속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언제적 공산화 얘기인가”라고 비판했다. 남씨는 이미 사전투표에 참여했다며 “투표율이 높게 나와야 (진 후보가) 유리하다고 하니까 좀 보여주고 싶어서 (사전투표를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김 후보를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3개월 만에 사면하고, 그 직후 치러지는 선거에 직전 구청장인 김 후보가 재출마한 데 대한 비판 목소리도 많았다. 박모씨(50대)는 “감옥에 있는 놈을 꺼내서 복권시켜준 꼴인데, 어떻게 또 (선거에) 내보내느냐”며 “국민을 물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로 싸우기만 하니 짜증” “누구 찍어야 할지 몰라”
세대 불문 ‘냉소적 민심’ 여전…유세장 비교적 한산
■ “이재명 보고 어떻게 야당 뽑나”
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윤석열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이유로 김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이모씨(75)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모씨(55)는 “아무도 뽑기 싫은데, 결국 국민의힘을 뽑을 것 같다”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하는 짓을 보면 (진 후보를) 어떻게 뽑느냐”고 말했다.
강서구에서 주로 여당 위치에 있었던 민주당에 대한 견제론도 김 후보 지지 이유로 작용했다. 김모씨(85)는 “(민주당 소속) 노현송이 구청장을 네 번 했다. 그런데 바뀐 게 있느냐”고 말했다. 김모씨(40)는 “여지껏 10년 넘게 민주당이 강서구를 다 장악했었는데 가장 못사는 동네”라며 “우리 지역을 잘 발전시킬 사람을 찍어야 하는데, 김 후보가 여당이라 기대가 크게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이 진 후보를 전략공천한 데 대해 “민주당이 강서구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엇갈리는 재개발 공약 평가
김 후보가 빌라촌 재개발, 김포공항 주변 지역 고도제한 완화 등 지역 개발 공약을 미는 데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마곡동에 사는 박모씨(50대)는 “고도제한 완화를 해도 집을 가진 사람들이나 이득이 있지, 집 없는 사람들은 아무 혜택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화곡동에 거주하는 박모씨(59)는 “재개발하면 원주민들은 5%도 (현 거주지로 돌아와) 살지 못할 것”이라며 “아파트를 너무 많이 지으니까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위축되는 것도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을 지지해왔다는 이모씨(47·여)는 “강서구청장만 2번(김 후보)을 찍을까 생각 중”이라며 “여당이니까 재개발을 확실히 추진할 거라는 믿음이 더 있다”고 말했다.
■ 높은 사전투표율에도 냉소 여전
지난 5일 저녁 퇴근길 지하철 5호선 발산역 근처에서 진행된 민주당 유세 현장에는 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민주당 선거운동원, 강성 지지자, 유튜버 등으로 유세장은 북적거렸지만,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은 2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민 대부분은 무심히 유세장을 지나쳐갔다. 일부 시민들은 “요새 너무 시끄럽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높은 사전투표율이 고정 지지층 결집을 의미할 수는 있을지언정, 곧바로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과 기대를 나타내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선거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2030 청년층에서 그런 경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대학생 노모씨(22·여)는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 친구들도 선거에 별로 관심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유모씨(30)는 “사는 게 바빠서 선거하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여야 전통 지지층도 지지 정당에 대한 실망감을 밝혔다.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정모씨(70·여)는 “태어나 처음 투표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서로 쌈박질만 하지, 나라를 위해 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인 박모씨(59)는 “민주당이 지금 시원찮아서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뽑은 배모씨(74)는 “법원 유죄 판결까지 받은 사람을 다시 후보로 세운다는 게 이상하다. 진 후보는 경찰 출신인데, 검경 권력 갈등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마뜩잖다”고 말했다.
정대연·이두리·신주영·조문희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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