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고독한 승부사 박종환
▶황해도 태생 박종환은 월남 후 강원도 춘천에 정착해 소년 시절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했다. 대학 다닐 때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식당에서 일하며 축구 선수로 뛰었다. 선수 시절 박종환은 왼발을 단련하려고 한 달 동안 오른발에 붕대를 감고 왼발만 쓰는 훈련을 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스스로를 혹독하게 밀어붙이는 독종 스타일이었다.
▶그는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1983년 멕시코 세계 선수권에서 4강 신화를 이루면서 일약 국민 스타로 등극했다. 한국은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는데, 북한이 심판 폭행으로 국제 대회 출전 금지 징계를 받으면서 우리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당시 한국은 30년간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못 했던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다. 축구협회는 박종환에게 티켓을 반납하고 출전하지 말라고 압박했지만 박종환은 기회를 차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싸웠다. 결국 엄청난 일을 내고 말았다.
▶박종환의 별명은 ‘독사’였다. 혹독하고 강압적인 훈련과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다. 선수들에게 태릉선수촌 가파른 뒷산을 매일 아침 뛰게 했다. 박종환은 “웬만한 공수부대 훈련보다 힘들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해발 2000m 넘는 멕시코 고지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점을 고려해 마스크를 쓴 채 400m 트랙을 20바퀴 이상 달리게 했다. 처음 마스크를 착용하고선 선수들이 5분을 못 버텼다고 한다. 엄격한 규율과 체벌을 병행했다. 선수들은 “감독님 눈빛만 봐도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멕시코에서 대표팀은 멕시코, 호주, 우루과이를 차례로 꺾었고 4강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에 졌다. 기동력과 체력에 감탄한 해외 언론이 ‘붉은 악령’이란 찬사를 보냈다. 현지 멕시코인들은 차고 있던 시계까지 풀어주고 선수단 버스를 에워싸며 환호를 보냈다. 당시 출전했던 한 선수는 “죽기 살기로 뛰는 우리 모습에 감동받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멕시코 4강 이후 한국에 축구 열풍이 불었고, 박종환은 폭발적 인기를 바탕으로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다섯 번 역임했다.
▶화려한 축구 지도자 경력을 쌓았지만, 말년에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사기까지 당하면서 배신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방송에 출연해 “자존심이 있어서 누구한테 신세 지는 걸 싫어하다 보니 전국을 돌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했다. 한국 축구에 누구보다 강렬한 족적을 남긴 박종환이 7일 별세했다. 절대 권위를 가진 카리스마 리더십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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