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대구 저녁국
대구를 덤벙덤벙 썰어 국을 끓이는 저녁이면 움파 조곤조곤 무 숭덩숭덩
붉은 고춧가루 마늘이 국에서 노닥거리는 저녁이면
어디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벚나무 가지에 쪼그리고 앉아
국 냄새 감나무 가지에 오그리고 앉아
그 먼 데, 대구국 끓는 저녁,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
저녁 무렵 도닥도닥 밥한다
그 흔한 영혼이라는 거 멀리도 길을 걸어 타박타박 나비도 달도 나무도 다 마다하고 걸어오는 이 저녁이 대구국 끓는 저녁인 셈인데
어디 또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없는 벚나무 가지에 눈님 들고
국 냄새 가신 감나무 가지에 어둠님 자물고
허수경(1964~2018)
허수경 시인이 먼 길을 떠난 지도 다섯 해이다. 시인은 ‘먼’이라는 말과 아주 가깝다. ‘먼’이라는 시공간은 스무 살 넘어 떠나온 고향 진주, 스물여섯 해를 산 독일, 이생에서 영원히 이주한 저생, 사는 동안 영혼이 푹푹 잠기곤 하던 깊고 깊은 웅덩이들이었을 것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발굴한 고고한 생들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모국어로 쓰고 진주 사투리로 다시 쓴 다섯 편의 시, 그중에서도 ‘대구 저녁국’은 ‘먼’(먼 데)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진주말 혹은 내 말’로 조곤조곤은 조고곤, 무는 무시, 나비는 나배,라고. 내 나라의 말을 잊지 않겠다는 듯, 땅속 깊은 어둠 속에서 발굴한 것은 결국 자신의 얼굴을 되비추는 모국어라는 듯, 우리를 먼 곳으로 끌고 다닌다. ‘그 흔한 영혼들’이 달을 켜놓고 먹는 ‘대구 저녁국’. 한숨과 허기 같은 모어가 둥둥 떠 있는 저 저녁의 슬픈 국 속으로. 그 먼 먼 시인의 하염없는 심연 속으로 이제는 우리가 빠져들 차례.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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