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한국 사람 기준의 ‘오류’
러시아 사람과 결혼한 다문화 가족의 법률상담을 했다. 얼마 전 예쁜 아이가 태어나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고 러시아에도 출생신고를 하려 하니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이 상실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적법에서 러시아 영토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귀화 절차로 러시아 국적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사후적으로 다른 나라 국적을 선택한 것이 돼 한국 국적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한국 국적이 상실된 상태를 모르는 러시아 다문화 가족이 많아서, 어떤 가족의 경우 군대까지 다녀온 자녀가 있는데 부모가 어린 시절 러시아에 출생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유령 한국인’으로 살았다는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러시아 다문화 가정 자녀의 경우 러시아 국적법과 무관하게 아이가 한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복수국적을 인정해주고, 성인이 되기 전에 자신의 국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했다.
반대로 이런 사례도 있다. 2020년 헌법재판소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 이탈을 제한하는 국적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청구인 멀베이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태어날 당시 어머니가 미국 영주 자격이 있었지만, 한국 국적을 상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멀베이는 법적으로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지게 됐다. 그러나 멀베이는 출생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 주된 생활 근거를 두고 살아왔으며 한국 국적자라는 인식이 없었기에 18세 이전에 한국 국적 포기를 하지 못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18세 이전에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경우 국적법상 병역의무를 이행하거나, 38세가 돼 병역이 면제되지 않은 한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 멀베이는 38세가 될 때까지 한국 국적을 억지로 갖게 되는데, 헌재는 해당 규정이 청구인의 국적 이탈의 자유를 제한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했다.
한쪽은 한국 국적이 유지되지 않고 상실되는 것이 문제라 하고, 다른 한쪽은 한국 국적이 상실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 문제라 한다. 둘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같은 주장이다. 법이라는 형식적 기준에 사람의 인생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고,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다문화 가족의 자녀는 부모 나라 양쪽 모두의 문화와 삶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내에서 출생한 러시아 다문화 가족의 자녀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로 인정해 18세가 되기 전 아이가 스스로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외국에서 태어나 주된 생활 근거를 외국에 두고 한국 사람이라는 인식도 없이 살아온 경우라면, 병역의무를 마칠 때까지 한국 국적을 억지로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이후 국적을 상실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체류 외국인 250만명, 재외동포 700만명 시대. 이주와 이민이 더욱 늘어나는 지금 한국 사람의 기준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단일한 기준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정하는 오류는 개선돼야 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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