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글 지명과 로마자의 불일치 정책 폐지해야
한글 지명과 로마자를 나란히 보면 로마자가 한글 지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지하철이나 길거리의 지명표지판에 표기된 ‘청량리(Cheongnyangni)’와 ‘신림동(Sillim-dong)’ 등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불일치는 말소리를 로마자로 전환하는 잘못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때문에 생겼다. 이 표기법은 한글과 로마자 간 불소통으로 한글 정보의 국제적 파급을 막고 한글 세계화를 방해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폐지하고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을 시행해야 한다. 그러면 ‘청량리(Cheong Ryang Ri)’와 ‘신림동(Sin Rim Dong)’과 같이 한글이 로마자와 통하고 세계와 소통된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부당성과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필요성을 한글의 역사적·국제적·학문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세종대왕은 말소리를 표준화한 훈민정음(한글)을 만들고, <동국정운>을 편찬해 한글과 한자가 서로 통하도록 하는 과학적 어문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청량리(淸凉里)와 신림동(新林洞) 등에서 한글과 한자가 문자 단위로 통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 정부는 세종대왕의 뜻에 역행해 한글을 버리고 말소리를 전환하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 표기법은 외국인이 길을 물을 때 쓰도록 한글 지명에 음운변화를 적용해 말소리 지명을 만들고, 음절을 파괴해 영어식으로 바꿔 쓰도록 한다. 이렇게 말소리가 전환된 로마자는 원천 문자로 복원되지 못한다. 외국인이 ‘Cheongnyangni’나 ‘Sillim-dong’으로 한글 지명 청량리나 신림동을 찾을 수가 없다.
둘째, 국제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1967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에서는 국제적 지명 표기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가지는 문자의 로마자 전환법을 의결했다. 이 기구에서는 문자를 로마자로 전환하고, 그 로마자가 원천 문자로 정확하게 복원되는 지명 표준화를 요구한다. 아직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말소리 전환으로서 비과학적이라고 평가해 국제적 방식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립지리정보원에서는 로마자 표기법을 국립국어원 업무로 전가하고, 국립국어원은 국어와 영어 음성학자들의 일거리로 삼고 있다.
셋째,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한글은 음소 문자와 음절 문자의 특징을 가진 ‘음소음절(alphasyllabic) 문자’로 분류된다. 음소 문자로서의 한글 장점은 중국어나 일본어와 달리 한글 자모를 디지털 기계에 바로 입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을 입력하면 기계적으로 로마자로 전환되고, 다시 한글로 복원도 가능하다. 음절 문자로서의 장점은 한글 자모를 음절 단위로 모아 쓰고 정확한 발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글을 로마자로 쓸 때 변화음이 많은 로마자 발음에 맞추지 않고 음절 단위의 한글 발음에 맞추면 한글의 정확한 음과 뜻을 전달하고 한글 복원도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초연결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맞아 문자 정보 소통에서 정확성과 일관성을 갖도록 하는 국제적 표준화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국립국어원은 말소리를 기준으로 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폐지하고,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을 채택하길 제안한다.
김선일 부경대 명예교수·과실연 전임 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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